소비자와 농민이 ‘함께 짓는’ 농사…안전 먹거리에 신뢰를 담다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농산물 유통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미 적지 않은 소비자들이 농사계획서를 보고 자금을 투자하거나, 농산물 수확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쌍방향 의사소통이 이뤄지면서 농민과 소비자 간의 신뢰관계가 구축됐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들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는 실시간 소통을 기반으로, 전에 없던 새로운 유통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 농사펀드는 농산물 유통 분야에 크라우딩 펀딩 개념을 도입, 소비자들이 농사계획서를 보고 투자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돌려받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농사펀드  
"농민에 직접 투자…수익은 농산물로 드려요"

한해 농사계획서 올리면
소비자가 보고 자금 지원 결정
농민은 돈 걱정, 판로 걱정 덜고
소비자는 ‘안심 구매’ 가능
현재 전국 150여 농민 참여
소비자 회원 2000명 넘어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걱정했던 게 무엇입니까.” 농민들이 이러한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 우리 농업 여건상 많은 농민들이 농사를 짓기 전의 ‘영농자금 마련’과 짓고 난 후의 ‘판로 확보’를 들 것이다.

“먹거리를 구매할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런 질문을 받은 소비자들은 대부분 ‘안전성’을 최우선 순위로 꼽을 것이다.

농산물 유통 분야에 ‘크라우드 펀딩’ 개념을 도입한 농사펀드의 출발은 이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시작됐다. 시사상식 사전에 따르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은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은다’는 뜻으로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활용해 자금을 모으는 투자 방식’을 말한다. 농사펀드는 이 크라우드 펀딩을 농산물 유통분야에 고스란히 적용한 것이다.

예를 들어 농민이 농사를 짓기 전 자신의 한해 농사계획서를 농사펀드 홈페이지(www.farmingfund.co.kr)에 올리면 투자자(소비자)들이 이 계획서를 보고 판단해 자금을 투자한 후 수확기에 농산물로 상환 받는 방식이다. 수확 결과물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적으로 20% 내외의 소비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농사짓기 전부터 짓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어 믿고 농산물을 받아 볼 수 있다. 농민들은 투자 기금을 미리 받아 안정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을뿐더러 판로까지 자연스레 해결되는 구조다. 농민들 역시 유통 비용절감을 통해 더 나은 수익구조를 창출할 수 있다.
 

 

2013년 첫발(법인설립은 2014년 11월)을 내디딘 농사펀드는 현재 전국 150여명의 농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참여를 원하는 농민들이 이메일(contact@farmingfund.co.kr)이나 전화(070-4024-0742)로 신청하면 농사펀드 관계자들이 방문 등의 소통을 통해 농민과 농사펀드가 서로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2017년까지 1000명의 농민들과 함께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별다른 홍보를 한 적이 없지만 입소문을 통해 확보한 소비자 회원들도 2000명을 넘어섰다. 회원들은 농민에 대한 투자와 이를 통한 농산물 구매는 물론 농촌 현장을 방문해 농사 체험 활동도 벌이며 우리 농업·농촌을 좀 더 알아가고 있다. 또한 농사펀드는 서울 등 주요 소비처에서 농민과 소비자들이 만날 수 있는 ‘도심 속 농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농민들이 직접 재배하는 과정을 비롯한 농촌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이와 관련된 지역의 다양한 먹거리를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식이다. 최근 천안 입장막걸리와 포도와인, 유기농치즈를 연계한 ‘도심 속 농촌 at 천안’과 문경 오미자를 테마로 한 ‘도심 속 농촌 at 문경’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펀드와 더불어 홈페이지에 자체 온라인 몰을 구축하고 꾸러미를 기획하는 등 판로도 다각화하고 있다.

박종범 농사펀드 대표는 “소비자들이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받기 위해선 농민 분들이 별다른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바로 농사펀드가 태동한 이유”라며 “농사펀드를 통해 대박이 날 수 있다는 것보다 1년 후, 10년 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는 믿음을 농민 분들에게 새겨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참여 농민과 소비자들의 목소리에서도 농사펀드가 추구하는 방향을 읽을 수 있다. 농사펀드 참여 농가 1호인 충남 부여의 쌀 재배농민 조관희(62) 씨는 “올해로 4년째 농사펀드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나를 보고 투자해 준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하게 돼 제 스스로 발전이 많이 되는 것 같다”며 “특히 농사펀드와 함께하면서 판로나 영농자금에 대한 걱정도 많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소비자 민정선(41) 씨는 “2년 전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농사펀드를 처음 알게 됐다”며 “처음엔 호기심으로 시작했지만 최근엔 농사펀드를 통해 김장배추를 샀고 쌀이나 꼬막 등 다양한 농수산물도 정기적으로 받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격도 가격이지만 농사의 전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안심이 될 뿐더러 품질과 맛이 뛰어나 가족들도 좋아해 뿌듯함을 느꼈다”며 “농사펀드에 참여하는 농민 수가 늘면서 품목이 확대되고 있어 구매 비중을 계속해서 늘릴 계획이다. 또 단순히 농산물을 구매하는 소비자를 넘어 우리 농촌에 대한 관심에도 좀 더 귀 기울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 배나무를 분양받은 ‘작은 농장주’들이 직접 배수확을 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어룡농원  
"내 이름표 달린 배나무, 손수 키워보실래요"

건축회사 분양팀장 경력 살려
배나무 분양 ‘수확의 기쁨’ 선사
SNS 소통…어엿한 주문창구로
실버세대 겨냥 체험관광 개발
감귤-배나무 패키지’등 시도
고정관념 깨야 부가가치 제고  


농부들은 흔히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자식(子息)’에 비유하곤 한다. 짐작건대, 많은 노력과 인내, 수고로움을 견디고 애정과 정성을 쏟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농부들의 마음을 소비자들이 조금이라도 알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리 값싼 수입농산물이 있어도 기꺼이 우리 농산물을 제값에 소비하지 않을까.

‘성환 배’로 유명한 충남 천안시 성환읍에는 농부의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들이 함께 꾸려가는 농장이 있다. 배를 수확하기도 전에 제값을 지불하고, 수시로 농장을 찾아 기꺼이 배나무를 가꾸는 곳. 바로 ‘어룡농원’이다.

▲ 이상열 어룡농원 대표가 배나무 분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상열(49) 어룡농원 대표는 건축회사 아파트 분양팀장이란 독특한 이력만큼이나 농장 운영방식도 남다르다. 오랫동안 아파트를 분양해온 경험을 살려 2012년 귀농 후에도 배나무를 분양하고 있다. 4만9600m²(약 1만5000평), 약 1300주의 배나무 중 현재 200주 정도가 소비자인 ‘작은 농장주’들의 몫으로 생산된다.

“아파트 분양에 착안해서 배나무 분양을 하고 있는데,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는 직거래 유통이란 점 외에도 장점이 많아요. 시장상황에 관계없이 배 값을 미리 받을 수 있고, 소비자들이 직접 수확·포장해가니 인건비도 아낄 수 있죠. 무엇보다 ‘자신이 수확한 배’라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면서 소비자들이 ‘작은 농장주’가 된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이처럼 어룡농원에선 연간 35만원의 비용만 지불하면 자신만의 배나무를 가질 수 있고, 가을철 배나무에 달리는 200개 내외의 배도 당연히 ‘작은 농장주’의 소유가 된다. 농장에 수시로 방문해 아름다운 배꽃을 구경하거나 다양한 농촌체험과 팜파티에 참여하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 가족과 연인, 직장동료, 동창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배나무를 분양받는데, 이름표에는 합격기원이나 건강과 같은 각자의 소망과 소원이 담겨있다. 배나무가 경제적 가치를 넘어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고, 이는 자연스럽게 부가가치로 이어지고 있다.

▲ 어룡농원에서 배나무를 분양받은 ‘작은 농장주’ 가족의 한 아이가 사다리에 올라 배나무를 관리하고 있다.

어룡농원은 배나무를 분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비자들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현재 과원에서 생산되는 배 대부분이 입소문을 타고 직거래로 유통되는데, 이 창구가 바로 모바일을 활용한 SNS다. 

“귀농 초기부터 SNS를 통해 농원의 소식을 알리고, 주문도 받았어요. 이제는 SNS가 주문창구가 됐죠.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늘었는데 하루는 택배로 보낸 배가 다 망가졌다는 항의전화가 온 거에요. 대개 택배회사에 책임을 전가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 당장 포장박스를 스티로폼으로 바꿔 개선했어요. 포장비용이 2배나 더 올랐지만 소비자와의 신뢰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실시간으로 포장되는 모습과 택배차가 싣고 가는 모습을 문자로 보내고, 잘 도착했는지 안부를 묻죠. 물론 귀찮지만, 새로운 고객을 만드는 수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상열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최근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에 나서고 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그의 새로운 시도는 귀농 후 불과 4년이란 짧은 시간에 어룡농원이 유명세를 타는데 한몫을 했다.

“계란으로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물으면 대개 요리를 많이 얘기해요. 하지만 개그맨 전유성 씨는 바위치기, 멍 풀기 등 기발한 답변을 내놓죠. 농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꼭 먹는 것만 국한하지 말고 고정관념을 깨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어요. 중국 관광객들이 이화여대를 반드시 찾는 이유는 이화(梨化, 배꽃)의 중국어 발음 ‘리화’가 이익이 생긴다는 뜻의 ‘리파’와 비슷하기 때문이죠. 배나무에 피는 배꽃에 돈을 잘 벌게 해준다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문화관광자원으로 발전시키면 중국 관광객들이 얼마든지 농장을 방문하게 할 수 있어요.”
 

▲ 이 나무에서 열리는 배는 봉촌초교 12회 동창회에서 장학금을 주는데 사용된다.

농촌체험관광의 경우도 어룡농원은 아이들보다는 실버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60~70대 실버세대를 농촌체험의 주요대상으로 삼고 있어요. 일종의 역발상이죠. 100세 시대에 도시 어르신들이 체험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더라고요. 몇몇 ‘작은 농장주’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데 농촌체험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은 걸 보고 앞으로 실버세대를 위한 체험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홍보할 생각이에요.”

이 대표는 올해부터 제주도 서귀포에 소재한 ‘제주그린팜 감귤농장’과 콜라보레이션(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배나무와 감귤나무를 패키지로 분양하는 새로운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작은 농장주’들은 연간 7만원만 더 지불하면 배나무에 걸린 이름표가 제주도 감귤나무에도 걸리고, 감귤과 한라봉 등을 받아볼 수 있다. 물론 제주도 방문 시 체험 및 시식도 가능하다.

“앞으로는 협력을 통한 농산물유통이 부각될 거예요. 예를 들어 절임배추를 판매할 때 김장용 배를 함께 판매하는 식이죠. 배나무 분양도 개인농장 간 협력에 머무르지 말고 지자체와 함께 발전하면 좋겠어요. 지자체와 배농가들이 결연사업을 통해 신혼부부 등에게 배나무 갖기를 지원하는 거죠. 결국 혼자선 멀리가지 못해요. 더불어 함께하는 것이야 말로 새로운 대안유통이 아닐까요.”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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