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 원예농산물 최초로 인삼 분야에서 의무자조금 도입이 이뤄지며 많은 기대를 낳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인삼 의무자조금 출범식 모습.
▲ 원예농산물 자조금은 FTA체결 및 소비 침체 등의 대내외적인 여건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품목별 생존 위기를 뚫어낼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진은 한국백합생산자연합회가 꽃 소비 촉진 활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


원예농산물 분야의 의무자조금 전환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임의자조금 수준에서 운용되던 품목별 자조금은 FTA 체결 및 소비 부진 등의 대내외적인 여건 변화와 맞물리며 밖으로는 수입 농산물과의 경쟁력 제고, 안으로는 소비 홍보 차원에서 의무자조금 도입이라는 선택지로 압축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정부도 2017년까지 원예농산물 14개 품목을 의무자조금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의무자조금 도입이 정책적으로도 본격화되고 있다. 이에 원예농산물 분야의 품목별 자조금 운용 실태를 점검하고, 이들 품목이 의무자조금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제와 전환 가능성 등을 들여다본다.

 

#정부 정책 방향은

2017년까지 14개 품목 의무자조금으로 전환 본격화
임의자조금 지원 졸업제·대납 인정 비중 축소 등 나서


농림축산식품부는 2014년 7월 품목생산자의 조직화를 통한 생산자 중심의 농산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원예농산물 자조금 정책을 대폭 개편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원예농산물 자조금은 2000년부터 참다래, 파프리카에서 시작된 이후 2013년까지 24개의 임의자조금 단체가 구성·운영될 만큼 양적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자조금의 당초 도입 목적과는 달리 일부 품목의 경우 생산자 참여와 주인의식이 부족해 거출률이 현저히 떨어져 농협 등이 자조금을 대납하는 형태가 발생해 왔다. 이렇다 보니 자조금이 정부에 의존하는 형태가 되고 부족한 종자돈은 단순 홍보 및 이벤트성 행사에 편중되는 등 여러 문제점이 노출돼 온 것이 사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자조금 정책과 관련된 법률과 조직 등을 정비해 의무자조금으로의 도입과 전환을 지원키로 했다. 또한 △기존 임의자조금 품목은 2017년까지 인정하는 등의 임의자조금 지원 졸업제를 도입 △거출금액이 1억원 미만인 품목에 대해서는 정부 지원을 중단 △자조금을 대납하는 인정 비중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등 원예자조금 지원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적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다.

이런 결과에 따라 지난해 인삼, 버섯, 참다래, 파프리카, 백합 등 5개 품목을 의무자조금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들 품목이 의무자조금으로 전환할 경우 자조금의 규모는 정부 지원금을 포함해 인삼이 연간 20억원, 버섯 6억원, 참다래 10억원, 파프리카 25억원, 백합 15억원이 예상됐다. 이외에도 2017년까지 14개 품목을 의무자조금으로 단계적 전환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품목별 의무자조금 실태는

인삼 의무자조금 성공, 파프리카는 연말부터 전환 준비
백합 연내 마무리, 참다래 더딘 걸음·버섯은 갈 길 멀어


5개 품목 가운데 정부 계획에 따라 의무자조금으로 전환된 품목은 인삼이 유일하다. 인삼 분야는 2015년 7월 의무자조금을 도입하고 출범했다. 그러나 버섯, 참다래, 파프리카, 백합 등의 품목은 지난해 의무자조금을 출범시키지 못하는 등 원예농산물의 의무자조금 전환은 다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일부 품목은 임의자조금조차 출범시키지 못한 상황이다.

▲인삼=지난해 7월부터 농산물 최초로 인삼 분야에서 의무자조금이 도입됐다. 2007년 임의 자조금 도입 이후 8년여 만이며, 의무자조금 도입을 논의한 지 3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그만큼 의무자조금 도입이라는 산을 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삼업계를 아우를 수 있는 대표 조직인 한국인삼협회가 지난해 1월 설립되며 의무자조금 도입이 급물살을 탔다. 이어 5월 대의원 선거를 통해 의무자조금 도입 찬반 투표를 거친 뒤 협회 내 인삼자조금관리위원회가 구성됐고, 이곳에서 현재 의무자조금의 전반적인 운영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단 시행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높은 거출 실적이라는 뚜렷한 성과가 외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으로 인삼 의무자조금은 15억4700만원 조성됐다. 생산농가·인삼농협·자체검사업체 등의 거출액 10억1800만원과 정부 지원금 5억2900만원을 합한 금액이다. 생산농가 등의 거출은 애초 목표 9억3200만원보다 약 9% 더 늘어나며 목표 거출률을 109% 초과 달성했다.

▲파프리카=파프리카는 올해 12월 의무자조금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대의원 선거를 위한 선거인명부 작성이 마무리됐고 이를 바탕으로 대의원을 선출해야 하는 과정을 남겨두고 있다. 당초 지난해 의무자조금 출범을 위한 논의가 본격 됐지만 내부적으로 거출방식에 대한 논의 등 의무자조금 전환을 위한 선행조건에 다소 이견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기존 자조회가 수출농가 중심이었던 반면 의무자조금으로 전환하면 내수를 겨냥해 생산하는 농가까지 규합해야 하는데, 이들 농가들의 파프리카 생산과 관리에 대한 차이도 있어 이를 어떻게 평준화 또는 상향시킬지도 여지로 남아 있다.

▲백합=한국백합생산자중앙연합회가 이끌고 있는 백합 임의자조금의 경우 2016년 올해 의무자조금으로의 전환 절차를 완전히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한국백합생산자중앙연합회는 지난해 대의원 총회 자리에서 의무자조금 전환을 결정했으며, 올해 1월 초에 농식품부로부터 각 지역 백합 생산현황과 농가정보를 받았다. 국내 전체 백합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선거인 명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 그러나 한국백합생산자중앙연합회에서 파악하고 있는 생산자 현황과 건네받은 자료 현황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현재는 양측 자료를 보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당초 한국백합생산자중앙연합회는 공판장 등을 통해 거출을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농안법 상 근거가 없어 현재는 농식품부와 재차 거출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에 재배면적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올해 의무자조금 전환을 앞두고 남은 과제가 많지만 현재 백합생산자중앙연합회는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참다래=농식품부의 계획대로라면 참다래는 지난해 6~7월경 의무자조금 결성을 위한 투표를 실시하고 이후 의무자조금으로 전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재 선거인명부가 여전히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농협의 참여의사도 확실치 않고 개인 유통업체들도 참여에 대한 동의나 선거인명부 조사과정에서 동의가 있어야 되지만 이러한 부분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참다래의 의무자조금 전환은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버섯=버섯은 아직 임의자조금조차 구성되지 못했다. 당초 통합의무자조금으로 출범하려고 계획했지만 경로를 수정했다. 따라서 새송이버섯이나 팽이버섯 등 일부 품목은 임의자조금으로 출범을 하고 다른 품목이 합쳐지는 형태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버섯 역시 의무자조금 출범이 지지부진한 원인으로는 거출방식이 지목되고 있다. 일부 버섯 품목은 배지원료에서 거출하는 것이 용이하지만 다른 품목에서는 이 방안이 용이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사실상 자조금 출범에서부터 발이 묶였다. 이처럼 자조금 출범부터 난항을 겪다 보니 선거인명부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왜 지지부진한가

축산물과 달리 출하처 다양…거출방식·거출목 논의 제자리
내부 이해관계 복잡·갈등, 거출시점 몰려 운영 차질 우려도


▲제각각인 거출방식과 거출목=원예농산물 의무자조금 전환을 위한 논의가 품목별로 이뤄지고 있지만, 전반적인 속도감은 지지부진하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원예농산물이 갖는 출하방식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농축산물 품목 가운데 가장 먼저 의무자조금을 출범시킨 양돈과 한우, 육계, 산란계, 낙농 등 축산물은 출하 통로가 사실상 단일화 돼 있다. 법적으로 도축장과 도계장 등을 이용하지 않으면 불법적인 유통 형태로 취급되기 때문에 농가 자조금을 거출하는 이른바 거출목이 확실하다. 따라서 지역별, 업체별로 갖춘 도축장과 도계장, 유업체 등의 협조를 통해 다른 품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출이 용이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원예농산물은 이와 달리 공영도매시장 출하, 농협 및 영농조합 출하, 대형유통업체 출하, 소비자 직거래 등을 통한 직접 판매와 같이 출하처가 다양하다. 농가가 납부하는 거출금 납부 주체를 정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원예농산물 단체들이 의무자조금 전환 시 가장 애로를 겪는 부분이 거출목을 어디에 둘 것이냐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의가 반복되면서 일부 품목에서는 거출방식과 거출목에 대한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 품목 단체 관계자는 “거출금 납부 방식이 제일 문제로 인식돼 논의를 계속했음에도 뚜렷한 방안이 없다 보니 시간만 흘러간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올해 의무자조금 출범을 준비 중인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의 박종서 사무총장은 “우리도 초반에 거출방식에 대한 논의가 많았는데 생산면적 대비 거출금으로 정했다”며 “외국의 제스프리나 선키스트와 같은 유통·마케팅 조직이나 기구가 조직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의 상황을 볼 때 출하단계의 의무자조금 거출은 힘든 구조다”고 말했다.

▲내부 이해관계와 갈등도 한 부분=거출 방식 등의 기술적 측면 외에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업계 내부의 이해관계와 갈등도 의무자조금 도입 속도를 떨어뜨리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의무자조금 추진 과정에서 기존 임의자조금 운영을 주도한 농협과 민간 진영 간의 주도권 갈등이 치열했던 인삼 분야가 대표적인 사례다.

인삼 분야는 주산지·연근(4~6년근)·삼종(백삼·태극삼·홍삼)별로 그 특징과 수요가 뚜렷하게 구분되고, 생산 및 유통·자체검사업체, 수출 등의 이해관계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의무자조금 도입이라는 결과를 도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해소되지 않은 앙금들로 인해 의무자조금 전환 논의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고, 도입 결실을 맺기까지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은 의무자조금 도입 이후 자조금 운영 동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우려가 야기되는 지점이다.

이와 더불어 축산 분야와 달리 거출 방식 등에서 변동 가능성이 큰 농산물의 경우 자조금 거출이 어느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의무자조금 사업 추진 과정의 문제점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자조금 거출이 어느 한 시점에 집중적으로 이뤄질 경우가 있는데, 하반기에 몰릴수록 사업 운영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출범한 인삼 의무자조금의 경우 자조금 거출이 10월 이후에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자조금 예산 집행 등의 어려움이 불가피한 측면이 컸다.


#의무자조금, 왜 필요하나

농업 환경 변화…생산 넘어 유통·소비까지 고민 필요
품목 자체 생존 직결…농가 동질감·공동체 의식 형성


농업 분야가 갈수록 규모화·산업화되는 추세 속에서 품목별 경쟁력과 대응력을 높이는 것은 품목 자체의 생존과 직결되는 측면으로 여겨진다. 이에 대한 하나의 방안으로 자조금은 산업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업계 안팎에서 대두돼 왔다.

축산 분야가 대표적인 사례다. 축산 자조금은 WTO 체결과 각종 FTA 체결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국내 축산 농가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조성되기 시작했다. 축산 분야에서 거출 규모가 가장 큰 한우자조금의 경우 2005년 조성 당시 43억원으로 출발했지만, 10년 뒤인 2015년에는 360억원까지 불어나며 외형적으로 9배나 커졌다. 농가 참여도를 알 수 있는 지표인 거출률도 매년 증가해 2014년 99%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우 농가들은 자조금을 통해 유통구조 개선 및 수급 안정, 소비자의 부정적인 인식 개선, 교육 홍보, 조사연구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전개해 한우산업의 발전과 안정을 꾀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자조금의 필요성은 농업 패러다임의 변화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기존 농업 환경이 생산 분야에만 집중해 왔다면, 앞으로는 생산 단계를 나아가 유통구조 개선, 소비자 홍보 방안 등도 고민해야 하는 흐름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생산에서부터 소비까지의 전 흐름을 아우르는 동시에 각 단계의 변수 등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측면에서도 자조금의 존재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농가 스스로 자조금 거출에 참여하면서 동질감과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데에도 자조금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무자조금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쪽에 무게가 커지고 있다.

축산 분야의 자조금 계획 수립 등에 관여했던 박종수 충남대 교수는 “이전에는 농업인들은 생산 분야만 신경 쓰면 됐지만, 수입 개방 이후 다양한 먹거리와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생산과 소비 등을 이을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자조금이 할 수 있으며, 이미 축산 분야에서 그 부분들이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민·고성진·김현희 기자 kimym@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