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프다.

얼마 전 정부 콩 수매가 있었다. 검사원은 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나오고 농협이 무게를 달고 수량을 체크하고 운송차량을 섭외해서 예정된 정부창고로 향하게 된다. 추산마을 보건소 앞으로 가니 벌써 많은 농민들이 트럭 가득가득 콩을 싣고 오셨고, 이미 차곡차곡 줄 세워 내려놓고 검사원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40킬로그램 콩 자루를 거뜬거뜬 등에 지고 서로서로 마을사람들이 함께 마주잡고 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애타게 기다려온 수매 날이던가? 

겨울이 시작되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렸다. 아니 콩이 아직도 밭에 서있는 농가도 여럿 있다. 때 아닌 겨울비 때문에 콩을 꺾어놓고 아예 수확을 포기한 농가도 있다. 전국 콩 생산의 절반이상이 이곳 괴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옥수수 후작으로 담배 후작으로 콩을 생산하고 있다. 그만큼 괴산지역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졌다. 정부의 콩 수매에 분노한 농민이 트럭에서 콩 자루를 끌어내렸다. 하루 종일 순서를 기다려 얻은 등급이 1,2,3,등외도 아니고 그 상태로는 받을 수 없다고 거절당한 것이다.

땅에 떨어진 콩 자루는 사정없이 낫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콩은 바닥을 굴렀다. 차마 눈뜨고는 못 볼 현장이었다. 얼마나 많은 노력으로 수확한 자식 같은 콩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도 분이 안 풀려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지나가던 농민들도 모두 숨죽이고 어느 한사람 화난 농부를 달랠 엄두도 못 내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라도 분이 풀리고 해결될 일이라면 그리 해야 한다.

그러나 어쩌랴....현실은 농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은지 오래다. 정부는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물대포를 쏘아대고 농산물 값 안정을 내세워 수입농산물을 쏟아내고 있다. 검사원에게 불합격당한 콩을 가지고 농협 마당에 와서 쏟아버릴게 아니란 걸 분명 알면서도 힘들고 억울한 농부가 통로가 막혔다. 이 답답한 현실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게 정말 싫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차마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어서 자리를 피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날 아침 제일 먼저 검사장에 와서 기다린 또 다른 농부의 아내가 오후 늦게 농협을 찾아오셨다. 눈가가 발갛게 퉁퉁 부어 있었다. 눈물을 삼키고 표시나지 않을 때까지 속을 태우다가 겨우 콩 값을 알아보러 오신거다. 그 댁의 콩은 등외다. 콩을 찔러보던 검사원이 난감한 표정이다. 절반은 회색빛이다. 따뜻한 물을 한잔 얻어 마시면서 들은 얘기가 떠올라 더 아프다. 노모는 콩을 고르다 병이 나셨고 동네할머니들 모두 모시고 몇 날 며칠을 밥해대며 고른 콩의 등급이 등외라니. 콩 값을 묻는 농부의 아내에게 부끄러워 말을 못하고 인쇄된 가격을 손으로 짚어드렸다. 1등급과의 차이는 1/3이 잘려나간 형편없는 값이다. 콩 팔아서 농약 값 자재 값 다 정산해야 내년에 또 농사를 지을 수 있을 텐데 막막하고 답답해서 어떤 위로의 말도 못하고 그냥 눈빛만 마주하고 서있었다.

울화통이 터지는 농촌현실이다. 갈수록 자연재해는 커져가고 농산물 값은 거꾸로 향하고 수입농산물은 미친 듯이 밀려들어온다. 윤리적 소비나 소비자의 양심에 소리쳐보아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새해벽두부터 희망의 목소리로 농촌의 평화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악다구니 같은 농촌의 현실로 인사를 드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다. 이 우울한 마음 눈 속에 파묻어버리고 꽃피는 춘삼월에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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