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요즘 시중에서 쉽게 보는 아열대작물 가운데 ‘여주’가 있다. 당뇨와 고혈압에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재배가 크게 증가했다. 당국에서도 지구온난화 대응, 농가소득 향상을 들어 새로운 작목으로 소개했다. 이는 수입개방 확대로 농산물 가격이 주기적으로 하락하는 마당에 마땅한 대체 작목이 없는 농가들의 소득원 찾기와 한반도 온난화가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여주가 판로에서 문제가 생겼다. 여주의 재배면적은 2009년에 견줘 무려 47배나 늘어,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많은 농가들이 낭패를 겪게 됐다. 모든 농산물이 수입되는 상황에서 소득원을 찾으려다 보니, ‘어떤 작물이 뜬다’거나 ‘어떤 작물이 희망 없다’고 하면 무더기 작목전환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가격폭락이 반복된다. 구조적 문제다. 한·중 FTA 비준, 쌀 시장 전면개방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해온 기존 농정 패러다임을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가소득 보장, 식량안보를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런 국면에서 민간연구소인 ‘GS&J 인스티튜트(이사장 이정환)’의 행보가 논란이다. 처음엔 농민단체의 오랜 투쟁으로 국회에서 무역이득공유제가 논의될 때 ‘현실성도 없고 실리도 없으니 논의를 덮자’며 농업계의 힘을 뺐다.

이후 기부금 방식으로 왜곡돼 실효성마저 의심스런 농어촌상생기금에 대해 재계와 언론이 ‘농업 퍼주기’라고 헐뜯고 나서는데도, 도를 넘어선 이들의 행태를 지적하기보다 ‘GS&J의 우려가 현실로 됐다’며 ‘도무지 현실성이 없는’ 무역이득공유제를 주장한 농민단체와 정치권을 비판한다. 나아가 쌀 수급문제의 해법이라는 ‘긴급제안’을 통해 ‘시장에 의한 수급조절’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농업계의 여론과는 상반되는 주장이다. 이정환 이사장의 발언이 논란이 되는 것은 그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까지 지냈고, 지금도 농정당국에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행보는 재계 등이 부당하게 농민들을 공격하는 시점에 맞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적절성에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주장의 타당성을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농업은 수입품으로 대체되기 어려운 다양한 농산물, 지역특산물 생산에 집중하자’는 주장을 보자. FTA로 인해 모든 품목이 자유롭게 수입돼 가격파동이 일상화된 마당에 그것이 가능한가? 설사 있다 해도, 이런 것은 틈새작물이고, 조금만 재배가 늘어나도 가격이 폭락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여주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는 전체가 아니라 부분을 일반화하는 오류가 될 수 있다.

‘각 지역의 농산물과 다원적 기능을 연계시킨 체험, 여가, 휴양 등 문화서비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하자’는 얘기는 6차산업을 연상케 하는데, 이 역시 우리나라의 소농구조, 농촌의 노령화와 빈곤화 현실을 볼 때 실현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 6차산업이 나름 의미가 있지만, 그것이 성공하려면 생산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 생산이 몸통이라면 6차산업은 꼬리다. 꼬리가 몸통을 살릴 수 없다.

쌀 문제와 관련, ‘공급과잉 현상은 쌀소득보전직불금이 생산 유인으로 작용해 올해 재배면적을 4만7900ha나 증가시킨 게 큰 요인’이라며 ‘고정직불을 폐지하고 소득보전직불제 및 시장격리와 같이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을 왜곡 시키는 정책을 우선 개혁하자’는 논지도 따져봐야 한다.

쌀 재배면적이 늘었다는 것은 현실의 수치가 아니다. 이는 쌀 가격 하락시 재배면적이 줄어야하는데 직불제 때문에 그만큼 줄어들지 않았다는, 모형으로 추정한 수치일 뿐이다. 실제 정부 통계로는 올해 재배면적은 전년대비 1만6162ha(2%) 줄었고, 지난 10년간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쌀값 하락으로 농민들이 불안감에 빠져 있는 마당에 실제 통계가 아닌 추정치까지 내세워 시장논리를 펴는 것은 보기에 민망하다. 고정직불, 시장격리를 폐지하라는 주장 역시 추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수긍하기 어렵다.

사실 지금의 문제는 10년 전 추곡수매를 폐지하고 시장기능에 맡기는 방향으로 양정이 개편되면서 꼬인 측면이 있다. 수급은 시장에 맡기고 소득은 직불로 보전한다고 했지만, 수급도 소득도 성공하지 못했다. 정부는 매년 시장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의 식량이자 농민들의 주 소득원인 쌀은 애초 시장에 맡길 수 없는 품목이었기 때문이다. 양곡관리법으로 정부가 식량을 관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늘 농업의 피폐화는 농업을 개방하고 시장에 맡겨온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을 시장논리로 풀자는 것은 병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국민의 주식인 쌀을 비롯한 식량은 정부 기능을 분명히 하고 매뉴얼을 통해 관리돼야 한다. 농업은 시장에 맡길 것이 아니라 공공재로 다뤄야 한다. 그것이 선진국이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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