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배우 데뷔에 할매들 웃음꽃 활짝”

▲ 영화 '초황령'을 제작한 박동일 감독(왼쪽)과 권순자 조감독은 영화를 통해 농촌의 일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황령1·2리 주민 41명 참여
배우들 평균 나이 70세
수없이 NG나도 화기애애 

조감독 맡아준 아내 큰 도움
도시민 모르는 농촌이야기

카메라에 계속 담을 것

조용한 농촌 마을에 영화배우가 대거 탄생했다. 무려 41명. 평균 나이 70세다. 모두 상주시 은척면 황령1·2리 주민들이다. 이들을 배우로 데뷔시킨 주인공은 박동일(53) 씨. 그는 영화 제작자도, 취미생활로 영화 촬영을 즐겼던 사람도 아니다. 84년 송아지 두 마리와 함께 상주로 내려와 지금은 100마리의 소를 키우는 낙농가다.

몇 년 전 구입한 스마트폰으로 가족들의 일상이 담긴 동영상을 즐겨 찍다가 재미를 붙였다. 캠코더를 장만, 본격적으로 영상작업을 시작한 건 지난 2013년. 그는 상주시 은척면 21개 마을의 구석구석을 찍기 시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40~50년 전 고향을 떠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마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 영상이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그는 영화 촬영을 결심하게 된다. 투병 중이던 큰아버지를 보내고 병환으로 고향을 잠시 떠난 큰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새야 새야 파랑새야>가 그의 첫 작품이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올해 영화제작을 시작했다. 영화제목은 ‘초황령.’ 초황령은 황령1·2리의 옛 지명이다. 올 1월부터 3월까지 시나리오를 작성하며 배우들을 섭외하고 장소 물색에 나섰다. 궂은일을 도맡은 그의 부인, 권순자(48) 조감독의 공로가 컸다.

4월부터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영농자금 대상에서 탈락한 사람과 마을(주민) 간의 갈등을 소재로 삼았다. 농촌마을이라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연기가 처음인 주민들과 초보 감독이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선 시간이 빠듯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착유하고 수시로 TMR 사료를 만드는 등 일과 병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농사가 주업인 배우들과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에 고작 1~2컷 밖에 촬영하지 못했다. 좋은 영상을 담고도 마이크를 켜지 않아 재촬영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때로는 화면에 배우들의 얼굴이 사라진 채 말소리만 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촬영장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는 “배우들이 대사를 외우지 않고 촬영장에 온다. 사실 나도 못 외운다.(웃음) 현장에서 수없이 NG가 발생해도 짜증보다는 서로 놀리거나 웃느라 바빴다”며 당시 촬영장 분위기를 전했다.

박동일·권순자 부부와 41명의 배우가 탄생시킨 초황령은 지난 11월 25일 은척면사무소에서 첫 선을 보였다. 이정백 상주시장이 발걸음을 했고 지역주민들의 관심도 높았다. 영화 상영까지 주변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다. 박 씨는 “오전 한 번만 상영할 계획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두 번 틀었다”며 “농촌 이야기를 잘 다뤘다는 등 영화에 대한 좋은 평이 나왔고 지난 1일 상주시청에서도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추가 상영했다”고 밝혔다.
 

▲ (오른쪽부터)우계화(81), 황계월(81), 최금순(80) 할머니가 박동일 감독과 함께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고 있다.

영화가 공개된 후 배우들은 스타가 됐다. 신문과 방송 등 많은 언론에서도 초황령 이야기를 수차례 보도했다. 주민들은 언론에 나온 자신들과 영화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담소를 나눴다. 16일 마을회관에서 만난 할머니들도 영화 이야기꽃을 피웠다. 최금순(80) 할머니는 “영화에, TV에, 신문에....여기저기 우리 모습이 나온다”며 “영화 촬영이 매우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또 다른 할머니는 “내가 영상에 나오니 자식들이 신기해하더라”고 말했다.

데뷔작품의 성공으로 흥행(?) 감독 대열에 오른 그는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주연 배우는 이미 섭외됐다. 박 씨는 “상주에서 오이농사를 하는 젊은 부부(38살·36살)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라며 “앞으로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농촌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만 걱정거리가 있다. 주민들이 깡패·도둑 등 나쁜 배역과 죽는 역할 등의 배역을 꺼린단다. 본인이 실제 시체가 되고 나쁜 인물이 되는 것처럼 느껴져서다. 농촌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악역할 수 있는 분 찾습니다”라고 웃으며 광고했다.

22년간 이어진 대한민국 최장수 프로그램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전원일기’가 2002년 끝난 이후 농촌의 일상이 담긴 프로그램은 사실상 찾기 어렵다. 그래서 도시의 젊은 사람들에게 농촌은 더욱 낯선 공간일지 모른다. “농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영화로 다루고 싶다. 농촌의 일상이 담긴 초황령2, 초황령3 등 시리즈 제작도 가능하다”는 박동일 씨를 통해 도시민들이 잊고 있거나 잘 알지 못하는 농촌의 이야기가 전달되길 기대한다. 그는 오늘도 농촌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나간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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