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보다 가축이 많다는 뉴질랜드 농촌의 풍경. 여의도 면적의 몇 배가 넘는 농장이 즐비하다. 농산물 수출이 나라 전체 수출의 절반이 넘는 수출농업 강국이다.

뉴질랜드 하면 드넓은 초지와 양과 소 등 가축이 사람보다 많은 나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식량의 76%를 수입하는 수입국이지만, 이 나라는 농산물 수출이 나라 전체 수출의 50%를 넘는 수출농업국이다. 강력한 품목별 생산자조직을 기반으로 농업이 경제를 이끌고, 농민이 대우 받는 나라다. 환경을 중시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추구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및 사회보장제도를 갖췄다. 현지 취재를 통해 뉴질랜드의 유기농업과 농정개혁에 대해 살펴보고, 우리 농업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지 찾아본다.


대규모 수출농업 유지 위해
수입규제 철폐 등 ‘창’ 필요
우리나라는 논농사·소농 위주
농업보호 위한 ‘방패’ 절실
벤치마킹·비교 대상 못돼

품목별 생산자조직 키우고
지속가능성·식량안보 중심
농정 패러다임 전환해야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뉴질랜드를 방문하더니 덜컥 ‘정부보조금 없이 경쟁력을 구축한 뉴질랜드를 벤치마킹해서 우리 농업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해 일약 유명해진 뉴질랜드의 농업. 그러나 뉴질랜드는 농업의 역사부터 여건까지 우리나라와는 판이하기 때문에 보조금 폐지가 우리 농업의 모델이 될 수는 없다.

뉴질랜드는 80년대 농업보조금을 철폐했다. 원래 뉴질랜드 농업은 농업생산의 90%를 수출, 총수출액의 60%를 차지하는 수출산업이었다. 쇠고기, 낙농품 등 축산물을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수출해 1950년대에 이미 세계에서 소득이 가장 높은 국가였다. 그러다 주 수출국이던 영국이 EC(유럽공동체)에 가입, 뉴질랜드에 주었던 특혜가 사라져 큰 타격을 입었다. 여기에 오일쇼크, 환율 억제로 인한 수출가격 하락, 농자재가격 상승, 인플레이션 등으로 농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자 정부는 농업을 구제하기 위해 보조금을 집중했고, 이것이 다시 재정적자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했다.

이 때 뉴질랜드 농민연합이 나섰는데 1983년, 정부에 대해 환율조정, 재정지출 억제, 노동시장, 수입자유화, 운수 등 산업분야 경쟁체제 도입을 골자로 경제개혁을 요구했다.

뉴질랜드 농업은 수출산업이었으니 농민단체는 전부터 수입규제 철폐를 요구해왔고, 반대로 제조업계는 수입규제를 요구하며 대립해왔다. 이것이 수용된다면 재정지출 억제를 위해 보조금 폐지를 수용하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와 정 반대의 상황이다. 김한호 서울대 교수는 “뉴질랜드 농업은 수출산업으로 우리나라의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일관되게 모든 상품의 수입자유화를 주장하는 입장이었고, 수입 억제를 통해 국내시장을 지키려는 우리나라 농업의 입장과는 정반대였다”며 “우리나라 농업개혁의 모델이 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혁과정에서 뉴질랜드는 구조조정으로 어려운 농가들을 방치하지 않았다. 농업부문 총 부채의 20%를 탕감했고, 생존이 불가능한 농가들에게는 일일생계비를 지원했다. 부채 때문에 농가가 탈농을 원할 경우 정부가 기존의 사회복지프로그램을 확대 적용해 새 집, 자동차, 가구 등을 제공했다.

뉴질랜드의 호당 경지면적은 189ha로 한국의 1.5ha에 비해 126배나 된다. 뉴질랜드에 비하면 우리 농가의 규모는 텃밭에 불과하다. 우리는 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경종농업이고, 뉴질랜드는 넓은 초지를 이용한 축산업이 중심이다. 수출국인 뉴질랜드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2014년 기준으로 곡물자급률이 24%에 불과하고, 76%를 해외에서 사다 먹는 식량 순수입국인 것이다. 상식으로 판단해도 뉴질랜드는 우리와 다르다.

뉴질랜드 농업이 수출을 위해 국내외 규제철폐, 수출마케팅 조직이라는 ‘창’이 필요하다면 우리나라 농업은 식량안보를 지키고 소농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가 필요하다. 그 방패란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이고, 농업의 공익적 기능에 대한 보상과 농가소득 보장, 그리고 식량안보를 중심으로 하는 농정이다. 우리나라 보조금이 많다고 왜곡되는 경우가 많은데, 재정지불액으로만 보조금을 따진다면 OECD 국가 평균의 절반도 안 된다. 우리나라는 뉴질랜드, 이스라엘, 호주, 칠레, 캐나다와 같이 꼴찌 그룹이다.

뉴질랜드는 낙농협동조합 ‘폰테라’, 키위 마케팅회사 ‘제스프리’ 등 각 축종별, 품목별로 전문조직이 잘 만들어져, 생산자를 대변하고 마케팅을 선도한다. 그리고 생산자조직의 연합체인 농민연합도 제 역할을 한다. 뉴질랜드와 우리나라의 생산자조직의 여건이 다르긴 하지만,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품목별 전문화라는 방향은 우리가 참고해야 한다. 이성목 지리산표고버섯농원 대표(산청)는 “호주·뉴질랜드와 한국의 농업은 비교 대상이 아니라 각자의 역사와 방식이 있으며, 중요한 것은 농업의 지속가능성”이라며 “품목별 생산자의 조직화는 우리나라에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농민의 협동조합으로서 정체성을 의심 받고, 품목별 전문화에도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농협을 개혁하는 일이 중요하다.

오클랜드에서는 마침 뉴질랜드에 와 있는 국승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을 만날 수 있었다. 국 박사는 “규모화나 가격 경쟁은 한계가 있는 만큼 재검토 돼야 한다”며 “농가소득 안정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농정 전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를 위한 재원을 농산물에 대해 부가가치세 10%를 부과해 충당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호주·뉴질랜드 농업 현장에서 확인한 것은, 경쟁과 효율, 기업농 규모화를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농정으로는 이들 수출대국과 경쟁할 수 없고, 농정 패러다임을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식량안보를 중심으로 재편해 우리만의 농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점이다.
 

▲ 뉴질랜드의 4개 인증기관마크. 왼쪽에서 두번째가 대표적인 바이오그로이고, 4번째가 OFNZ 인증이다.

● 신뢰 바탕으로 소농 협동 촉진하는 유기농 인증제도
소농 비용 부담 덜고 접근성 향상

유기농산물 인증기관 4개
저비용 인증보급 OFNZ 주목
유기농업 확대·농가 협력 촉진

 

뉴질랜드의 유기농산물 시장은 2007년 2억500만 뉴질랜드 달러에서 2009년 2억7500만 달러, 2012년 3억5000만 달러로 성장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선 유기농산물이 수퍼마켓에서 주로 팔리고, 1/3 정도가 유기전문 매장에서 유통된다.

농산물 수출 강국답게 유기농산물도 내수보다 수출이 많다. 품목별 수출액은 신선과일 및 채소가 가장 많고, 다음이 낙농품, 가공식품, 와인과 맥주를 포함한 음료, 육류 및 양모, 꿀 순이다. 뉴질랜드의 유기농산물 수출대상국별 수출액을 비교하면, 북미 28%, 유럽 27%, 호주 15%에 이어 한국이 11%로 4위 수출대상국이었다. 다음이 일본 10%, 6%가 기타 아시아, 중국이 3%다.

브렌단 호아레(Brendan Hoare·사진) 뉴질랜드 유기농협회 회장은 뉴질랜드의 친환경 생산을 설명하면서 뉴질랜드와 한국의 유기인증 제도를 비교했다. 그는 “한국의 유기인증은 규제 중심이고, 뉴질랜드는 자유롭다. 뉴질랜드는 정부가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 사람이 많지 않으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게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뉴질랜드의 유기농산물 인증기관은 ‘바이오그로(Bio-gro)’, ‘OFNZ’ 등 4개 종류다. 대표적인 인증기관으로 1983년에 설립된 ‘바이오그로’는 1차산물, 가공품, 농자재, 수출품, 소매상을 포함한 약 600개의 인증을 진행한다. 바이오그로 상표로 판매되는 제품은 매년 1억 뉴질랜드 달러 이상이다.

2002년 농림부 지원으로 설립된 OFNZ는 전세계에서 유례없는 인증기관이다. 이 기관은 로컬푸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고, 소농이 증가하면서 비용이 많이 드는 유기인증을 대체하기 위해 내수시장에 한해 저비용 인증을 보급한다. 인증비용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인증비용의 10% 정도라고 한다. 3~5 농가가 공동체를 형성, 뉴질랜드 공인인증기관인 바이오그로 기준에 맞게 농장을 관리하는지 상호 점검한 후 감사를 통해 유기인증을 판정한다. 저렴한 인증비용으로 OFNZ를 통해 유기인증을 획득하는 농장, 지역사회단체, 학교, 개인이 늘어나면서 유기농업에 대한 접근성이 향상됐다고 한다. 현재 170 농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농가 규모는 1ha 미만~100ha까지 다양하지만, 평균적으로 10ha정도다. 이 제도를 통해 지역 농가가 유기농업으로 농산물을 재배, 판매하는 농민시장을 후원하는 것이다. 유기인증 제도가 농가의 비용을 낮추고 소농의 협력과 조직화를 촉진하는 셈이다.

최혜석 의령조청한과 부대표는 “이 제도는 유기농업 확대와 농가간 협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협회의 본분을 200% 달성하는 셈”이라고 평했다. 신재호 농업회사법인 거북이학교 총무이사는 “서로를 믿고 견제하면서 인증을 하는 자가인증으로, 이런 유기인증을 국민들은 신뢰한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생산농가, 인증단체, 소비자들이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인증체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한국 수출 확대 ‘눈독’

유기가공식품 동등성협정 관심
현재 미국·EU 2개국과 체결


뉴질랜드 유기농산업은 한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브렌단 호아레 회장은 “한국에 뉴질랜드 유기농산물을 수출하기 위해 협상을 기다리는데, 한국은 기준이 높고 까다롭다”고 말했다. 이는 FTA를 계기로 미국처럼 유기가공식품 동등성 협정을 통해 한국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려는 뉴질랜드 유기농산업의 목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뉴질랜드는 어떻게든 수출한다. 나라는 작고 시장은 멀기 때문이다”는 그의 표현에서 수출로 먹고 사는 뉴질랜드의 농업구조를 생각하게 한다.

유기가공식품 동등성협정이란 상대국에서 유기로 인증을 받은 가공식품은 인증을 별도로 획득할 필요 없이 ‘유기’로 표시해 수출입할 수 있는 제도이다. 현재 우리나라와 동등성 협정을 맺은 곳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2개국이며, 동등성 협정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의 인증제도에 맞춰 인증을 받고 수출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와 동등성 협정을 타진 중인 나라는 뉴질랜드, 호주, 칠레, 일본 등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정식 협상이 진행 중인 나라는 없고, 상호 제도를 비교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 뉴질랜드에는 생태적인 방법의 농사와 주거, 생활을 추구하는 ‘퍼머컬처’ 농장이 많다. 사진은 ‘카오스 스프링스’ 농장.

● 퍼머컬처 현장
“삶과 지역사회 지속가능하도록”

자연-사람이 함께하는 생태농업
많은 도시민들이 퍼머컬쳐 꿈꿔


환경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중시하는 뉴질랜드에서는 퍼머컬처(permaculture)를 추구하고 있는 곳이 많다. 퍼머컬처란, ‘영속적인 문화(permanent culture)’와 ‘영속적인 농업(permanent agriculture)’의 축약어로, 보다 생태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농장을 경영하며, 삶과 지역사회를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자는 운동이다.

오클랜드 서쪽 와이타케레 대자연 속에서 뉴질랜드 유기농협회 회장인 브렌단 호아레가 4ha 규모로 조성한 ‘롱브리스 농장’은 자연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인다. 여러 종의 수목과 풀, 곤충들이 좋은 흙과 어울려 건강한 생태계를 이루고 산다. 해충도 없고 잡초도 없으며, 모든 생명체들이 환영받는 곳이다. 곤충과 새들을 위해 농가 주변의 도량을 넓혀 물을 천천히 흐르게 하고, 잡초를 베면 그대로 땅에 되돌려준다.

뉴질랜드 북섬 와이히에서 강변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농장 ‘카오스 스프링스’는 생명역동농업(Bio Dynamic)을 이용한 유기퇴비를 생산하고 교육하는 농장이다. 이 농법은 하늘은 땅을 위해서,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이런 연관을 깨우치고 그것을 농사에 적용한다. 농장주 ‘스티브’는 외부 반입 없이 자체적으로 토양관리를 한다. 식물 추출물이 사용된 퇴비를 생산하며, 뿌리, 엽채, 화훼, 과수 순으로 윤작을 한다. 뉴질랜드의 생명역동농업 회원은 300~400명 정도라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많은 도시민들이 퍼머컬처를 꿈꾼다. 도시생활자가 농촌에서의 삶을 통해 삶의 의미를 즐기기 때문에 도시와 농촌을 분리해서 취급하지 않는다.
 

▲ 블루베리 생산과 농가식당, 판매점을 같이 운영하는 마마쿠 블루베리농장. 농민시장과 농가판매점에서 물량을 소화한다.

● 간소한 가공시설로 좋은 제품 만드는 6차산업
“비용 걱정없이 다양한 제품 생산”

HACCP 가공시설 큰돈 안들어
설비투자 부담 큰 우리와 딴판


마마쿠 블루베리농장은 면적 20ha에서 다양한 종류의 블루베리를 생산한다. 수확시기도 모두 다르다. 주요 생산품은 생과, 잼, 와인, 아이스크림, 농축액, 젤리, 주스, 핸드크림, 비누 등이다. 농장과 판매점, 식당을 같이 운영하며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형적인 6차산업화 사례다. 농장 인력은 워킹 홀리데이를 활용한다. 로토루아라는 유명 관광지 인근 농민시장에서 물량을 직접 판매하고, 나머지는 가공한다.

눈여겨 볼 것은 HACCP 가공시설이다. 농장의 가공시설은 식당의 부엌 수준 정도의 크기에 불과했고, 비수기라 하지만 그리 정돈된 이미지도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HACCP 인증을 받으려면 많은 돈을 들여 시설을 해야 하기 때문에 소농으로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점을 감안할 때 놀라운 장면이었다.

유지혜 신나라농산 대표(김제)는 “우리나라 식이라면 엄청 깨끗한 시설과 각종 장비, 입구와 출구도 달라야 하고, 기계 하나 당 칸막이도 있어야 하고, 농가 부담이 어마어마한 시설이 있어야 한다”며 “뉴질랜드에선 설비투자에 돈이 적게 들어 생산원가 걱정도 없으니 좋은 재료로 좋은 가공품이 나온다”고 해석한다. 문상권 거창 봉우산농장 대표는 “우리나라에선 HACCP 인증 받는데 시설과 비용이 큰 부담인데, 6차산업이 활성화 되려면 가공시설과 인증제의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최근범 구례육묘장 대표는 “지역별 특성을 무시한 판박이를 찍어내는 6차산업을 개선해야 한다”며 “6차산업이 성공하려면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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