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경쟁력이 있다는 농업강국 호주와 뉴질랜드. 지난해 호주에 이어 올해 뉴질랜드와의 FTA 비준으로 농업이 격랑에 휘말리고 있다. 이미 이들 나라의 쇠고기와 유제품, 키위 등 농축산물이 우리 시장을 잠식한 상황에서 앞으로 더욱 많은 시장을 내줄 판이다.

지난 11월10일~19일까지 8박10일 동안 대산농촌재단이 ‘협력과 배려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주제로 주관한 호주·뉴질랜드 농업연수에 동행취재했다. 이들 나라는 세계적인 농산물 수출국으로 한국시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현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때 정부가 보조금이 없는 뉴질랜드의 농업을 배워야 한다며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아 논쟁이 된 일이 있다. 하지만, 호주와 뉴질랜드 농업에서 배울 것은 따로 있었다. 이들 나라는 탄탄한 생산자조직으로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나라에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정부와 국민의 공감대가 확실했다. 농민들이 자부심을 갖고 농사를 짓고, 도시민이나 농민이나 소득과 사회보장에서 차별받지 않는다.

세계적인 대경영인 이곳에선 소농·유기농조차도 우리나라보다 수십배 규모지만, 생존이 쉽지 않다. 그래서 이들은 파머스마켓, 로컬푸드, 슬로푸드, 온라인 직거래, 농가 가공 등을 통해 도시민과 연대하고 생산자간 협동을 통해 그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호주·뉴질랜드로부터 배울 점과 다른 점, 우리 농업이 나아갈 길에 대해 2차례에 걸쳐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 콜링우드 어린이 체험농장. 주말을 맞은 가족들이 가축과 소통하며 농업과 친해지는 곳이다.
▲ 콜링우드 파머스마켓. 농민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 소비자와 만난다.

●체험농장과 농민시장
동물과 자연 맘껏 즐기며 농업의 가치 배우고 소통

도시 근교 금싸라기 땅,
지방자치단체서 제공
온가족 참여 축제의 장이자
농업과 환경 배움의 장


멜버른 시내 야라 강변 옆 고즈넉한 아봇츠포드 수도원을 끼고 자리한 ‘콜링우드 어린이 농장’은 중세 유럽을 옮겨 놓은 듯 마치 동화의 나라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농장은 지방자치단체가 미래세대인 어린이들에게 동물과 농업,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제공한 것이다. 어린이 청소년들,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들이 끊임없이 이곳을 찾는다. 염소, 말, 당나귀, 돼지, 오리, 닭은 물론이고 직접 우유를 짜 볼 수 있는 젖소 체험도 있다. 매월 첫째 일요일에 열리는 바비큐와 말타기 행사도 가족들에게 인기다. 이곳을 통해 주변 5km를 천천히 걷는 둘레길도 있다. 입장료는 체험농장 후원금 명목으로 호주 돈 약간만 내면 된다.

이곳에선 농민들이 주도하는 파머스마켓과, 농민들과 슬로푸드 멜버른이 함께 주관하는 파머스마켓 등 두 개의 농민시장이 주말에 번갈아 열린다. 멜버른이 있는 빅토리아주의 지역 생산자들이 참여하는 농민시장은 넓은 녹지에 우리나라와 다를 게 없는 부스들로 이뤄졌지만, 건강한 활기가 넘치는 축제장이다. 참여하는 농민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농민시장이 열릴 때마다 각종 너트류, 말린 과일류 등을 가지고 참여하는 농민 ‘알리시안’은 이 곳에 오는 고객의 65%가 단골이고, 35% 정도가 신규고객이라고 한다. 생산량은 주로 농민시장을 통해 물량을 판매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직거래한다. 나머지 30% 미만을 도매시장으로 출하한다. 농민시장을 통한 판매는 소비자에게 싸게, 자신에게는 소득증대를 가져온다고 한다.

과일가공음료를 들고 나온 ‘사라 로빈스’는 보다 구체적으로 농민시장의 장점을 설명한다. “농민시장은 작은 생산자들이 수입산에 대항해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그에 따르면 음료를 가게에 납품하면 1달 후 결제이지만, 농민시장은 현금거래라 좋다. 소비자와 직접 만나 소통하고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국내 소비자만이 아니라 외국인들과도 만나 기술·정보교류도 한다. 농민시장에 나온 농민들과 서로 돕는 것도 힘이 된다.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근교의 금싸라기 땅을 체험농장과 직거래장터로 제공해 미래세대와 국민들이 농업과 소통하게 하고, 농가 소득 창출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례다. 연수에 참가한 최혜석 의령조청한과 부대표는 “참여 농민의 온 가족이 나와 부스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서 건강한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그들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며 “가족형 체험농장과 결합한데서 오는 시너지 효과, 평일보다 할인된 저렴한 입장료도 시스템적으로 좋다”고 평가했다.

◆도시형 체험농장 ‘세레스’=또 다른 도시형 체험농장인 ‘세레스’ 유기농장은 1981년에 지역사회가 도시환경 보전과 지역사회 환경보호를 위해 설립을 제안, 82년부터 운영해온 농장이다. 당초 공장지대의 쓰레기 매립장이던 4.5ha의 버려진 땅을 개간해 공원으로 꾸미고 친환경연구와 교육의 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육묘장, 유기산물 매장, 직영 로컬푸드 식당, 교육시설을 운영한다. 유기농산물 매장 앞에는 인근 농가와 함께 7일장을 연다. 농장 시설을 확충할 때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친환경적인 시설을 짓는다. 교육장도 옛날 학교 건물을 쓴다. 태양열 발전으로 소요전력의 50%를 충당한다.

이채로운 것은 이 넓은 시유지를 지자체가 임대해줬는데, 그냥 주기가 뭐하니까 1년에 단 돈 1달러만 내는 식으로 빌려준 것. 시민들이 요구하는 일에 이런 식으로 지원하는 지자체의 배려가 흥미롭다.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농장으로 지역 일자리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이 농장은 1일 수용인원이 700명인데, 주중 무려 500개 학교에서 학생들이 방문한다. 어릴 적부터 이런 곳을 찾아 농업과 환경에 눈뜨게 하는 호주의 배려를 엿볼 수 있다.
 

▲ 페닌슐라 유기농장의 ‘웨인’씨가 소비자가 주문한 장바구니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농민시장연합회 회장으로서 직거래를 통해 소농의 활로를 찾는다.

●유기농민이 사는 법 
“가격 경쟁은 넌센스…소비자와 직거래해야 생존”

5대째 이어온 가족경영
농민시장 활용 제값 판매
장바구니 주문판매사업 추진
농장 내 직접 직판장 운영도


멜버른 교외에 있는 ‘페닌슐라’ 유기농장은 호주의 대표적인 유기농 채소재배 농장이다. 농장주 ‘웨인 쉴드(Wayne Shield)’는 현재 빅토리아주 농민시장연합회 회장이기도 하다.

이 농장은 5대째 이어오는 가족경영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소규모 가족농 수준이 아니다. 농장규모는 한 곳이 20ha, 그리고 300km 떨어진 곳에 40ha가 있어 총 60ha이다. 지역주민 등 정규직 15명이 일하는데,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온 인력이 많다. 농장에서 생산한 채소와 유기 가공품을 농민시장에서 판매하고 있으며 멜버른 근교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장바구니 주문판매 사업도 한다. 거래방식은 배달이 아니라 소비자가 주문한 뒤 가져가는 방식이다. 농장 내에 있는 아담한 직판장에도 사람이 붐빈다.

웨인씨가 유기농업을 하게 된 이유는 농약의 위험성에 대한 경험 때문이다. 시드니 지역의 200ha 규모의 농장에서 멜론을 재배하면서 선택성 제초제를 뿌렸는데, 작물까지 죽이는 경험을 하고 유기농으로 돌아선 것이다.

그가 직거래를 하는 것은 소농의 생존전략이다. 더 많은 땅을 사서 농사를 지으면 슈퍼마켓이나 도매상과 계약해서 거래를 하는데, 이 경우 도매가격으론 순이익이 나질 않는다. 그러니 계속 규모화를 해야 하고 투입대비 산출을 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유기농업을 하면서 소비자를 직접 보고 다양한 판매 전략을 구사한다.

그의 농장에는 하루 트럭 한 차 분량의 육묘가 들어온다. 유기농이면서도 대형 트랙터로 밭을 갈고, 고랑에 난 잡초를 화염방사기로 지지는 조방농법을 쓰지만, 60ha는 호주에서 작은 규모다. 일반 채소농은 1000ha도 있다. 호주에서 농장 규모는 무의미하다고 설명한다. 1.5ha 규모의 우리나라 농업과, 유기농조차도 60ha에 이르는 호주농업이 가격으로 경쟁하란 것은 넌센스다.

농민시장연합회 회장으로서 그는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농민시장이 다수 존재하면 소농들이 안심하고 판매할 수 있고 제 값을 받을 수 있다”며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큰 땅에서 농사를 시작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 할 때 농민시장과 직거래는 소농을 살리고, 새로운 인력이 농업에 들어 올 수 있게 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이라고 설명했다.

멜버른의 농민시장은 유통업체나 상인들, 또는 소비자단체가 아니라 웨인 회장처럼 농민이 주도하는 것도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가소득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중요한 특징으로 보인다. 한승용 한살림 생산자연합회 과장은 “호주의 농민시장은 지자체가 지원했다 해도, 농민이 운영을 주도한다”며 “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고 농민을 존중하는 국가적 분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매달 열리는 파머스마켓은 슬로푸드 철학 실천하는 장”
엘리슨 픽(Alison Peake) 슬로푸드 멜버른 회장

요리사와 다양한 제철음식 소개
농민이 이끄는 유통라인 만들 것

 

호주의 슬로푸드 운동과 농민들의 연대는 슬로푸드 운동을 통해 도시민과 지역의 가족농이 어떻게 협력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어 가는지 보여주는 경우다. 슬로푸드 멜버른은 2006년부터 멜버른 파머스마켓과 협약을 맺어 매달 4째 주 토요일에 ‘멜버른 슬로푸드 파머스마켓’을 연다.

‘엘리슨 픽(Alison Peake)’ 슬로푸드 멜버른 회장은 “우리는 지역의 전통 음식을 지키고, 먹는 음식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을 상기시켜 많은 사람들이 생산자와 협력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활동을 소개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어떻게 재배되는지, 어떤 맛인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유하자는 것이다.

엘리슨 회장은 “농민들과 함께 여는 파머스마켓은 몸에 좋고, 맛 좋고(Good) 생태친화적(Clean)이며, 사회적 정의를 지키고 공정한(Fair) 대가를 지불하는 슬로푸드 철학을 실천하는 장”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빅토리아주에 있는 60여명의 지역생산자·가공업자들이 참여, 유기 및 무농약 농산물을 비롯한 제철음식이 거래된다. 수경재배는 제외된다. “슬로푸드 파머스마켓은 좋은 재료 생산과 지속적인 생산방법 보전, 그리고 지역경제에 이바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슬로푸드 멜버른은 또 이 지역의 농민들이 생산한 로컬푸드를 가지고 빅토리아 전역의 농민시장에서 현장 요리체험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그는 “수퍼마켓 유통의 대량소비, 대량유통, 그리고 가격인하가 가족경영체를 도산시켜 도시로 내보내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요리사와 함께 다양한 제철음식을 소개하고, 농민이 끌고 가는 유통라인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한다.

호주의 슬로푸드 운동은 1995년 소개된 이후 현재 6개주에 18개 지부가 활동한다. 이 가운데 1996년 창설된 슬로푸드 멜버른은 지역의 제철 음식을 함께 즐기고 주민들을 참여·교육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 사라져 가는 고유 음식을 발견하는 ‘맛의 방주’ 사업을 포함해 음식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일과 지속 가능한 농업과 식품 생산을 장려한다. 창립 이래 3회의 슬로푸드 페스티벌, 3회의 맛의 향연 축제를 열기도 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호주농업

호주 호당 경지규모 368ha…우리나라 1.56ha의 235배
농민단체는 대정부 로비단체 자임…수출마케팅 등에 관심
소농·가족농 대변하는 우리나라 농민단체와는 성격 달라


호주 농업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포인트는 농민단체다. 흔히 호주와 뉴질랜드의 농업경쟁력을 말하면서 이들 나라의 ‘농민연합’과 우리나라의 농민단체를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서로 다른 성격의 조직을 혼동하는 오류다. 대표적인 사례가 뉴질랜드 농민연합이 농업보조금 폐지를 스스로 건의한 것을 본 받아 우리나라 농민단체도 투쟁만 하지 말고 개혁에 동참하라고 압박하던 지난 정부의 논리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농민연합은 소농·가족농을 대변하는 우리나라의 농민단체(농민운동단체)와는 달리 대규모 생산업자 단체이며, 강력한 로비단체다. 우리식으로 이름을 지은다면 이들은 기업적 규모의 농장주 단체이므로 ‘대농장주연합’이 가까울 듯하다.

농사 규모가 크지만, 국내 소비시장인 인구가 턱없이 적은 호주 뉴질랜드 농업이 생존하려면 과잉 생산된 농산물을 어떻게든 수출해야 한다. 호당 경지규모가 368ha로, 우리나라의 1.56ha에 비해 235배인 호주의 농민연합은 우리나라의 농민단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들의 주요 활동이 자국에서 생산된 쇠고기와 낙농품, 원예작물의 수출마케팅이고 우리 같은 수입국과의 FTA 확대라면, 우리나라 농민단체의 주된 일은 거의 FTA 등 개방반대와 소농보호다.

멜버른에 있는 ‘빅토리아주 농민연합’은 강력한 대정부 로비단체를 자임한다. 낙농, 곡물, 원예, 축산 등 주요 7개 품목의 단체로 구성됐다. 이 단체는 농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모으고, 이를 정부에 전달하는 로비활동을 한다. 이 단체의 마케팅 책임자인 ‘스티브 웹(Steve Webb)’은 “호주에서 2030년까지 두배 성장이 가능한 유일한 부문이 농업이고, 호주 농민들이 전세계 7000만명의 먹거리를 생산한다”고 자랑한다. 그는 “한·호주 FTA 체결로 호주산의 84%가 관세철폐 됐고, FTA 완전 이행후에는 99.8%의 호주 수출품이 한국으로 무관세 수출된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호주농업 성장의 또 다른 키워드는 ‘국민’이다. “호주 사람들은 수입산을 먹지 않아요. 생산 가능한 작물은 거의 국내에서 생산합니다.” 현지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국산 농산물을 믿고 소비하는 국민적 풍토가 부럽다.

이상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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