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중앙대 명예교수,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대표)

지난 달 14일 서울 광장에서 개최된 농민대회는 경찰 수뇌측 입장에서는 흡사 살수대첩을 방불케 했다. 근거리에서 정조준한 물대포로 고희(古稀)의 백남기 옹은 무참히 쓰러졌고,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3주째 사경을 헤매고 있다. 그러나 시위대를 IS 테러에 비유하며 질책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백남기 가족에 대하여는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없이 훌훌히 출국길에 나섰다. 농식품부 주무 고위 관료나 가해기관 부서의 어느 관계자가 병원을 찾아 위문했다는 뉴스도 들리지 않는다. 참으로 비정한 정부다.

그날, 2만5천 농민이 상경한 이유

그날, 왜 전국의 2만5천여명의 농민들이 “바쁜 수확철인 만큼 정부를 믿고 생업에 매진해 달라”는 농식품부 최고위 관료의 간곡한 담화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올라와 애꿎은 물대포 살수의 세례를 받아야 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농민들의 주 소득원인 쌀값은 현재 매년 40만톤이 넘는 외미 수입과 추가적인 밥쌀용 쌀 수입으로 개 사료값 보다도 못한 지경에 처했다. 개 사료값은 1킬로에 5330원인데 반해 농민이 쥐는 산지 쌀값은 2000원도 채 안된다. 지난 10년째 산지 쌀값은 제자리걸음이다. 그뿐만 아니다. 박근혜 정부 들어 3년째 고추농사, 배추농사, 사과농사, 토마토농사, 낙농업, 닭농사 등 짓는 농사마다 줄줄이 곤두박질하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 8년 동안 50여개국과 체결한 잇단 무관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세계 최저의 각종 농축산물이 홍수처럼 넘쳐 들어오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농가소득 역시 덩달아 10년 내내 제자리걸음이다. 모든 물가는 뜀박질치고 있는데 농산물 가격과 농가소득만 전혀 늘어나지 않는다. 농민생산자에겐 불임(不姙) 농정이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농식품부는 입만 열면 ‘농업이 미래성장산업’이며 ‘희망차고 행복한 농촌’을 외친다. 농업이 ‘6차산업’ 이라는데 현장에선 과거 1차산업 때만 못한 무의미한 행정이 되고 있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기간 라디오를 통해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찬조연설을 했던 안동의 고태령(34) 학사농민은 “지금 농심(農心)은 터지기 일보직전”이라고 말한다. “가뭄 탓에 생산비는 더 들어갔지만 수입농산물로 인해 가격은 되레 내려가고, 재고는 쌓이고 … 대통령도, 주무장관도 관심이 없으니 농민들 마음만 다치고 있다(경향신문, 2015.11.21.)”는 것. 그는 “대통령이 후보시절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고 여러차례 하신 말을 믿었는데… 요즘 사람들은 먹거리 선택에 신중한 만큼 원산지 표기라도 정확히 하도록 정부의 관리감독을 엄격히 하고 유전자변형(GMO) 농산물 표기도 의무화해 국민이 안전한 농산물을 드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말이 났으니 박근혜 대통령의 농업 직접 챙기기 약속은 실제 국가 총지출 중 농림축산식품부 예산 및 기금 비중이 5.4%(2013년), 5.3%(2014년), 5.1%(2015년) 그리고 5,0%(2016년)로 해마다 줄어들어 무색케 하고 있다. 그중 농식품부 예산 비중은 4.0%(2013)에서 3.7%(2016)로 쪽박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최근엔 절대 금액면에서도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감소하였다.

말 따로, 정책 따로인 박근혜 농정

이명박근혜 정부의 ‘농민이 빠진 농정, 소득을 낳지 못하는 불임 농정’은 필연적으로 교육 문화 복지 의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쳐 농촌에선 자식들 교육시킬 학교가 줄어들고 TV 외에는 이렇다할 문화예술 활동이 제약을 받으며 복지수준도 도시부문에 비해 턱없이 낮다. 그중에서도 농촌 주민의 유병률은 2014년 현재 31.8%로서 도시 주민의 23.2%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통계청 자료) 농어촌의 유병일수 역시 1999년의 6.7일에서 2014년 10.3일로 3.6일이 늘어난 반면, 도시의 유병일수는 5,8일에서 8,5일로 2.7일 느는데 그쳤다. 이처럼 농어촌의 유병일수가 도시보다 더 길어진 것은 치료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만성질환과 고령화가 급속히 늘어난데 기인한다. 요컨대 우리나라 농어촌 주민들은 더 빠르게 늙어가고 더 오래 병들어 가고 있다.

농업인들에 대한 정부의 직접지원 예산액도 OECD 선진국 중에 비교하기도 부끄럽게 훨씬 못미친다. 식량자급률도 24%대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북한만도 못하다. 말로만 “희망찬 농촌, 행복한 미래농업” 미래성장산업이라고 노래소리 드높다. 말 따로, 농민정책 따로인 박근혜 정부의 잔여 임기는 아직 2년이나 더 남아있다.

대통령이 유럽에서 배워야할 것들

박근혜 대통령은 11월29일부터 프랑스 등 유럽국가에 비교적 긴 일정을 여행하고 있다. 시간을 내어 꼭 EU 국가들 중 우리나라와 농업 및 산지조건과 비슷한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알프스 산악지역 농산촌들을 가봤으면 싶다. 비록 구중궁궐에서 성장해 농업문제엔 문외한이지만 이들 나라들의 한결같은 농업비전과 농정철학을 피부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패전국가로서 10년만에 경제를 복구하고 1954년 의회결의를 통해 농업에 대한 녹색계획(Green Plan)을 세우고 다음의 네 가지 기본목표를 설정해 지금까지 그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첫째, 농민도 일반국민과 동등한 삶의 질을 공유하며 발전에 참여해야 한다. 둘째, 농민들은 일반 국민들에게 건강한 식품을 적정한 가격으로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농업을 통해서 국제식량문제 해결 및 국제 농업교역에 기여하도록 한다. 넷째, 농업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경관 및 문화유산을 보전하고 다양한 생물의 종을 보존케 한다(김성희, 살림의 현장, 2015.7). 등이다.

스위스는 아예 연방헌법(104조)에 농업이 1) 국민에게 안정적인 식량을 공급하고, 2) 자연자원과 환경생태계 및 지역경관을 보존하며, 3) 주민의 지방분산으로 지역간 균형적인 발전에 기여케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농업의 다양한 다원적인 기능 수행과 환경, 자연, 문화 전통보전 기능의 유지를 위해 범국가적 농업지원을 사회적 동의를 바탕으로 전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등의 농촌지역은 자연경관이 문자 그대로 국민 휴양관광지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지역 특유의 문화 전통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한편, 지속가능한 농축산업 발전과 농가소득 보전을 위한 국가적 지원을 국민 대다수의 동의하에 계속하고 있다. 자녀 교육의 지원, 농민 주도의 지역농업발전 계획 추진, 농민의 2,3차 산업 성격의 농축산 가공판매를 적극 지원한다. 오지일수록, 조건불리지역일수록 지원 규모도 증가한다. 그리하여 이들 지역의 농가소득의 40~60%가 정부의 직접지원(Direct Payments)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나라 농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꿈 같고 그림 같은 이야기다. 게다가 지방자치제의 분권화가 잘 되어 있어 WTO건 FTA건 외부정책으로부터의 영향을 자치정부가 든든하게 막아주는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 외부 요인으로 재미 보는 기업의 이득은 정부의 정책조정을 통해 농업 농촌 농민 지원에 무리없이 환류(feed-back)된다.

‘농업은 지켜야 한다’ 국민적 공감

이와 같은 정책적 농업지원 배경에는 국민사이에 공고하게 “농업 농촌 농민이 잘 살아야 우리나라 우리 국민도 잘 살 수 있다”는 공감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지속적으로 이같은 공감을 국민들에게 확산시키고 공고히 하는데 한 눈 팔지 않는다.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국가와 국민의 사명이며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나라도 대통령부터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에 이르기까지 정신적으로 재무장되어야 한다. 농업 농촌 농민이 망하고선 국가도 도시도 기업도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재정분권화를 통해 농업 농촌 농민을 살리는 방향으로 지방자치가 전개되어야 하며, 우리나라의 낮은 법인세와 부유소득층의 세금부담률을 올려 지방자치 예산을 확보하고, 현재 예산낭비를 자행하고 있는 중앙부서, 특히 농림축산식품부와 보건복지부 예산을 대폭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해야 한다.

그리고 농식품부와 행자부의 상당부분 예산을 농가기본소득 보전을 위한 지원금으로 전용해 농가당 최소한 월 50만원의 지급을 시작하면 ‘박근혜 정부 만세’이다. 농민이 잘 살아야 농업 농촌이 살고, 농업 농촌이 잘 살아야 대한민국과 국민들이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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