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식품부가 추진하고 있는 ‘여성친화형농기계 지원사업’이 시작 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사진은 여성농업인 농기계교육 현장.

농식품부, 내년 예산 첫 반영
이용실태·수요조사도 없이
승용관리기 등 3종으로 한정

임대사업소 "임대수요 없을 것"
일방적 50% 의무구입 종용 '불만'
특정업체 입김작용 의혹까지

큰 동력 요하는 농기계 보다
손쉽게 쓸 소형 편이장비 보급을


‘2013년 여성농업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여성농업인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로 ‘과중한 노동부담 경감(31.3%)’이 꼽혔다. 기계화가 미흡한 밭작물 위주의 농사일은 물론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농업인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였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에서 실시하는 ‘농업인의 업무상 질병 및 손상조사’를 보면 여성농업인은 남성농업인에 비해 업무상 질병 유병률이 2.4%가량 높게 나타났다. 주요 질병으로는 ‘근골격계 질환(반복적인 작업 동작으로 인한 극히 미세한 근육이나 조직의 손상이 누적돼 나타나는 기능적 장애로 허리, 목, 어깨, 팔, 손목 등의 부위에 주로 나타나는 질환)’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 상당수 여성농업인들이 이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여성친화형농기계 보급 확대가 시급한 이유다.

다행스럽게도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7월 ‘여성친화형 주요농기계’ 보급 확대로 여성농업인의 일손을 덜어주겠다고 밝혔다. 농기계 임대사업소를 통한 여성친화형 주요농기계 보급을 확대해 파종·이식·수확 단계의 기계화율을 높이겠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내년부터 ‘여성친화형농기계 지원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벌써부터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농식품부가 30억원의 예산을 신규 편성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과 달리, 시·군 임대사업소는 여성친화형농기계 구입자체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농식품부가 여성농업인들의 농기계이용 실태 및 수요조사 없이 보급대상 기종을 △승용관리기 △동력이식기 △소형트랙터 등 3종으로 한정하고, 사업신청을 종용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여성친화형농기계 지원사업’ 주요내용은 120개소의 임대사업소에 승용관리기, 동력이식기, 소형트랙터 등 여성친화형 주요농기계를 지원하는 것이다. 농기계 1대당 5000만원의 가격을 책정해 50%는 국비로 보조하는 매력적인 사업이지만, 일선 시군에선 임대수요가 없다는 이유로 구입자체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2016년 신규로 설치되는 42개 임대사업소에 대해서도 여성친화형 주요농기계를 50% 이상 의무적으로 구입토록 했는데, 이를 두고 일선 현장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여성농업인의 임대비율이 10%가 채 안 되는 상황에서 임대사업소의 농기계 구입예산 5억원 중 2억5000만원을 ‘여성친화형 주요농기계’ 구입에 사용하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것.

한 임대사업소 관계자는 “여성친화형 주요농기계 관련 사업지침은 시달됐지만 사업신청이 저조해 농식품부에서 재신청 지침을 보내고, 도에선 시군에 사정해 겨우 사업신청 물량을 맞춰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원래는 수요조사를 하고 심의회의를 거쳐 객관적으로 임대농기계를 선정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특정농기계를 사라고 하니까 불만이 많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특정농기계 업체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번 지원사업으로 165억원 이상의 새로운 시장이 창출되는데, 정작 농식품부가 선정한 ‘여성친화형 주요농기계’를 생산하는 업체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이른바 여성친화형 주요농기계에서 특정업체 색깔이 보이다보니 업계에서도 불만이 나온다”며 “만약 여성친화형 주요농기계의 임대비율이 낮게 나오면 향후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여성친화형농기계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사업방향이 틀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성농업인들이 노동부담 경감을 위해선 손쉽게 자주 사용하는 소형 편이장비의 보급 확대가 더욱 시급하다는 것이다. 

오미란 지역고용정책연구원 전문위원은 “여성농업인들의 농기계 이용 실태 및 수요조사도 없이 관련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잘 안 된다”며 “현장의 여성농업인들은 농기계보다는 오히려 소형 편이장비를 더 원하고 있기 때문에, 국고보조를 통해 소형 편이장비를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은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 역시 “여성농업인들은 큰 동력을 요하는 농기계보다는 편리한 도구들을 원하고 있고, 이런 도구들을 개발하기 위해선 작은 아이디어들이 필요한데 이와 관련된 지원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라며 “농진청에서 근육 사용량을 줄이고 안전을 지켜주는 다양한 편이장비를 개발한 만큼, 이들 편이장비의 보급이 더욱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자체에 정말 필요하면 사업을 신청하라고 했고, 사업신청을 강제한 사실은 절대 없다”며 “밭작물 기계화를 함께 염두에 두고 여성친화형 주요농기계를 선정했을 뿐 특정업체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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