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깊이보기] 3년째 풍년기근…신음하는 ‘헬농촌’

오늘의 농업은 위기다. 농촌은 피폐하다. 농민의 현실은 고단하다.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정부는 경쟁력 강화를 내세워 수많은 종합대책을 추진했으나, 농촌 현실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수입 개방과 구조조정은 농산물 가격의 폭락과 농가소득의 감소를 불러왔고, 도·농 격차와 농촌사회 공동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농사만 지어서는 최저생계 조차 유지하기 어렵다.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기존의 경쟁력 지상주의가 아니라 농가소득 지지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중심으로 농정을 전환해야 한다는 패러다임 전환론이 힘을 받고 있다.


●악화되는 농가 지표

농산물 판매값 떨어지는데 농업경영비는 지속 상승
실질 농업소득 2005년 1372만→2014년 945만원 ↓
도농 격차 1995년 95.7%→2014년 61.5%로 격감

 

◆농가경제 채산성 악화=농가교역조건이란 통계지표가 있다. 이는 농가가 판매하는 농축산물과 구입하는 가계용품·농업용품·농촌임료금의 가격상승 정도를 비교해 농가의 채산성을 나타내는 지표다.
농협중앙회 경제통상연구팀 분석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농가판매가격지수는 2005년 92.5에서 2014년 111.3으로 20.3% 오른 반면 농가구입가격지수는 81.8에서 108.4로 32.5% 상승했다. 농가가 농산물을 판 가격보다 농업용품 등을 구입한 가격이 더 올랐다는 얘기다.

10년간 농촌임료금은 51.9%, 농업용품 가격은 46.7% 상승했고, 가계용품은 25.5% 올랐다. 하지만 청과물 판매가격은 31.2%, 곡물과 축산물은 각각 14%, 5.9% 상승하는데 그쳤다. 이에 따라 농가교역조건 지수는 2015년 113.1에서 2014년 102.7로 10.4%p 하락했다.

이를 다시 소비자물가지수로 디플레이트(가격변동을 참작해 수정)한 실질가격으로 보면, 농가판매가격은 2005년 107.4에서 2014년 102.1로 4.9% 하락한 반면 농가구입가격지수는 95에서 99.4로 4.7% 상승했다. 이는 농가 판매가격은 물가상승보다 오르지 않았는데, 구입가격은 물가상승보다 더 크게 올랐다는 것으로 결국 농가 채산성이 악화됐다는 의미다.

◆농사만으로는 살 수 없는 현실=농산물 판매가격이 하락하고 농업경영비는 상승하니 자연히 농사를 지어서 얻는 호당 농업소득이 감소한다. 농업소득이란 농가가 당해연도 농업생산활동으로 얻은 소득으로, 농업총수입에서 농업경영비를 차감한 금액이다.

농업소득을 명목가격으로만 봐도 2005년 1182만원에서 2014년 1030만원으로 10년 전보다 12.9% 떨어졌다. 이를 실질가격으로 보면 2005년 1372만원에서 2014년 945만원으로 31.1%나 떨어졌다. 여기에는 시장개방이 시작된 1980년 이후 2013년까지 농업총수입이 연평균 8.4% 증가한 반면 농업경영비는 연평균 11.8%나 증가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농업소득률은 80년 74.9%였지만, 2013년에는 32.7%로,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결국 농가가 농업생산만으로는 생계를 충당할 수 없어서 주 소득원이 농외소득으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다.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 비중은 이 기간 동안 38.7%에서 29.5%로 떨어졌고, 농외소득 비중은 32.4%에서 42.3%로 늘어났다.

◆도농 소득격차 심화=이렇게 농가 경영여건이 악화되는 동안 도시근로자가구와 농가간의 소득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지난 1995년 호당 2180만원이던 농가소득은 2014년 3495만원으로 60.3% 증가했지만, 도시근로자가구 호당 소득은 2277만원에서 5682만원으로 149.5% 증가했다.

1995년 도시가구 소득의 95.7%이던 농가의 소득비는 2014년 61.5%로 격감했다. 이를 실질가격 기준으로 보면 지난 20년간 도시근로자 가구 소득은 37.8% 증가한 반면 농가소득은 11.5% 감소한 것이다.
직업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농민들의 농업소득이 연간 1030만원에 불과하고, 이를 월 평균으로 보면 겨우 86만원이다. 이는 2014년 최저임금 월 109만원이나 최저생계비 월 102만원(2인가구)~월 132만(3인가구)보다 못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무차별 수입개방·경쟁력 지상주의가 부른 참극”

농민들의 일방적 희생만 강요
쌀개방 비롯 FTA·TPP 첩첩산중
농가경제 악화 브레이크 없어


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정권마다 종합대책, 기본계획을 수립해 농촌에 투융자하고 있지만, 농촌 현실은 개선은커녕 계속 악화되고 있다. 농촌인구의 감소와 고령화는 더욱 심화되고 도·농격차는 확대되고 있다. 소수 부농과 대다수 중소농간 양극화, 농촌 빈곤화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농업에 투자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왜 농가경제는 계속 악화될까?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은 “농업교역조건 악화의 주범은 시장개방으로 인한 수입증가, 농업생산성 증가로 인한 국내공급증가에 따른 농산물 가격 하락”이라며 “정부 농업구조 정책의 지원대상인 대농은 생산과 소득이 늘어난 반면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구조농정에서 소외된 영세농과 고령농은 농촌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유춘권 농협중앙회 경제통상연구팀장은 “UR 발효 이후 농업생산성이 향상됐지만, 이것이 농산물 수입증가와 맞물려 농산물 가격하락과 농업소득 감소로 이어졌다”며 “결과적으로 농업생산성 향상은 농민의 소득보다 농산물 가격하락에 의한 소비자후생 증대에 기여했다”고 평가한다.

문제는 시장개방과 함께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농정, 경쟁력 지상주의 농정이다. 수십년 동안 지속된 개방과 경쟁의 농정은 농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면서도, 농가소득 향상, 가격지지, 생산비 절감, 식량자급, 농촌사회 유지, 그 어느 것도 달성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앞으로 농가경제는 나아질 전망이 있는가? 답은 그렇지 못하다. 올해 쌀시장 전면개방을 비롯해 FTA에서 TPP까지 추가 개방이 현실화되면서 농가경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향후 20년 동안 FTA 영향이 누적되면서 수입농축산물 국내시장 잠식, 농산물 가격하락과 투입재 가격 상승 등으로 소득감소가 유발된다. 수입증가는 당해 품목에 대한 직접효과와 더불어 모든 식품에 대한 간접효과를 통해 실질가격 하락과 천정효과를 유발한다. 이에 따라 도·농 소득격차는 2035년 41.2%까지 확대된다는 전망이다.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농업의 다원적 기능 보상·농가 소득보장이 핵심”

식량안보·환경·균형발전 핵심
EU의 직불금 농정 받아들여야
농민 소득·권익보장 장치 마련을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경쟁력 지상주의가 아닌 지속가능한 농업, 다원적 기능에 대한 보상, 농가에 대한 소득 보장으로 농정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특히 그 방법으로는 식량안보, 환경, 지역 균형발전을 핵심으로 하는 EU의 직불금 농정을 본받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윤석원 중앙대 교수는 “이제 농정은 식량안보와 국민 건강을 지키는 농정, 농업·농촌의 다원적 기능과 환경생태 보전을 위한 농정으로 일대 전환을 해야 한다”며 “상위 5% 엘리트를 위한 농정, 기업을 위한 농정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적정한 수준의 농민소득과 농민 권익을 보장하는 제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진도 이사장은 “경쟁력 강화와 농업구조조정을 위한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농가소득지지와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향상시키는 직접적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며 “농업예산에서 직불제 예산의 비중을 현 수준에서 5년 후 30%, 10년 후 50%, 장기적으로 EU와 스위스 수준인 80%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정환 GS&J 인스티튜트 이사장은 “농업소득 감소를 농업성장률을 높여 대응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양극화만을 촉진하는 역기능의 위험이 있는 만큼 피해보전직불제를 개선하고 스위스, EU와 같이 농업을 다원적 기능을 생산하는 공공재 산업으로 전환, 공익형 직불제로 보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같은 흐름에서 농업을 공익적인 국가 기간산업으로 보아 여기에 종사하는 농민들에게 ‘공익농민기본소득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녹색당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또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EU 미국 캐나다 등 구미 선진국들과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은 농업의 비교역적 다양한 공익가치의 국민적 인식을 바탕으로 어떤 방식, 어떤 형식으로건 우선적으로 농업인들의 기본소득과 권익보장에 정부가 앞장서고 있다”고 강조한다.

직불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데 소요되는 예산도 구체적으로 논의된다. 충남발전연구원 강마야 박사는 식량자급과 후계인력 육성을 위한 희망농업제도(1축), 생태경관제도(2축), 행복농촌제도(3축) 등 3개축으로 직불제를 개선할 경우 기존 직불제 예산 1조~1조5000억원 외에 추가로 2조8000억원~3조7000억원이 소요된다고 계산했다. 강 박사는 “각 직불제는 상호준수 의무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제와 다르다”고 말한다. 재원을 확보하는 방안으로는 농특세의 안정적 세원 관리와 무역이득공유제를 통한 농정예산 확대, 기존 농정예산 재편, 타부처 예산 통합운영 등을 제시했다.

김성훈 전 장관은 법정 최저임금소득의 50%를 농가에 보충 지원한다고 가정, 농가 호당 약 월 50만원, 연간 600만원을 농민들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할 것을 제안한다. 이를 전국 농어가 120만호에 일괄 지급한다고 가정할 경우 연간 총 7조2000억원이 소요된다. 그 재원은 △기존의 각종 직불금 예산액(단, 친환경 직불금은 제외) △농관련 공공기관과 농축수협과 산림조합 등의 중앙 지방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개혁으로 절감한 비용 △현 농림수산 예산액 중 비농어민 조직과 대기업에 지원되는 각종 비농업적 지원비 전용 △기존의 농림축수산식품 예산과 기금 및 농특세(UR 사후 대책) 예산액 중 일부 불요불급 항목예산의 전용 △FTA 무역이득공유제(신설)의 수익금 등을 상정해 정밀조정하자는 것이다.
 

 


●한국의 쥐꼬리 직불금
중복수혜 불가·소규모 농지 배제
가급적 지원하지 않기 위한 구조
농가당 직불금 100만원 선 불과


공동농업정책(CAP)을 실시하고 있는 EU는 2013 CAP 개혁으로 2014년부터 기본직불제를 비롯해 녹색화 직불, 젊은 농가 지원 직불, 재분배 직불, 자연적 제약에 대한 직불을 연계 운영하며, 소규모 농가 직불이 따로 있다. EU의 CAP는 직불제 중심의 1기둥 정책과 농촌개발 중심의 2기둥 정책으로 나뉘는데, 1기둥 예산이 76%이다.

그렇다고 직불금을 그냥 주는 것은 아니다. 환경적 측면에서 저투입농법을 시행해야 하는 상호준수의무(Cross Compliance)규정이 모든 직불금의 기본조건이다. 김태연 단국대 교수는 “EU가 직불제 정책을 통해서 농가소득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해 EU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인 농업경쟁력 강화와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EU 국가는 아니지만,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스위스의 경우 1996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헌법에 농업의 다원적 기능과 농업 지원을 위해 필요한 책임과 권한을 규정한 국가다. 농정 예산 중 직불제 비중이 2013년 기준 75.9%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직불금 수준은 어느 정도 일까? 현재 우리나라의 직불금은 경영이양, 친환경농업, 쌀소득보전, 조건불리지역, 경관보전, 밭농업 직불 등이다. 가짓수를 보면 마치 농민들이 보조금을 많이 받는 것처럼 오해되지만, 농가에게 지불된 실제 금액은 미미하다.

충남발전연구원 이관률 박사는 “우리나라 직불금은 상호배타적으로 중복수혜가 불가능하고 소규모 농경지를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어 농가당 직불금은 100만원 내외”라며 “현재의 직불금 제도는 가급적 지원하지 않기 위한 구조”라고 말한다.
실제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농업소득 대비 직불예산 비중은 겨우 11.2%에 불과한 반면 일본은 41%, 미국 49%로 거의 절반에 달하고, 심지어 EU는 농업소득 보다 많은 111.4%를 지급한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중시하고, 농민들에게 적정한 소득을 보장함으로써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EU 농정을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 하는 이유다.

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안병일 고려대 교수
“EU 농정의 핵심은 농민 소득지지 농정 바라보는 근본 시각 전환을”

 

“EU의 직불제 개혁은 농업이 제공하는 환경적 공익기능이 가장 강조되고 있지만, 이 보다 더 근본적인 배경은 농민에 대한 소득지지입니다.” 안병일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EU 공동농업정책(CAP) 개혁 방식이 우리 농업정책의 방향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 농정의 프런티어 역할을 해오고 있는 EU 농정은 그간 가격지지에서 직접지불로, 생산과 연계되지 않는 직불로, 목표 특정적인 직불로 진화해 왔다. 2013년 CAP개혁이 추구하는 목표는 △식량의 안정적 생산 △ 자연자원에 대한 지속가능한 관리 △ 지역간 균형발전이며, 이런 목표는 EU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제 우리도 농정을 바라보는 근본 시각을 바꿔 직불제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게 안 교수의 견해다.

따라서 우리도 앞으로는 협소한 농업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농업은 환경적인 공공재를 생산하며, 그러한 공공재 생산에 대한 대가로서, 또는 공공재를 더 잘 생산할 수 있도록 정책이 개입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위해 직접지불제를 시행하고, 이를 위해 대응준수 의무가 강화돼야 한다는 논리다. 농업이 농산물 생산 외에 여러 공공재를 생산한다는 것을 납세자에게 각인시키는 기능을 하는 게 대응준수 의무다. 그렇다고 농가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기본직불금을 받는 농가는 녹색화 의무를 실천해야 하는데,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다각화 영농, 영구적인 초지의 유지, 생태초점지역 유지 등을 실천하면 됩니다.”

EU의 이른바 1기둥 정책은 식량의 안정적 생산, 농업의 환경성, 후계농 확보, 소농보호, 지역간 균형발전 등 많은 나라의 농정이 표방하는 목표를 아우르고 있지만, 그 집행방식은 모두 직불제 형태로 일원화돼 있다.

안 교수는 “EU가 40년간의 CAP 경험에서 얻은 것은, 정책 내용과 방식이 다양하고 복잡할수록 부정적 효과가 크며, 정책의 비효율성을 줄이고 의도를 달성하는데는 직불제가 최선의 방식이라는 점”이라며 “우리도 정책을 직불제 방식으로 단순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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