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매년 10월16일은 UN(국제연합)이 정한 ‘세계 식량의 날’이자 시민사회가 정한 ‘반지의  날’이다. 여기서 반지는 ‘반(反)GMO’를 뜻하는 것으로, 이 날은 유전자 조작·유전자 변형·유전자재조합 농산물로 불리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에 반대하는 행동의 날이다. 

이는 2010년 나고야 생물다양성 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세계 식량의 날인 10월 16일을 ‘몬산토(MONSANTO) 반대의 날’로 정한데서 유래됐다. 몬산토는 세계적으로 가장 큰 종자회사이며 GMO 개발회사다. 우리나라에서는 국내 시민사회단체가 망라된 ‘유전자조작식품반대생명운동연대’가 2011년 10월16일을 반지의 날로 정하고 매년 GMO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해왔다. 

올해 10월16일에도 이들은 ‘몬산토코리아’ 앞 기자회견과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강연회를 열어 GMO 완전 표시제를 촉구하고 정부의 GM(유전자변형) 벼 상용화 중단을 요구했다. 

GMO 완전 표시제를 촉구하는 이유는, 정부가 시행중인 GMO 표시제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GMO 농산물 세계 2위의 수입국인데도, 국내 식품기업들이 만들어 시중에 유통시키는 가공식품에는 GMO 표시가 한 군데도 없다. 

실제 마트에서 직접 확인한 일본산 미소된장에는 원산지, 원료명 등과 함께 ‘원재료 중 된장에 유전자재조합대두 포함 가능성 있음’이라고 분명하게 GMO 표시가 되어 있었다. 반대로 국내 대기업들의 장류나 식용유, 과자 등에는 어디에도 GMO라고 적힌 제품은 없었다. 수입된 GMO가 들어갔는지 여부 자체를 확인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상한 일 아닌가? 수입곡물 중에서 GMO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기준 58.8%다. 수입 곡물 가운데 대두의 경우 GMO가 77%, 옥수수는 52%이고, 심지어 카놀라는 100%다. GMO가 식용유, 과당, 두부, 과자 등의 원재료로 쓰이는데도 표시가 없다는 것은, 상식으론 설명되지 않는다. 

식품위생법에 GMO 표시가 의무화 돼 있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법에서 위임을 받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기준을 그렇게 만들어서다. 현행 표시제는 GMO 원료를 사용해도 원재료 중 많이 사용한 5순위 안에 포함되지 않거나, 최종 제품에 GMO DNA나 단백질이 남아 있지 않으면 표시를 안 해도 된다. 콩이나 옥수수, 카놀라 같은 원료가 기름으로 바뀌면 세포나 단백질이 남지 않으니 기름에 GMO 표시를 안 해도 되고, 간장 원료 중에 GMO 콩이 들어가도 그 중 6번째 이하로만 넣으면 표시할 이유가 없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대다수 국민들은 제품을 사면서 식품표시기준을 열심히 들여다 보았자,  GMO 수입 원료 사용 제품을 절대 구분할 수 없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고 하는가? 전문성·과학성으로 포장한 복잡한 기준과 용어 속에 말이다. 모법에 GMO 표시가 의무화돼 있어도, 정부 고시에서는 다 빠져 나간다. 

식약처는 GMO 정보를 꼭꼭 감추고, 농촌진흥청은 GM 벼를 상용화하겠다고 나섰다. GMO 문제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정부의 이런 행태는 큰 비난을 부르고 있다. 대통령이 ‘4대 악’의 하나로 불량식품 근절을 내세운 나라에서 GMO 문제는 성역인지 묻고 싶다.   

국민의 먹거리는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그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식약처는 현행 제도를 고쳐 GMO 완전표시제를 시행해야 한다. GMO를 먹거리 원료로 사용했다면, 그 함량이나 성분 잔류 등을 가리지 말고 모두 공개해야 한다. GMO가 들어있는지도 모르는 식품을 국민이 먹을 수는 없다. 업체의 영업비밀은 국민 건강과 소비자 선택권 보다 우선하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GMO 벼의 상용화는 중단돼야 옳다. GMO의 안전성에 대해 말썽이 끊이지 않는 마당에 정부가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GMO 개발에 앞장서는 것은 아무리 그럴 듯한 핑계를 댄다 해도 명분 없는 일이다. 정부는 엉뚱한데 역량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식량안보를 튼튼히 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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