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행장마을 주민들이 노인회관에서 마을공동급식 사업으로 마련된 점심을 먹고 있다.

전남도·나주시·농협 예산 지원
농번기 중 20일 동안만 시행
여성농업인 물론 마을 전체 ‘만족’

지역마다 사업 확대 여론 높지만
농식품부 전담부서 없어 유야무야
복지부와 협력, 체계적 추진 시급


지난 10월 1일, 전남 나주시 왕곡면 행전리에 위치한 행장마을 노인회관이 모처럼 만에 왁자지껄하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올해 처음으로 시행되는 ‘농번기 마을공동급식’을 함께 하기 위해 주민들이 삼삼오오 노인회관을 찾은 것. 동네 어르신들을 중심으로 마을주민 20여명이 둘러앉아 돼지수육과 김치, 고추절임 등 맛깔난 반찬을 곁들인 점심을 함께 했다.

음식을 준비한 이정자(76세) 씨는 “공동급식 첫날이라 반찬이 많지 않았는데 다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기분 좋다”며 “무엇보다 마을에 끼니를 거르는 어르신들이 많은데 같이 밥을 먹으면서 안부를 살필 수 있고 공동체 의식도 살아나는 것 같아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농번기 중 20일 동안 이 마을에 지원되는 예산은 음식재료비 80만원과 급식담당자 인건비 40만원을 포함해 총 120만원. 전남도와 나주시, 지역농협이 함께 지원한다. 음식재료는 면사무소에서 받은 카드를 이용하고,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하루 이용한도는 10만원으로 제한돼 있다.

 

마을공동급식을 위해 아침부터 부지런히 장을 봐온 김광철(57) 마을이장은 “어르신들 대부분이 혼자 계시다 보니 점심을 거르는 경우가 많아 마을공동급식을 신청했다”며 “어르신들 얼굴을 보고 안부를 물을 수 있어 점심 한 끼만이라도 연중 실시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농사일과 함께 가사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농업인들의 만족도 또한 매우 높다. 최경숙(50) 씨는 “농번기에 남편들은 점심시간에는 쉴 수 있지만, 여자들은 밥을 해줘야 하니까 쉬질 못한다”며 “일은 같이해도 가사노동까지 하다 보니 아무래도 더 힘들 수밖에 없는데, 마을에서 다함께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농번기 여성농업인들의 가사노동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지난 2007년 전남 나주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농번기 마을공동급식사업은 현재 전북 완주군 등 일부 지자체로 확대·시행되고 있다. 지자체별로 지원내용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마을이장이 급식지원을 신청하면 농번기 중 20~45일의 급식기간을 마을별 여건에 맞게 지정해 운영한다. 나주시의 경우 매년 사업량을 늘리고 있는데, 올해는 상반기 155개소와 하반기 155개소 등 총 310개소가 목표다. 하지만 예산상의 어려움으로 급식기간을 늘리지는 못하고 있다.

나주시 하계수 농업정책과장은 “전남도와 나주시가 3:7로 매칭해 마을공동급식을 지원하는데, 도비는 4500만원으로 고정돼 있어 70개소 정도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시비로 충당해왔다”며 “다행히 올해부터 지역농협이 함께 참여해 시비를 조금 절감할 수 있게 됐지만, 현재 급식담당자 인건비가 40만원 정도에 불과하고 급식기간도 짧은 문제는 예산상의 어려움 때문에 개선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에 따라 나주시는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에 마을공동급식 사업을 공식적으로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계수 과장은 “농식품부에 마을공동급식 사업을 건의했지만 전담부서가 없다보니 제대로 검토되지 못하고 유야무야 됐다”며 “정부의 예산감축 기조 속에서 신규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상당히 꺼려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여성농업인의 가사부담 경감을 위해 추진된 이 사업이 확대되기 위해선 농식품부의 의지가 중요하고, 아울러 농촌마을 고령자들의 복지차원에서라도 복지부와 협력해 상시 급식체계가 갖춰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 지역개발과 관계자는 “우리 부에서 추진하는 공동급식시설 지원은 ‘농촌 고령자 공동시설지원 시범사업’의 일환으로 급식시설 자체를 지원하는 것으로 음식재료비 지원 등은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건물을 지어주는 사업 위주로 진행되다보니 복지부와 협업하는 부분에선 한계가 있었고, 조만간 관련업무가 ‘농촌복지여성과’로 이관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복지부와의 협업이 이뤄지지 못한 채 농촌 고령자를 위한 복지사업이 추진돼 온 셈이다. 따라서 경로당 양곡비 지원 등 복지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고령자 지원사업과 연계해 마을공동급식 사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오미란 지역고용정책연구원 전문위원은 “마을공동급식은 여성농업인들의 가사노동 경감과 일·가정 양립을 위해 매우 중요한 사업으로 여성농업인 육성을 위해 반드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뒤 “농촌 고령자들을 위한 복지차원에서 농식품부와 복지부가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 전문위원은 “마을별로 급식 담당자가 없어 사업을 포기하거나 재정부담으로 사업확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공공근로 등 사회적일자리와 연계하면 얼마든지 저비용으로 마을공동급식사업을 확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기노·김종은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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