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농협중앙회의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대의원 간선제로 돼 있는 중앙회장 선출방식을 조합원의 총의가 반영된 조합장 직선제로 바꾸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농협의 직선제는 87년 민주화투쟁에 의한 농협민주화의 산물로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제도인데, 이명박 정부가 2009년 농협법을 개정하면서 간선제로 변경한 것이다. 

농협중앙회장을 둘러싼 비리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88년 중앙회장이 관선에서 민선으로 바뀐 이후 3명의 회장이 모두 비자금 조성과 유용, 뇌물수수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최원병 회장의 경우 아직 수사 단계여서 그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역대 회장 마다 불거져 나오는 비리 의혹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농민조합원이 만든 일선 조합의 조직이어야 할 농협중앙회가 일선 농민과 조합 위에 군림하고, 그 위에 중앙회장이 제왕적 권한을 누리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현재 농협중앙회는 1100여개 회원조합에 대한 지도 감독기능 외에도 중앙회 및 신용지주와 경제지주를 통해 계열사 28개를 거느리는 거대조직이다. 이런 거대조직을 이끌고 있는 막강한 자리인데도, 실효성 있는 견제 장치가 없기 때문에 비리에 연루되기 쉬운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선거제도다. 1962년 군사정권이 ‘농협 임원 임면에 관한 임시조치법’으로 대통령이 중앙회장을 임명하고, 조합장은 중앙회장이 임명토록 한 제도를 88년 농협법 개정으로 조합장은 조합원이, 중앙회장은 조합장이 뽑도록 했던 것이다. 그러다 2009년 법을 개정하면서 중앙회장을 조합장 중에서 뽑힌 대의원들이 선출하는 간선제로 바꿨다. 농민조합원이 240여만명이고, 조합장이 1100여명인데도, 중앙회장 선거는 조합장 중에서 고작 291명만이 참여하는 것이다. 당시 법 개정 이유는 선거과열 방지와 전문경영을 위해 직선제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거대한 중앙회와 관련 조직이 조합과 조합원 위에 군림하는 구조가 바로 비리 발생의 원인인데도, 마치 조합장 직선제가 비리의 온상인 양 이를 폐지하면서 협동조합의 기본인 조합원과 회원조합의 통제를 더욱 무력화한 것이다. 

중앙회장이 되려면 대의원 291명만 포섭하면 가능하고, 당선되면 만사형통이다. 대표권, 대외업무집행권, 총회·대의원회·이사회 의장, 직원임면권 등 막강한 권한으로 제왕이 되는 것이다. 관제 농협으로 시작해 시중은행 사업을 하면서 사업과 운영에서 정부 통제를 받아온 농협중앙회이기에 정부·정치권과 관계만 잘하면 된다. 지난 3명의 회장이 정권과의 관계를 강조했거나 국회의원을 지냈다는 점은 권력과 농협 회장과의 연관에 대한 방증이다. 2007년말 중앙회장에 당선돼 2011년 대의원 간선제로 연임중인 최원병 회장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동지상고 4년 후배로 유명하다. 지난 정권의 친분은 다음 정권의 고난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차기 농협중앙회장 선거는 내년 1월12일이다. 농민단체와 시민사회에서는 정기국회에서 법을 바꿔 이번 선거부터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조합원의 총의가 반영된 조합장 직선제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회에는 이를 반영한 농협법 개정안이 신정훈 의원(새정치, 전남 나주·화순)의 대표 발의로 제출돼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인 만큼 국회는 이 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하고, 정부와 농협은 이에 협조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중앙회장이 비상임인데 조합장 직선제는 과도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기계적인 논리다. 이명박 정부의 농협법 개정에 따라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이 지주회사로 나뉜 이후 중앙회와 지주회사, 자회사 운영에 농민조합원과 조합의 입장을 반영하기 더 어려워졌다. 중앙회장은 법적으로만 비상임일뿐 실제로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일선 조합에서는 비상임 조합장 역시 조합원 직선제로 선출하는데도, 중앙회장이 비상임이라서 간선을 해야 한다는 논리는 궁색하다.

물론 중앙회장 선거방식을 바꾸는 것만으로 농협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중앙회가 조합을 위하고, 농민 조합원을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조합원 중심으로 농협을 바꾸는 첫걸음이다. 궁극적으로는 중앙회가 일선조합 위에, 일선조합이 농민조합원 위에 군림하는 구조를 고쳐, 농민의 협동조합으로서 농협을 바로 세워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