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선 건국대 교수 저 <농업과 먹거리의 정치경제학> 출간

 

그야말로 ‘먹방·쿡방’의 전성시대다. TV 채널만 돌리면 음식을 소재로 한 온갖 예능프로그램들이 넘쳐 난다. 수천 km 떨어진 남미와 북미,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농식품들이 지구 반바퀴를 돌아 식탁 위에 오르고,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도심 주변엔 색다른 외국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즐비하다. 현재 우리는, ‘영양과잉’을 걱정할 정도로 먹거리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지구 한편에선 여전히 10억명이 넘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고통 받고 있는걸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농업 생산력은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는데, 왜 정작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은 부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걸까. 농산물값은 왜 늘 불안하고, 농공간-또 농업 내부간 불균등 발전은 왜 갈수록 심화되며, 생태계 교란과 식량위기에 대한 경고는 왜 끊임없이 나오는 걸까.

이런 의문을 갖고 있다면, 최근 출간된 <농업과 먹거리의 정치경제학>이 좋은 길잡이가 돼 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인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3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농업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고, 그 특징이 무엇이며, 현대 농식품 체계와 농업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차근차근 풀어놓는다.

미국 잉여농산물 처리장된 제3세계

19세기 말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식민지와 신대륙의 여러 나라들(미국, 캐나다, 호주 등)로부터 공급된 값싼 식량 덕분에 값싼 노동력을 유지하면서 자본의 외연적 축적을 확대해갔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세계 농식품 체계는 자국의 잉여농산물을 처리하기 위해 해외 원조에 나선 미국을 중심으로 재편되는데, 이 때부터 식량 원조 업무를 담당했던 거대 곡물메이저들의 힘이 커지기 시작한다.

1970년대 베트남전으로 국제수지 적자가 커진 미국은 이의 타개를 위해 ‘그린파워 전략’(식량을 외교적, 정치적, 경제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선택했고,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카길을 비롯 콘티넨탈 그레인, 벙기 등 거대 초국적 농기업에 더 큰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오늘날 먹거리의 위기가 심화된 배경에는 먹거리를 자신들의 먹잇감으로 만들려는 이들 초국적 농기업의 집요한 공격이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잉여농산물의 처리장이 돼버린 제3세계 국가의 농업은 자립적인 발전의 기회를 봉쇄당했고, 이후 이들 국가는 미국식 식습관의 도입과 함께 만성적인 농산물 수입국으로 전락한다.

다수의 토착 곡물이 화학비료와 농약에 의존하는 소수의 고수확 작물로 대체되면서, 초국적 농기업이 생산한 종자·농약·비료 등에 의존하지 않고선 더 이상 농업을 영위할 수 없는 구조가 돼 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역의 중소·가족농들은 몰락했고, 농촌공동체는 해체됐으며, 토지 이용은 무질서해졌고, 환경 파괴와 함께 먹거리 안전도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압축성장 시기, 농업은 압축적 파괴

해방 이후 미국의 원조물자를 매개로 세계 농식품 체계와 관계를 맺은 한국의 농업도 이 과정을 고스란히 겪는다. 1970년대 중반 이후 농산물 수입 개방이 확대되면서 세계농식품 체계에 깊숙이 편입된 한국 농업은 1986년 우루과이라운드의 개시, 1995년 WTO 출범, 동시다발적인 FTA 추진 등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총인구 대비 농가인구 비중은 1970년 44.7%에서 2010년 6.4%로 줄었고, 90년대 초 도시 근로자 가구와 비슷했던 농가 소득수준은 최근 60% 초반대로 추락했다. 최저 생계비 이하의 농가가 전체 농가의 1/4에 달한다. 이와 함께 곡물 자급률은 1980년 56%에서 최근 23%대로 폭락했다. 저자는 “이른바 압축 성장으로 묘사되는 이 시기에 한국의 농업·농촌은 압축적으로 파괴되었다”고 말한다.

유기농업·로컬푸드로 식량주권 회복을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일까. 그는 먼저 현 세계 농식품 체계를 개혁할 대안 패러다임으로 “식량 주권” 개념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식량 주권이란 각국이 문화적·생산적 다양성을 존중받으며 자신들의 농업과 먹거리 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국가적 권리를 말한다. 농산물의 무역자유화와 국제 곡물시장에 의존해 식량을 확보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식량안보론’과는 다른 개념이다.

저자는 이러한 식량 주권의 회복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대안 농식품 운동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기존의 거대 농기업과 거대 유통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생명 논리에 따라 농업 생산과정을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책에서 제시한 대안 농식품 운동은 두가지. 하나는 대규모 단작을 중심으로 화학비료와 농약 등에 의존해 생태적 문제를 야기하는 산업적 농업에 맞서, 인간과 자연, 생태계가 균형을 이루면서 자원의 순환 고리를 유지하는 것을 지향하는 유기농업 운동이다.

또 하나는 글로벌 푸드로 인해 망가진 ‘농'과 ‘식’의 관계를 복원해 내고, 먹거리의 지역 내 자급과 자원의 지역내 순환을 촉진하고자 하는 로컬푸드 운동이 그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다양한 주체와 조직들에 의해 전개돼 온 두 갈래 대안운동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향후 과제 등을 꼼꼼히 짚어 놓았다. 진보적 농업경제학자로서 지난 30여년간 대안 농식품 운동에 천착해 온 저자의 고민에 동승해보길 권한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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