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공간, 좋은 멘토…청년세대에 비빌언덕을 제공하라”

 

농촌 지역으로 이주했거나, 이주를 희망하는 20~30대 청년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0년 761명에 불과했던 30대 이하 귀농귀촌가구는 지난해 7743명(귀촌 6546명, 귀농 1197명)로 증가했다. 아직 큰 규모는 아니지만 5년새 10배가 증가한 수치다.

이들은 왜 농촌으로 오는걸까. 이들이 농촌에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은 무엇일까. 이들의 안정적 정착을 도우려면 지역사회, 시민사회, 행정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지난 2일 삼선복지재단 주최로 서울시 청년허브 다목적홀에서 열린 제2회 농촌지역청년포럼은 이같은 질문에서 시작됐다. 삼선재단을 비롯 시민사회연구소 6개 기관이 2014년 8월부터 지난 5월까지 10개월간 공동연구작업을 진행, 이날 내놓은 ‘농촌으로 이주하는 청년층의 현실과 과제’ 보고서의 주요 내용과 ‘청년 : 농촌에, 바람’을 주제로 오고간 청년 귀농·귀촌인들과 멘토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농촌으로 이주하는 청년층의 현실과 과제’/녹색사회연구소 박정운 사무국장
“청년 지역 진입 돕는 다양하고 유연한 플랫폼 마련을”

이주초기 주거·일자리·자금 부족 '고민'
청년 기본소득보장제 도입 등

안정적·연속성 있는 지원 방안 필요

 

 

고령화와 공동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농촌지역에 청년 세대의 진입은 그 자체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도시에서 자란 청년들이 농촌으로 들어와 안정적으로 정착하기까지는 수많은 장벽을 넘고 또 넘어야 한다.

▲귀농귀촌 장애요인=이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귀농·귀촌한 청년들의 정착에 가장 큰 장애요인은 주거(33.8%)였다. 발표를 맡은 녹색사회연구소 박정운 사무국장은 “경제력이 없는 청년들의 경우 대부분 이주 초기, 지역게스트 하우스나 귀농인의 집(6개월 또는 1년), 지인의 집 등을 옮겨다니며 단기 거주를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공간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전했다.

그 다음 장애요인은 일자리(32.5%). 초기 정착과정에서 농사로 소득을 얻기 어려운 청년들이 기본 생계비를 충당하려면 일자리가 필요하지만, 이미 상권이 쇠락해버린 지역사회에서 선택가능한 일자리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농사기반과 자금의 부족(19.5%)도 청년들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대출을 받으려면 농지를 구입한다거나 시설이 있어야 하고, 자부담이나 담보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초기 자본이 없는 청년들에게 정부 지원정책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자체의 귀농·귀촌 관련 지원조례에서도 청년층은 소외돼 있었다. 귀농인 자격요건에서 △가족동반 2인 이상이 전입해 6개월 이상 거주해야 한다거나(강릉시 외) △만 30세 이상으로 연령제한이 있다거나(양평군) △1000~3000㎡ 이상의 영농규모 제한(보령시 외) 등을 두는 경우가 그것이다. 1인 귀농·귀촌이 많고, 적정 규모 이상의 농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청년층의 경우 귀농인으로 인정받는 것도 어려운 셈이다.

▲시민사회·행정·지역사회에 대한 제언=이에 보고서는 우선 시민사회에 청년들의 지역 진입을 돕는 다양하고 유연한 플랫폼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농촌으로 진입하기 전 청년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 귀농·귀촌에 대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보자는 것이다.

△지역에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갈 수 있는 교육적 성격의 플랫폼(홍성 ‘젊은협업농장’) △농업에 관심 있는 젊은이들이 교육을 받고 농업 생산부터 가공·유통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플랫폼(완주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다양한 장비를 구비하고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창작공간을 갖춘 플랫폼(홍성 누구나어디에서나 온) △농적 가치와 활동을 공유하는 도-농 청년간 네트워킹을 만들어주는 플랫폼(농사펀드) 등이 그 예다.

중앙 및 지방정부에는 귀농인 유치를 위해 단기적으로 시행하는 행사성 프로그램이나 무분별한 지원정책 대신 이주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연속성 있는 지원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주문했다. 공동으로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이나 청년 귀농·귀촌자에 적합한 자금의 대부, 지역실정에 맞는 후계농 육성 프로그램 마련 등이 그것이다. 또한 농지와 자산기반이 가장 취약한 청년 귀농인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청년 기본소득보장제’ 도입도 검토해볼만 하다.

지역사회의 역할도 중요하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경험을 갖지 못한 청년세대들이 자연스럽게 농사를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서 ‘공동체 농장’ 모델을 만든다거나, 청년들이 창농·창직을 통해 새로운 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역내 청년그룹을 형성하고 공동체 기반을 구축하는 것 등은 지역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박정운 사무국장은 “청년들이 농촌 지역의 정서를 이해하고, 지역 역시 청년들의 문화적 취향과 욕구를 이해하려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청년그룹과 지역 사이에 완충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사람, 즉 다양한 형태의 비빌언덕이 만들어진다면 청년들 스스로 지역에서 새로운 활력과 즐거움을 만들고 마을을 순환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년 귀농·귀촌인들과 멘토들의 이야기

“농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농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2부 순서로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는 귀농·귀촌 선배들의 경험과 오랜 고민에서 묻어난 다양한 조언들이 쏟아졌다.

임경수 논산시청 사회경제정책관은 “현재 농업구조는 규모가 커져 지출은 늘었지만 수익은 나지 않는 구조”라며 “만약 농사를 짓고 싶다면 팍팍한 시장형 농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행히 최근 로컬푸드를 비롯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염두해 둔 공공형 농업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작은생협이나 직매장, 꾸러미 등 도농교류를 통한 새로운 농업판로가 열리고 있다는 게 임 정책관의 설명. 그는 학교급식 우유 생산이나 동네 두부공장 운영, 소규모 문화공연단체 설립 등 인구가 줄면서 지역에서 사라진 일들을 사회적 경제영역이나, 부업으로 추진해 볼 것을 권했다.

문화예술교육단체인 ‘괴산 문화학교 숲’에서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임완준 씨는 “지역에서 청년들이 만나는 장벽들은 대부분 농촌을 몰라서, 혹은 농사를 몰라서, 아니면 자신을 잘 몰라서 생기는 것”이라며 “처음부터 모든 걸 걸고, 홀로 귀농·귀촌하는 것은 너무 무모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비빌언덕과 플랫폼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고, “가능하다면 지역별로 베이스캠프를 꾸려 청년들이 실습이나 인턴활동을 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꼭 농촌에 가지 않더라도, 농촌과 도시의 중간, 그 어디쯤에서 농적 가치를 지키며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농촌기획자라는 직함을 달고 ‘농사펀드’를 운영하고 있는 박종범 씨는 이에 대한 답을 내놨다. 농사펀드란 농민이 농사를 짓기 전에 농사에 대한 계획을 올리면, 그걸 보고 시민들이 소액투자를 통해 영농자금을 대주는 것으로 ‘크라우드 펀드’의 일종이다.

그는 “대출 받지 않고 판로 걱정 없이 자기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농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하는 고민에서 이 일을 시작했다”고 운을 뗐다. 현재 74명의 농민들이 참여 중이다. 그는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 양쪽의 언어를 서로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통역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며 “청년들이라면 그 영역에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성 젊은협업농장의 정민철 씨는 농촌을 “도시에 비해 촘촘하게 시스템화 돼있지 않아 무언가 새롭게 도모해 볼 수 있는 여백이 많은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기존의 농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접근을 통해 농업의 가치를 재발견한다면, 기존에 없었던 제3의 직업을 창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기 재능과 농업을 어떻게 접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시골에서의 자립은 ‘관계’가 기반이 돼야 가능하다는 조언도 이어졌다. 올해로 시골생활 15년차인 지리산 이음의 조양호 씨는 “시골에서 온전하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며 “충분히 돕고, 내가 부족한 걸 받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일부 대농을 제외하고는 농사만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며 “청년들이 농촌에서 새로운 일과 직업을 구상하고 만들어 내는데 도움이 되는 플랫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싱글 청년 5~7명이 1년간 거주할 수 있는 쉐어하우스(share house)를 건축 중이라는 순창군귀농귀촌지원센터의 이수형 씨는 “아무리 계획을 세웠다 해도 예상치 못한 삶의 어려움들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어딜 가든 긴 호흡으로 최소 1년은 버티면서 의미와 재미를 찾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부딪혀보라”고 조언했다.

30대 중반을 전후로 한 6명의 청년들과 해남 미세마을에 정착, 청년 진입 플랫폼으로서 <나의 시골살이 디자인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정혜성 씨는 “자신의 삶을 사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기에 다른 이들의 삶까지 책임감 있게 이끌어 주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해남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제적 정보와 기술을 제공하고, 그 속에서 개인의 성향과 지향에 맞는 시골살이 설계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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