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종사 이민여성 실태 파악 급선무

▲지난달 8일 공점숙 함안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장(오른쪽)과 지역 이주여성들이 사랑방 모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1년 ‘여성농업인육성법’이 제정된 이후 중앙 및 지자체별로 5년 단위의 ‘여성농업인육성 기본계획’이 수립되고 있다. 올해는 제4차 기본계획(2016~2020년)이 수립되는 시기로, 횟수로만 따지면 여성농업인 육성정책은 15년간 지속된 셈이다. 하지만 정작 현장 여성농업인들은 ‘낮은 정책체감도’에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그동안 여성농업인은 농업주종사자 인구 중 53.5%를 차지할 정도로 역할과 중요성이 커졌지만, 이에 걸맞은 정책적 뒷받침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에 본보는 여성농업인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제3차 여성농업인육성 기본계획(2011~2015년)’을 점검하고, 제4차 기본계획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다.

"농사 도왔지만 힘들고 돈 안돼
더 나은 근로조건 일자리 찾아"

매년 1500여명 농업교육 이수
실제 농사 짓는지 파악도 안돼

높은 임금받는 영농기술 교육
농촌 정착 돕는 교육 개발 필요


“주변에 농사짓는 친구들은 많지 않아요. 이민기간이 4~5년 정도 지나고 어느 정도 말이 통하면 다들 일자리를 구하러 나가요.”

지난달 8일 함안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에서 이민여성을 대상으로 한 사랑방 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민여성 10여명이 함께했는데, 공교롭게도 농업에 종사하는 이민여성은 단 한명도 없었다. 대부분 인근 공단의 회사에 다니거나 원어민강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전 모임을 가진 이유도 출근을 하지 않는 시간대를 골랐기 때문이다.

2003년 필리핀에서 온 김민주(34) 씨는 원어민강사를 하다가 지금은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생산직으로 일하고 있다. 김 씨는 “애들 학원비에 이것저것 쓰다보면 남편이 갖다 주는 생활비는 조금 모자라고,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있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고 있다”며 “함안군여성센터 소개로 일자리를 구했는데, 좀 더 좋은 근로조건에서 일할 수 있게 해줘서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생활 15년차를 맞은 마리언(45·필리핀) 씨는 원어민강사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농촌에 시집을 와서 처음에 농사를 도우려고 했지만 힘들어서 하지 못했다”며 “필리핀도 농사를 많이 짓지만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농사경험이 없는 이민여성도 많고, 실제로 주변에 농사를 짓는 친구들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공점숙 함안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장은 “사실 이민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을 온 배경에는 친정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다”며 “농사는 힘들게 일을 해도 매달 돈을 주는 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2008년 대부분의 다문화정책 사업이 여성가족부로 이양된 이후에도, 농림축산식품부에선 이민여성 지원사업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농촌에 시집오는 이민여성을 농업후계인력으로 육성하겠다는 정책목표가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현재 농식품부는 제3차 여성농업인육성 기본계획을 통해 이민여성을 신규 농업인력으로 육성하기 위한 영농교육 확대를 주요 추진과제로 설정하고, 매년 ‘기초농업교육(9억5100만원)’과 ‘1:1 맞춤형 농업교육(5억5100만원)’ 등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민여성을 모집해 일회성으로 운영되는 등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매년 일부 지역농협을 통해 1500여명의 이민여성이 기초농업교육과 1:1맞춤형 농업교육을 이수하지만, 농식품부는 이들 이민여성이 실제로 농사를 짓는지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민여성을 대상으로 한 농업교육에 대한 성과분석 개선이 시급한 대목이다.

앞서 농식품부는 지난 2009년 이민여성농업인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적응 및 성장단계별 농업인력화 ‘중장기 로드맵’을 마련키로 했지만, 이마저 흐지부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농업에 종사하는 이민여성에 대한 실태조사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다문화 농가인구는 전체 275만1792명 중 6만6156명으로 조사됐다. 전체 농가인구 중 약 2.4% 정도가 다문화 인구인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농업에 종사하는 이민여성은 극히 드물 것으로 예측만 될 뿐, 정확한 통계수치는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오미란 지역고용정책연구원 박사는 “이민여성 상당수가 영세농가와 결혼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과수전정 작업 등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차별화된 영농기술 교육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농식품부는 농업교육만 고집할 게 아니라 이민여성들이 농촌에 잘 정착할 수 있는 교육개발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한 예로 열대작물 재배 등 모국의 음식과 문화를 활용한 창업 등 6차산업화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민여성들 중 농업교육을 희망하는 분들을 찾아서 교육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올해 안으로 가공교육을 추가하고 교재도 업그레이드 할 계획”이라며 “아직 5년밖에 안된 사업이라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교육성과를 가시화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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