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지방교육재정, 위기의 농어촌학교


교육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에 대해 농업계는 물론 지방 교육청,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들은 교육부의 이번 조치가 학생들의 교육균등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물론 농산어촌 학교 통폐합, 농촌의 공동화 현상 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본보는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지난달 20일 전남 무안의 농촌학교인 현경초·중학교를 찾았다. 농어촌학교의 현주소와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 시행에 따른 문제점 등을 함께 짚어본다.

 

▲ 지난달 20일 무안 현경중학교 강당에서 배드민턴과 탁구 등 방과후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현장/농촌학교인 무안 현경초·중학교를 가다
“학생 수 적어 알찬교육 가능…학생·학부모 모두 만족”

교육인프라 열악…방과후학교 필수
재정교부금법 개정돼 예산 줄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축소 불가피


“스매싱! 스매싱!”, “와~ 그걸 어떻게 받았지?”

지난달 20일 찾은 무안 현경중학교(교장 김일두) 강당은 학생들의 목소리로 떠들썩하다. 학생들은 손에 배드민턴 또는 탁구 라켓을 들고 열심히 강당을 뛰어다닌다. 전교생(90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중 하나인 생활체육 수업 풍경이다.

김일두 교장은 “작은 학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학생수가 적기 때문에 알찬 교육이 가능하다”며 “농촌학교 주변에는 학원 등의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등 공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현재 현경중학교에서는 올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으로 영어회화, 수학체험, 생활체육, 진로독서, 중국어, 플롯, 기타, 도자기, 댄스, 공예, 모듬북 등 11개 과정을 운영하고 있고 전교생이 참여하고 있다. 학생들이 납부하는 비용은 0원이다. 지난해 현경중학교는 방과후학교 관련 예산으로 2149만7000원을 지원 받았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대한 학생·학부모들의 만족도는 높다. 전남도교육청이 실시한 2015 방과후학교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대해 만족하냐고 묻는 질문에 학생 79.08%(매우 그렇다 47.66%, 그렇다 31.42%), 학부모 79.26%(매우 그렇다 44.02%, 그렇다 35.24%)로 나타났다. 부정적 답변이 학생 4.44%(아니다 2.94%, 전혀 아니다 1.50%), 학부모 2.88%(아니다 2.07%, 전혀 아니다 0.81%)와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앞으로 방과후학교에 계속 참여하겠냐는 질문에 학생 72.87%, 학부모 78.93%가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농어촌학교에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 이유는 도시와 달리 학원 등의 교육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현경초·중학교가 위치한 현경면 소재 학원은 보습학원 2곳과 예능학원 1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무안읍 내에 보습학원 18곳, 예능학원 10곳, 외국어학원 5곳, 독서실 1곳 등이 운영되고 있지만 이동시간이 30~40분(약 8㎞) 정도 소요되고 학생들의 선택폭도 좁다.

이처럼 공교육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농어촌 현실과 달리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산정기준에 학생수 비중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이 이뤄지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물론 인성교육, 진로체험 등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축소 또는 폐지되고 교내 노후시설에 대한 투자가 지연될 수 있다.

김일두 교장은 “교부금 지급 기준에 학생수 비중을 높인다면 통폐합되는 농어촌 학교가 증가할 것”이라며 “학교가 없어지면 읍내 또는 인근의 목포, 광주로 이사 가는 가정이 늘어나 이곳의 공동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미 3차례 통폐합 과정을 겪은 현경초등학교(교장 정두삼)도 교육부의 방침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현경초등학교는 38년 개교 이후 99년 현경남초등학교, 2005년 양정초등학교, 2007년 현화초등학교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겪어 왔다.

정두삼 교장은 “농촌의 부모들은 농사 등으로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쓰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학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며 “하지만 학생수 기준으로 예산이 지원되면 학생수가 적은 농촌 학교들은 학교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고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도시와 다른 농어촌학교 특수성

개정안 추진되면 강원지역 670개 학교 중 270곳 통폐합 대상
전국 섬지역 학교 중 64% 집중된 전남도 학생들 떠날 수밖에
“1면 1교, 1도서 1교는 지역사회 유지 위한 마지막 보루” 목청


지난달 20일 무안 현경중학교 강당에서 배드민턴과 탁구 등 방과후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교육부는 현행 학교수 55.5%, 학급수 13.8%, 학생수 30.7%인 교부금 배분비율을 학생수 50%, 학교수 30% 수준으로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교부금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 중이다. 만약 이 방안대로 추진되면 학생숫자가 많은 수도권과 광역시는 교부금이 증가하지만 학생수가 적은 지방 도 단위 교육청에 배정되는 교부금은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감소규모는 교육청에 따라 약 200억~600억원(누리과정 예산 제외)으로 추정되고 있다. 교부금법이 개정되면 헌법 제31조 1항에 명시된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농어촌 학생들은 누리기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강원도교육청의 강삼영 대변인은 “교육부 개정안대로 추진되면 강원지역 670개교 중 270개교가 통폐합 대상이 되고 교육재정은 누리과정 예산까지 포함한다면 약 1350억원이 감액될 것”이라며 “학교 신설이나 개보수 등의 대규모 시설사업은 전혀 할 수 없게 되는 등 관련 사업들이 축소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공교육 의존도가 높은 농어촌의 특수성을 반영, 예산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어촌 소재 학교가 많은 전남지역을 보면 그 필요성을 알 수 있다.

전남의 단위면적당 학교 밀집도는 46.81㎢(바다면적 포함)로 시단위 평균(1.55㎢)의 40배가 넘는다. 학교가 드문드문 있어 상당수 농어촌 초등학생들은 통학버스 등의 차량을 이용해 학교로 이동해야 한다. 일부 아이들은 통학시간만 최대 1시간에서 1시간30분이 걸린다. 또 섬에 위치한 학교숫자도 전국 104개교 중 64.4%인 67곳이 전남에 집중됐다. 학생수도 3577명. 교부금 배분비율은 학생수에 중점을 둔다면 이곳에 위치한 학교들은 통폐합될 가능성이 높고 결국 학생들은 섬을 떠날 수밖에 없다. 실제 교육부 기준에 의해 초등학교를 통폐합하면 존속하는 학교는 93곳에 불과하다. 전남에 총 195개면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2개면에 1개 학교 밖에 남지 않는다.

이승호 전남도교육청 예산과 주무관은 “60명 이하의 대다수 학교는 1면1교 또는 1도서 1교로 지역사회 유지를 위한 마지막 보루”라며 “단순히 학생수 기준을 적용해 통폐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남의 전체학생수 대비 다문화학생비율은 2.2%로 시단위(0.8%) 비율의 두 배가 넘는다. 농어촌 지역이 많은 곳에 다문화학생 등 새로운 교육수요에 대비한 예산의 추가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또 정부가 귀농·귀촌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2013년 3만2424가구(5만6267명), 2014년 4만4586가구(8만855명) 등 늘어나는 귀농·귀촌인도 감안해야 한다. 도시민들이 귀농·귀촌 시 고려하는 사항 중 하나가 자녀교육 문제이기 때문이다. 농어촌에 학교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다면 귀농·귀촌지로 선택받기 어렵다.

이승호 주무관은 “지난해 전남지역 사교육비는 16만4000원으로 시단위 평균 23만9000원의 68%에 불과하는 등 농어촌지역은 공교육 비중이 도시에 비해 절대적으로 높다”며 “도농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공교육에 대한 예산투자가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현우 기자 leehw@agrinet.co.kr


●전문가 진단/정민석 전남교육정책연구소 전임연구원
“농어촌학교, 단순 경제논리로 재단 말아야”

방과후학교 운영 성과 물거품 우려
교육기회 제공, 마을 구심점 지켜야

 

교육재정은 외부 의존도가 높다. 정규교과는 교육당국이 지원하지만 특기적성, 인성교육, 진로체험 등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지자체 지원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활성화된 농어촌은 지역 특성상 사교육 시장의 혜택을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최근 들어 지자체가 추진하는 방과후학교 관련 사업에 대한 성과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농촌지역 학생들에게 음악교육과 음악활동을 보장해주는 취지로 탄생한 장흥청소년관현악단을 비롯해 농촌과 도서지역 방과후학교 운영을 대학의 사회적 기업에 위탁한 사업 등이다. 현재 순천대 사회적기업인 에듀 펀 플러스(장흥), 목포대 사회적기업인 어울림아카데미(신안), 호남대 랄랄라스쿨(함평) 등이 방과후학교 운영을 맡고 있다. 지자체들의 이 같은 노력으로 농촌에 가도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시키고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산정기준에서 학생수 비중을 높인다면 이런 성과는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당장 내년부터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이 축소 또는 폐지될 수 있다. 결국 학교 통폐합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번 조치로 농어촌 학교들의 통폐합이 가속화돼 1개면·1개교가 유지되지 않는다면 통학거리 등으로 인해 도시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귀농·귀촌 선택지는 좁아지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될 것이다. 정부가 농촌 활성화 등을 위해 귀농·귀촌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른 한편에서는 농어촌학교 통폐합을 가속화하려는 것은 맞지 않다.

정부가 농촌 학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단순히 숫자 논리, 경제 논리로 재단하지 말아야 한다. 농촌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장인 것은 물론 마을의 구심점 역할 등을 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정부가 농어촌 활성화를 위해 별도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보다 학교를 유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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