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독일 녹색당. ‘환경·평화·사회 공공성·풀뿌리 민주주의’를 내걸고 1980년 창당한 이후 이제는 기성정당으로 자리잡았다. 한 때 사회민주당과 연립정부를 구성, 집권한 경험도 있다. 지금은 야당이지만, 10% 내외의 지지율을 오르내리고, 그간 녹색당이 제시한 의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녹색당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2012년 3월 창당한 이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4년째 활동 중이다. 이런 녹색당이 지난 18일 ‘농업·먹거리 정책 토론회’를 갖는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개인적인 지지여부를 떠나, 그간 농업중시, 농민기본소득제 등 참신한 공약을 내온 녹색당이 이번에 어떤 의제를 들고 나올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발제를 맡은 정기석 마을연구소 소장은 “정책이나 전략 이전에 농정의 철학과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며 그 방향을 국민·공익·지역·협동농정의 4가지 농정으로 정리했다.

그는 “우리 농민들의 소득 중에서 농사를 지어서 얻는 농업소득은 1000만원도 안되고, 자기 인건비를 빼면 마이너스”라며 국민 생존과 국가의 식량주권을 지키는 농업을 국가기간산업으로 대접해 ‘공익농민’에게 월급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들은 도시민, 소비자들의 동의를 중시하면서 EU(유럽연합) 농정, 충남도의 직불제 개혁안을 좋은 사례로 들었다.

사실 공공재인 농업에 대한 지원과 직불제 개혁은 수년 전부터 농업 내외부에서 광범하게 공감대를 형성해오고 있는 관점이다. 우리나라는 마치 농민들이 엄청난 보조금을 받는 것처럼 오해를 받고 있지만, 실제 농민들에게 지급되는 직불금은 2013년 기준 92만원으로 농업소득 대비 9.2%에 불과하다. 미국은 농업소득 대비 직불금 비중이 49%이고, 일본은 52.5%다. 심지어 EU는 농업소득보다 더 많은 직불금을 농가에게 주면서 지속가능한 농업을 유지하려 애쓴다.

다른 얘기 할 때는 거대강국 미국과 EU를 벤치마킹하는 우리 관료들은 농업 얘기 할 때는 이들의 가족농 지원과 직불금 얘기는 빼고 뉴질랜드나 네덜란드를 들어 시장개방과 기업농을 말한다. EU는 기본직불금으로 직불제를 단순화하고 녹색화, 후계농 지원, 소농 지원 등 7개 직불금을 연계 지급한다. 대신 농가의 환경 준수(대응 준수) 의무가 부여된다. EU가 직불제 정책으로 농가소득을 유지하고 경영안정을 도모하는 것은 식량의 안정적 생산, 지속가능한 농업, 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해서다(김태연 단국대 교수, 안병일 고려대 교수).

마침 유럽의 직불제와 6차산업을 보고 온 시사IN 김은남 선임기자의 기사가 반향을 얻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런 2차·3차 산업으로 농촌의 부가가치를 높이려는 활동을 제2의 다리라 부른다. 농사라는 제1의 다리를 보조한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한국의 6차 산업은 제1의 다리로는 더 이상 가망이 없으니 제2의 다리로 경쟁력을 높여 살아남으라는 식으로 전개되는 중이다.’

우리 정부는 여전히 FTA 시장개방을 해야 기업이 살고 경제가 산다며 낙수효과를 주장한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자체인 국제통화기금(IMF)은 15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낙수효과는 ‘완전히 틀린 논리’라고 사망선고를 내렸다. 부유층의 소득이 늘면 성장은 감소하고 하위층의 소득이 늘어날 때 오히려 성장이 촉진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농정, 늦었지만 이제 중단해야 할 때다. 엉뚱한데 보조금 다 쓰지 말고 농민에게 직불금 주고 환경 살리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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