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마을만들기’ 1세대 구자인 박사의 제언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비율) 39.1%. 농가경영주 평균연령 66.5세. 연 농업소득 1000만원 미만 64%. 도시 근로자가구 소득대비 농가소득비율 61.5%.’

통계수치가 증명하듯 지금 농촌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농업소득은 갈수록 쪼그라들고 그만큼 도농간 소득격차는 더 커졌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살림살이에 기존의 농촌 주민들도 농촌에서 살기가 녹록치 않은 형편이다.

그런데 농촌으로 귀환을 꿈꾸는 도시민들이 점점 늘고 있다. 2011년을 기점으로 귀농귀촌 인구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귀농귀촌은 새로운 사회적 트렌드가 돼 가고 있는 듯 보인다. 경기침체 장기화와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 청년 세대의 실업 등과 맞물려 귀농귀촌 증가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거라는 전문가들의 전망도 잇따른다. 중앙정부를 비롯 인구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도 앞다퉈 도시민 유치정책을 내놓고 있다.

기존 농민들도 살기 어렵다는 농촌, 도시민들이 이대로 들어와도 정말 괜찮은걸까. 새로 유입되는 귀농귀촌가구는 정부나 지자체의 바람대로 어려운 농업·농촌에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들어오고자 하는 도시민들은, 농촌 주민들은, 정부와 지자체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3월 충남연구원 농업농촌연구부 책임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구자인 박사를 찾았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농학박사를 취득한 구자인 박사는 우리나라 마을만들기 1세대로 불린다. 2004년 12월 전북 진안군 계약직 공무원에 특채로 들어가 10년을 꼬박 마을 만들기와 귀농귀촌업무에 매진했다. 진안군이 ‘마을만들기의 메카’, ‘귀농행정의 1번지’로 불리는 데는 그의 공이 크다.
 

 

-지난 10년간 현장에서 귀농귀촌업무를 전담해온 전문가로서 최근의 귀농귀촌흐름에 대해 어떻게 보나.

“사실 도시에 경제위기가 생길 때마다 귀농귀촌 이야기가 나왔다. 1997년 말 IMF때도 그랬고,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2009년 4월 정부가 발표한 ‘귀농귀촌 종합대책’도 그 연장선상이다. 도시의 실업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귀농귀촌 문제를 접근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니 근본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그때그때 임시방편적인 인기성 사업들이 나온다.


·정부 정책 문제점
시류·아이디어 편승한 
인기성 사업 안돼
‘농업·농촌 살리기’
기본원칙 분명히 해야

예를 들어 최근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사업 중 80억짜리 체류형농업창업지원센터가 왜 필요한지 난 잘 모르겠다. 8억만 있어도 충분할텐데 그저 폼만 내는 사업 아닌가. 교육과정도 엄청 많이 만들어놨지만 지역에 밀착돼 뿌리를 내린 시군단위 교육기관은 별로 없다. 기본과 원칙을 무시하고 시류나 아이디어에 편승한 사업들은 오래가지 못한다. 마을만들기든, 귀농귀촌이든 기본은 농업·농촌을 살리기 위한 원칙이 무엇이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진안군의 마을만들기와 귀농귀촌정책은 어떻게 추진됐나.

“마을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목표는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출발했다. 마을 만들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감당할 인재가 필요했고, 인재 유치에 대한 고민이 귀농귀촌정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다. 농촌의 인구감소와 고령화추세를 보면 일단 누군가 와서 살아줘야 농업후계자 양성이 가능하고, 사람 사는 동네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복지기능들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진안군에는 귀농귀촌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5가지 원칙이 있었다. 먼저 새로 들어오는 사람보다 이미 들어온 사람을 정착시키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 둘째, 농사 보다는 도시에서의 전문성을 살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도록 도왔다. 셋째, 정착자금이라든가 이사비용 등 직접적인 현금보조는 하지 않았다. 넷째, 지역주민과의 화합을 중시했다. 마지막으로 일시적인 지원이나 이벤트성 행사보다 행정과 민간이 협력해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역점을 뒀다.”


·진안의 귀농정책
유입보다 정착 무게
현금성 지원 배제
주민 화합 우선
민관 협력 중요시

-현장에서 느꼈던 가장 큰 문제점은.

“여전히 준비 안된 사람들이 너무 쉽게 들어온다. 특히 농업보조사업이나 정부 보조금 받아서 들어오겠다는 사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역에 무임승차하려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순간 농촌 문제는 더 꼬인다. 단언컨대, 귀농귀촌 정책은 도시 사람들이 이사 오는 걸 도와주는 정책이 아니다. 그런 사람 데려오는 정책은 농촌을 살리는 정책이 아니라 농촌을 망치는 정책이다.”

-귀농귀촌인들 중에는 농촌 주민들의 선입견이나 텃세 때문에 힘들다는 사람들도 많다.

“텃세라는 게 나쁘게만 볼게 아니다. 텃세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문화적 장치다. 지역 색깔이 분명하고, 동네 사람들이 단결돼 있으면 텃세가 더 강하다. 이 텃세를 이기고 들어온 사람이어야 지역에서 오래 간다. 문턱이 낮으면 쉽게 왔다갔다 한다. 농촌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텃세는 필요한데, 도시사람들 입장에서 너무 부정적인 것만 부각시킨 측면이 있다.

지금의 농촌 사람들은 마을에 길 하나를 낼 때도 자기 땅 내놓고, 직접 지게 지고 노력봉사해 온 사람들이다. 갑자기 들어와서 내 돈 주고 내 땅 사서 내가 집 짓는데 왜 간섭하냐는 식은 곤란하다. 농민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농촌사회, 농촌문화의 특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준비는 어떻게
귀농학교 다니고
생협 가입하고
텃밭 농사 지으며
농촌이해 넓혀야

-최근 교육프로그램들이 많아져서인지 사전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듯 하다. 귀농귀촌 희망자들이 도시에서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먼저 귀농학교를 다녀야 한다. 개인 취향에 따라 부부가 같이 여러군데 다녀보는 게 좋다.

둘째, 생협 조합원이 돼라.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먹거리를 보는 눈도 키우고, 생산지 정보도 받아보고, 농촌 동향도 자꾸 들어야 농업과 농촌사회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다.

셋째, 텃밭농사를 지어봐야 한다. 흙도 만져보고 풀이라도 뽑아봐야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골프치는 게 더 재밌는 사람들은 내려오면 안된다. 그런 분들은 필경 자기 집짓고 담장치고 캡스 달고, 동네 사람과 담쌓고 산다. 그런 사람들이 마을 공동체를 망친다.”


·뭘 먹고 사나
사회적 일자리 주목
농사만 고집 말고
도시민 전문성 살린
농촌 창업 시도를

-농사만 지어서는 먹고 살기 힘든게 농촌의 현실이고, 귀농귀촌인들도 경제적인 문제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고 있다.

“시골에는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일손이 없다. 예전 다품목 소량생산 체계였을 때는 동네사람들이 모이면 웬만큼 공동작업이 됐는데, 지금은 특작중심의 단지화가 많이 이뤄지다보니 수확철이 되면 전부 다 똑같이 일손이 필요해졌다. 서로 바빠 품앗이를 할 수가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현장에서 계절적으로 바쁠 때 농사일을 거들어줄 수 있는 ‘일자리 사업단’을 만들고 거기에 귀농자들을 참여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행정이 적극적으로 사업비를 투입, 조직하고 지원해줘야 한다고 본다. 농촌에 필요한 공공적 성격의 일자리 문제를 사회적 경제영역으로 풀자는 것이다. 행정이 가지고 있는 공공예산의 상당부분을 민간이 집행하도록 넘긴다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

-박사님이 귀농귀촌인들에게 농사 대신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권하는 이유인가.

“맞다. 프로농사꾼도 힘든데 지금 농사 지어 성공하긴 어렵다. 사실 농촌 입장에서 필요한 사람은 전업농민이 아니다. 농사 자체는 잘 몰라도 농산물 가공과 직거래 유통, 새로운 상품 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또 아이들 교육이나 복지, 문화, 환경 등의 분야를 담당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농촌은 농사짓는 사람들만 사는 공간이 결코 아니다. 이제 비농가가 훨씬 많다. 농촌 주민들이 잘하지 못하는 분야, 그렇지만 농촌이 사람 사는 공간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영역에서 새로운 농촌 창업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농촌의 토박이 주민들과의 갈등을 줄이고 공생하면서 재미있게 살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농촌창업은 아직은 블루오션 영역으로 먼저 시작하고 끈질기게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공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정부·지자체가 먼저 할 일
“일할 수 있는 시스템부터 구축하라"

전담부서·전담자 배치 필수
민간 귀농인협의체 구성을
중간지원조직 만들어
실질적 거버넌스 실현을

“현장을 들여다보면 답이 보인다. 누가, 어떻게 문제를 풀어갈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단편적인 정책들만 나열하는 방식으론 절대 농업·농촌의 문제를 풀 수 없다.”

행정의 최일선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얽히고설킨 농업·농촌문제의 해법을 고민해 온 그는 인터뷰 내내 ‘현장’과 ‘사람’, 그리고 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강조했다.

-지자체가 귀농귀촌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지금 당장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우선 행정에 전담부서를 만들고 그 안에 전담자를 두어야 한다. 귀농귀촌업무는 공무원들이 제일 기피하는 업무 중 하나다. 힘들고 욕만 많이 먹기 딱 좋은 자리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전문직위제도 등을 활용, 최소 3년간 직위를 보장하고 고생한 대신 승진가점이나 연수기회 등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민간쪽으로 보면, 귀농인협의체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처지와 여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토론을 통해 합의된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간혹 세력을 모아 단체장 압박 수단으로 조직을 만들거나, 표의 힘으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겠다는 분들이 계신데 그렇게 하면 지역분열만 낳는다. 네트워크를 구축하되, 조직의 대표는 화합과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맡는 게 좋다.

이렇게 민관 양쪽이 다 정비가 되면 상호 합의한 형태로 중간지원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 현 기초단체의 행정체계만으로는 복잡하게 얽힌 농업·농촌 문제를 풀 수 없다. 전문성을 가진 정책집단을 영입, 민과 관을 연결하는 실질적 거버넌스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분야든 이 세가지 틀이 갖춰지면 문제가 풀려가기 시작한다. 이런 시스템과 인적자원을 쓸 수 있는 여건은 만들지 않고, 사업만 추진하라고 하니 현장에서 정책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중앙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위에서 얘기한 세가지 영역의 틀을 짤 수 있도록 지자체에 지침을 내려줘야 한다. 군단위에서 자발적으로 조직체계를 바꾸기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모든 걸 행정에서 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럴 능력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거버넌스 체계로 가야 한다.

특히 지금처럼 사업비마다 일일이 꼬리표 붙여 통제하는 방식은 그만 둘 때가 됐다. 일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적자원을 지원하고 재량권을 주면 얼마든지 지역에서도 창조적인 업무가 가능하다.”

김선아 기자 kimsa@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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