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 축협의 인사가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는 가운데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농협중앙회 감사위원회사무처와 경기지역본부는‘소송이 진행 중인 일이기 때문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특별경제가중처벌법 위반혐의 소송 중 당사자 발령 
경영관리본부장·지점장으로, 상임이사로 선출 논란


경기 북부의 ‘ㄱ’축협은 지난해 5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지난 2005년부터 8년간 상임이사 등 9명의 임직원은 임직원이 받을 수 있는 대출범위를 넘어 대출을 받은 혐의로 징계를 받았다. 3명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사금융 알선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이 됐고, 지난해 10월 2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서 1심 판결을 받은 후 항소해 오는 10일 의정부지법의 2심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소송 중인 최 모씨와 허 모씨는 올 1월 ‘ㄱ’축협의 경영본부장과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또 다른 사람인 신 모씨는 지난 2월 11일 축협의 상임이사로 선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달 18일, 고양 모처에서 만난 ‘ㄱ’축협 소속 조합원들에 의해 드러났다. 이들은 “축협 임직원이 사금융을 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오히려 축협의 주요자리에 올랐다”면서 “농협중앙회 감사위원회사무처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소송 중이기 때문에 무죄’라며 감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법에 계류 중인 사항에 대해 감사·징계를 주기 어려우니 최종 판결까지 기다려 달라’고 답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조합원들은 “사업을 하다가 문제를 발생시키면 같은 분야에 인사발령을 내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는데 축협의 중책인 경영관리본부장으로 발령이 났고, 한 사람은 지점장에, 또 한 사람은 상임이사로 선출하는 일이 벌어졌다”면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 우리 축협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해 10월 이미 1심에서 판결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해당 축협을 관장하고 있는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 감사라인에서는 이를 모르고 있었다.

경기지역본부 감사부서 한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해당 사건에 대해서는 처음 듣는 것인데, 확인 결과 중앙회에 민원이 제기되자 답신이 지역본부 회원지원부문를 통해 전달된 것으로 파악됐다”며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인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달리 감사를 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과거 조감처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관계자는 “소송이 제기중인 건에 대해서는 조감처가 같은 건으로 감사를 하지 않으며,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게 되면 상당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의 징계를 피하기 위해 항소·상고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런 경우에는 다른 건으로 감사를 하게 된다”고 전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와 유사한 경우들이 있다”면서 “해당 축협에 대해 다른 방법으로 관리·감독을 강화할 수는 있지만 해당 건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최종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 축협의 감사를 지낸 바 있는 한 관계자는 “중앙회는 지역 농·축협을 관리·감독할 권한과 의무를 가지고 있고, 또 사건이 발생한 후 소송이 진행 중인 3명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징계를 받은 상황”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소송중인 건이기 때문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가공무원법에 따르면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는 직위가 해제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CNK 주가조작과 관련 1심 무죄를 선고받은 김은석 전 외교통상부 에너지자원대사가 무죄추정의 원칙을 들어 자신에게 내려진 ‘직위해제가 부당하다’며 낸 행정소송에 대해 서울행정법원은 이 조항과 ‘동일한 직무를 수행할 경우 국민의 신뢰가 저해될 위험이 존재했었다’며 적법한 조치라고 판결했다.

이진우 기자 leej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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