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길 논설실장·선임기자

 

2008년,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의 종언이 얘기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공적자금을 통해 교묘히 살아남았다. 국가와 정치를 지배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언론까지 포획한 ‘자본의 힘’이 민주주의를 허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경쟁, 능력, 유연성, 명품, 대박, 선진화 등의 수사와 결합해 사회의 모든 가치를 흡수하는 동안 가장 중요한 사람은 소외되고 인문, 복지, 농업, 전통 등의 가치는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가 만인을 위해 좋은 것’이라는 논리로 포장하고 있지만, 결국 FTA 등 무역자유화, 공공부문 민영화, 부자감세, 규제완화, 고용유연화를 통해 재벌과 초국적 자본, 1% 부자를 위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다. 데이비드 하비에 따르면 산업자본주의시대에는 부의 축적이 재화의 생산과 교환에 의해 이뤄졌다면, 신자유주의시대의 자본주의는 다수의 희생을 대가로 소수가 이익을 얻는, ‘탈취에 의한 축적시스템’으로 성격이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신봉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풀면 경제가 활성화된다는 논리와는 달리 오히려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소득불평등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90년대 남미, 러시아와 중부유럽 등 신자유주의에 충실했던 나라들이 그렇다. 

우리나라는 재벌에 부가 집중되면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빈곤층이 늘어나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수출기업을 위해 농업을 희생시키고,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농정으로 농민들의 삶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농업총수입은 1980년 이래 연평균 8.4% 증가하는 동안 농업경영비는 연평균 11.8% 증가했고, 1980년 74.9%에 달하던 농업소득률이 2013년 32.7%로 반토막났다.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대비 농가소득 비중은 1980년 95.9%에서 2013년 62.5%로 신자유주의 개방농정이 본격화된 이후 도농간 소득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는 세계와 경쟁하는 강한 농업, 돈 버는 농업을 내세우며 네덜란드와 뉴질랜드의 수출농업을 모델로 기업농 육성, 대기업 농업 참여 등으로 신자유주의 농정의 진수를 보여줬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신자유주의 농정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초기에는 안전한 식품의 안정적 공급, 6차산업화, 공동체 경영 등을 강조하며 이전 농정과 차별성을 보여주려 했지만, 최근 국가적으로 개방과 수출이 지상목표가 되면서 다시 경쟁과 효율의 신자유주의 논리로 중심이 회귀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장 농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무차별 FTA, 농산물 가격 폭락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 농업예산의 실질적 축소는 박근혜 정부 농정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러나 탈취를 본질로 하는 신자유주의 질서로는 성장도, 분배도, 사회의 공공성 측면에서도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복지가 화두로 등장한데서 보듯, 세계는 지금 신자유주의의 침체기를 겪으면서 새로운 체제를 모색하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위기는 다른 방법으로 극복해야지, 더욱 강화된 신자유주의로 돌파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정부는 이제 기업과 소수 부자 농민을 위한 신자유주의 농정을 버리고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농정으로 판을 다시 짜야 한다. 농업의 가치와 식량안보, 농가소득과 생활 보장, 공동체 육성, 조합원에 의한 협동조합, 지방농정 강화를 놓고 원점에서 다시 고민해야 한다.

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주체들에게 그 정 반대의 방향으로 농정 전환을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공허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농민을 살리고, 종국에는 국가 전체에 이익을 주는 길이라면 마땅히 변화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정책당국자들의 책무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