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전국동시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등록 마감 뒷날인 27일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지만, 법을 어기지 않으면 조합장 당선이 힘들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약칭 위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공보, 벽보, 어깨띠·윗옷·소품 착용, 전화, 정보통신망, 명함을 이용한 선거운동만을 3월 10일까지 13일 동안 오로지 후보자 본인만이 할 수 있다. 이 외에는 ‘누구든지 어떠한 방법으로도’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농업협동조합법과 조합 정관에서 허용했던 합동연설회나 공개토론회도 없어졌다.

현직 조합장에 도전하는 후보들은 정책 검증은커녕, 인물 알리기조차 막막해졌다고 하소연이다. 조합원끼리 왕래가 잦은 몇몇 단일 읍면단위 농협은 몰라도 조합원수가 많고 여러 읍면에 산재된 통합농협은 이번 위탁선거로 후보가 조합원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지나치게 차단·위축돼 조합 발전의 발목을 잡았던 골 깊은 지역주의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합원이 여러 시군에 흩어져 있는 광역단위 품목농협은 더욱 가관이다. 조합원을 만나서 손 한 번 잡고 명함 전달하기조차 벅차다. 어깨띠·윗옷·소품 착용도 거의 무용지물이다. 후보자가 조합원 거주지 주위를 찾아가야 만날 수가 있는데, 호별방문은 위법이다. 제3자가 후보를 만나게 할 목적으로 여러 명을 다른 곳으로 불러 모으는 것도 안 된다고 한다. 후보자만이 유권자를 집밖으로 불러내 만날 수 있다는 결론인데, 거리와 시간 제약을 감안하면 하루에 만날 수 있는 조합원이 많지 않다. 선거벽보도 부착할 길목이 매우 한정돼 있다.

문자나 SNS메시지라도 제대로 보냈으면 싶지만, 휴대폰번호는 개인정보보호라는 이유로 조합에서 공식적으로 입수할 수 없다. 그나마 공보물이 남아있지만, 사진 몇 장 넣고 고령 조합원들을 배려해 글자크기 키우다 보면 약력과 공약 소제목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친다.

“법을 어기지 않으면 조합장 당선이 힘들다”는 말은 과거 금품 전달을 통한 매표 등의 불법적 무리수를 감행하던 후보들이 자신을 정당화시키고자 종종 사용해온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청렴하고 참신한 인물로 평가되는 후보들마저 이 말을 너무도 쉽게 내뱉고 있다.

과거 조합장 선거에서도 선거운동방법은 현직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했다. 그러나 이는 ‘금품선거’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오히려 현직의 당선율을 떨어뜨리곤 했다. 

현직에게 더더욱 유리해진 위탁선거법으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도 공명선거 구호는 요란하지만, ‘금품선거’라는 ‘은밀한 불’이 붙을 본질적인 조건은 오히려 더 충족되는 모양새다. 현직도 이러한 ‘부메랑’을 의식한 듯 일방적 룰에도 불구하고 ‘돈 봉투’를 돌리다 적발되곤 한다. 

공명선거 캠페인을 벌이는 한편으로 불법 적발 시 엄벌을 경고하는 감시자들도 그저 우리 동네에는 ‘큰불’이 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어쩌면 솔직한 속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농업계 이미지 실추가 우려된다는 궁색한 이야기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누구의 입김에 휘둘려서인지 몰라도 중차대한 농협 조합장 선거를 이렇게 방치한 것에 대해 처절히 깨어져 뼈저리게 반성하지 않고서는 농협 개혁은 요원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구자룡 기자 경남취재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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