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과 보리 등 동계작물의 춘파 재배를 독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지난해 밀·보리 파종이 부진해 올해 수급 차질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맥류 재배면적은 11% 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가을철 잦은 강우로 인해 땅이 질어 파종을 할 수 없었던 탓이다.

이처럼 맥류 생산량 감소 예상으로 수급 불안 및 원료곡 확보 차질이 우려되면서 관련업계의 상황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가뜩이나 이들 작물들의 자급률이 저조한 실정인데, 올해는 예년보다 생산량이 더 줄어들 것으로 보여 수급 문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정부가 대대적으로 춘파 재배 독려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까지 나서 지역에서 열린 ‘춘파 이모작 재배 확산 현장시연회’에 참석하는 등 춘파 재배 분위기 조성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점은 분명 인상적이다.

하지만 ‘식량주권 확립을 위한 이모작 확대’를 부르짖는 정부의 대외적인 행보와는 달리 그에 걸 맞는 정책이 추진돼 왔는지는 의문이다.

동계작물 중 쌀 다음으로 많이 소비되는 밀은 그간 정부가 올해까지 자급률 10% 목표 달성을 공언해 온 작물이다. 국내 사용량의 99%를 수입 밀에 의존하는데, 이 물량 220만톤 중 10%를 국산 밀로 대체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현 주소는 예년보다 저조한 생산량으로 인해 춘파 재배에 사활을 걸어야 할 지경에 처했다. 열악한 생산 기반 속에 밀 재배를 외면하는 농가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내 밀 생산량은 2만톤 수준에 불과해 1~2% 자급률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종합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식량주권 확보와 곡물자급률 제고에 대한 정부 인식의 부재를 드러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뚜렷한 근본대책 없이 기상 여건 및 작황 악화, 또는 시장 수요 부족이라는 판에 박힌 원인 분석 속에서 춘파시기를 앞두고 농가와 업계의 불안감만 커지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이동필 장관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춘파 재배 현장을 찾은 것은 ‘현장에서 대안을 찾겠다’는 그의 신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장을 바라보는 문제의식과 진지한 성찰이 진정성 있는 대책으로 귀결될 때 그 현장은 더욱 빛이 날 수 있다. 춘파 재배의 중요성만을 거듭 호소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정부 대책이 먼저 제시돼야 한다는 얘기다. 이 장관이 최근 찾은 현장시연회가 바로 그 값진 현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고성진 기자 식품팀 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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