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완형 (한살림연합 전무이사)

 

올해는 유엔이 정한 ‘세계 흙의 해’다. 흙의 공공적 가치를 널리 알리고 가속화되는 흙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다. 지난해 ‘세계 가족농의 해’에 이어 내년 ‘세계 콩의 해’로 제정되는 등 3년 연속 식량·농업과 관계된 국제년(International Year)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가족농도, 흙도, 콩도 모두의 관심 바깥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매일같이 흙을 밟고 사는 우리는 흙의 위대한 힘과 고마운 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세계 흙의 해’를 맞아 오랫동안 간과하고 무시했던 흙의 소중한 가치를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모든 생명 기르는 ‘생명의 어머니’

흙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흙 속 미생물도 숨을 쉬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흙을 바탕으로 식물도 왕성하게 자란다. 흙은 우리 삶의 터전이고 우리 농업의 바탕이다. 흙은 오곡백과를 생산해 우리를 먹여주고 섬유를 만들어 우리 몸을 보호해 준다. 또 나무를 키워 우리 삶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 우리가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도 흙이 식물을 키워서 산소를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다. 나무와 숲, 새와 곤충 등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흙이 베풀어 주는 은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야말로 흙은 모든 생물을 길러주는 ‘생명의 어머니’다.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의 95%가 흙을 통해 생산된다. 지구상 생물의 4분의 1은 흙 속에서 살고 있다. 큰 숟가락 한술의 건강한 흙 속에는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보다도 더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다. 지속가능한 흙 관리를 통해 식량을 58%까지 증산할 수 있다.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흙이란 살아 숨 쉬는 흙을 말한다. 흙은 살아 있어야 새싹을 틔우고 물을 저장하고 온갖 유기물을 식물과 흙 속 모든 생물들이 먹기 좋게 분해할 수 있다. 농작물을 생산할 수 있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흙 1cm에는 최소 300년 이상이나 되는 길고 긴 역사가 담겨 있다.

이처럼 너무나 소중하고 위대한 흙에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마치 흙을 무진장한 자원처럼 착각하고 향수해 왔다. 세계 흙의 3분의 1은 인간의 부적절한 관리로 인해 본래 지닌 농작물 생산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외부로부터 유해물과 오염물이 가해져 흙이 농작물 생산에 적합하지 않게 되고 유해한 먹을거리가 생산되고 있다. 흙은 인간의 성급한 이익 추구 때문에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

흙은 수탈적 산업화에 따른 환경오염과 과도한 이익 추구에 목적을 둔 관행화학농업으로 생명력을 잃고 중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흙이 파괴되고 피폐되는 심각한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흙이 병들면 사람도 병약해 진다. 병든 흙은 우리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키고 그 흙에서 난 먹을거리는 우리의 몸을 해치게 된다. 2050년 세계 인구가 90억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흙의 황폐화는 식량생산의 위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흙을 제대로 알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겐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이기심 탓 흙 위기 닥쳐

우리 삶의 질이 향상되고 풍요롭고 번영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흙이 온전하게 보전되고 관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흙을 건강하게 지키고 살리는 일은 현 세대에 부과된 매우 중요한 책무다. 지금까지 생산성·효율성과 이익·편의를 우선시해 온 자세를 과감히 바꿔야 한다. 인류의 둘도 없는 귀중한 자원인 흙을 파괴하지 않고 소중히 다루어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

눈앞의 경제적 합리성과 생산성 향상만을 추구하는 생태계 파괴형 관행화학농업에 매달려서는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흙을 유지·보전할 수 없다. 모든 생명체의 모태인 흙을 소중히 다루고 건강하게 지키고 가꾸는 생태계 조화형 유기농업으로 과감하게 나아가야 한다. 관행화학농업을 멀리하고 유기농업으로 과감히 전환할 때 인류는 지구상에 계속 존재하면서 밝고 쾌적한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흙이 죽으면 다 끝장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콘크리트 고층 아파트에 살고 아스팔트 도로 위를 걸어다니고 빌딩 속에서 일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이런 현실이라 흙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흙은 토지라는 자산만으로 가치가 평가되고 있다.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살아 숨 쉬는 흙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우리는 흙을 너무도 홀대하고 있다. 우리 삶은 흙의 생명력과 함께 흥망성쇠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 흙을 소중히 여기고 잘 가꾸어 온 문명은 융성했고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했다는 문명사적 사실을 곱씹어 봐야 한다.

‘세계 흙의 해’를 맞아 농업인만이 아니라 도시민들에게 흙의 위대한 힘과 소중한 가치를 알려야 한다. 아울러 국내외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흙의 위기 상황도 알려줘야 한다. 흙은 오랜 세월에 걸쳐 지구상에 형성된 거의 재생 불가능한 인류의 귀중한 자원이다. 흙은 동물, 식물, 미생물이 공존하는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 걸작의 하나다. 이제 우리는 문명의 진화와 함께 지금까지 지속돼 온 흙의 오염과 파괴를 맹성하고 겸허한 태도로 흙의 원리와 가치를 되새겨봐야 한다.

모든 국민이 공공적 가치 알아야

온 생명의 어머니인 흙이 생명력을 잃고 중병에 걸려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흙이 생명을 잃어가면 우리와 우리 후손들에게 미래는 없다.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흙을 지키고 살리는 제도 개선과 정책 발굴이 절실하다. 흙 자원의 지속적 이용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을 촉진하고 지속가능한 흙 관리를 위한 정부 투자를 크게 늘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세계 흙의 해’에 즈음하여 국민들, 특히 도시민들에게 흙의 위대한 힘과 공공적 가치를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희망한다. 나아가 흙을 지키고 살리는 국민운동이 전개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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