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좀 지난 얘기를 해본다. 한·호주 FTA다. 한·호주 FTA는 지난해 4월 8일 정식 서명을 하고, 같은 해 12월 12일 정식 발효됐다. 2010년 5월 제 5차 협상 이후 중단됐던 한·호주 FTA 협상이 2013년 11월 6차 협상으로 재개된 이후 1년여만의 일이다. 이번 한·호주 FTA로 인해 축산업의 피해는 막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우산업의 경우 쇠고기의 관세가 완전 철폐되면 연간 피해액이 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한·호주 FTA는 영연방과 FTA를 맺는데, 그 출발점이 됐고, 현재 우리 축산업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위기를 맞고 있다. 

왜 이 얘기를 뜬금없이 꺼냈을까? 최근 공개된 국회사무처의 한 보고서 때문이다. 지난해 9월 18일부터 19일까지의 ‘호주 하원의장(브론윈 비숍) 방한 결과보고서’. 정의화 국회의장,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들과 호주 하원의장이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가진 면담을 속기한 내용이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제가 호주산 쉬라 와인을 좋아하는데 FTA가 발효 후 쉬라 와인 가격 인하가 기대된다”고 말했고, 김종훈 새누리당(서울 강남을) 의원은 “의원으로서 FTA(한·호주 FTA)가 국회를 통과하는 것을 지켜보게 돼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게다가 새정치민주연합의 김동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은 “패터슨 주한 호주 대사로부터 올해 한·호주 FTA 발효 필요성에 대해서 세뇌를 당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한·호주 FTA의 조기 비준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여·야 의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한·호주 FTA를 찬성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우리나라의 통상정책을 감시하는 산업위의 수장인 김동철 위원장의 발언은 농업계에서 볼 때 참으로 안타까움이 크다.

‘한·호주 FTA를 중단해야 한다’고 농민들은 거리에서 1년 내내 소리치고 있는데, 그 와중에 국회의원들은 ‘FTA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환담을 주고 받았다는 얘기다. 특히 야당의 경우 공식석상에서 한·호주 FTA에 대해 농민들과 함께 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는 점에서 실망감은 더욱 크다.

물론, 호주 하원의장과의 형식적인 대화에 불과했다고 그냥 지나칠 수 있다. 국회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높은 사람들끼리 하는 얘기는 그냥 넘기는 게 낫다”며 오히려 충고한다. 바꿔 말하자. ‘그냥 넘길 수 있는’, 그런 말들이었다면 한·호주 FTA를 걱정하는 농민들의 입장을 그들에게 편하게 얘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최소한 ‘우리 농민들은 한·호주 FTA로 불안해하고 있다’는 목소리는 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호주산 와인’이 아니라 ‘국산 한우’를 언급하고, 한·호주 FTA의 필요성이 아니라 ‘우려’를 얘기했어야 했다. 한·호주 FTA로 인한 피해당사자인 농민들에게 그들의 대화는 비수로 꽂히게 됐다. 

농민들이 아스팔트 농사를 국회 앞에서 짓는 이유가 국회에 있다. 국민들을 대표하는 대의기구가 바로 국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국회에 대한 신뢰가 사라진다면, 이제 농민들은 더 이상 기댈데가 없다. 자신이 표가 필요할 때가 아닌 그들이 먼저 필요로 할 때 발길을 옮기는 국회, 농민들은 그 모습을 기다린다.

조영규 기자 choyk@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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