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흥군 할머니 장터를 찾은 할머니들이 직접 키운 농작물을 판매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할머니, 좀 깎아주세요.” “뭔 소리하는 겨, 늙은이가 몇 달 동안 키운 걸 가져왔는데, 그 정도는 줘야지.” 오가는 얘기마다 정이 묻어나는 장터가 있다. 바로 ‘할머니 장터’. 현재 전남지역엔 장성군과 장흥군 등 두 곳에서 할머니 장터가 운영 중이다.

•장성 할머니 장터는 
오일장 열리지 않을 때 개장
할머니들은 월급도 받아
장옥 만들고 ‘장터 새단장’


장흥 할머니 장터는
관산댁, 안양댁, 회진댁…
명찰이 곧 명함이자 간판
토요시장 어엿한 명물로

 

할머니 장터는 할머니들이 직접 키운 농작물을 가지고와 판매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운영방식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우선 장성군이 운영 중인 ‘할머니 장터’는 노인 일자리 만들기 사업으로 계획한 장터다. 장성읍 터미널 입구 건너편 인도에 어엿한 장옥도 마련했고, 주로 채소류가 판매된다. 이 장터는 인근 황룡·삼계·북이면의 전통시장(5일장)이 열리지 않는 날을 골라 장이 펼쳐진다. 날짜의 끝자리가 0·3·5·8일로 끝나는 날에 열리는데, 매달 12일 운영되는 셈이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할머니 장터가 열리면서 이들 할머니들은 ‘월급’도 받고 있다. 장터가 열리는 날 빠짐없이 출근하면 매월 20만원을 받는다. 대신 하루 빠지면 1만8000원씩 깎인다. 할머니들의 장사를 일종의 ‘공공근로’로 운영해 이런 보상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장성군의 설명이다. 장성군은 할머니들의 친환경 농산물 판매로 지역 이미지를 높이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처음부터 할머니 장터가 이런 모습을 갖췄던 것은 아니다. 처음 도입됐던 2013년엔 읍내 골목마다 배추·무·고구마순·약초 등을 펼쳐놓고 소규모 좌판을 벌였다. 이렇게 진행되던 것을 장성군이 하나의 상품으로 개발한 것이 바로 할머니 장터다. 처음엔 두려움도 컸지만 손님들과 할머니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좋았다.

할머니 장터는 추운 겨울엔 열리지 않는다. 이에 군은 지난해 11월 이후 할머니 장터를 새롭게 단장했다. 길이 66m, 폭 5m 규모로 40명이 장사를 할 수 있는 장옥을 만든 것. 입주가 결정된 할머니들도 변했다. 직접 기른 친환경 농산물과 임산물, 직접 만든 간장·된장·고추장·김치·두부 등을 내놓겠다고 결의까지 했다. 대형마트보다 더 깨끗하고 안전한 채소를 팔겠다는 것이다.

장성군보다 한 발 앞서 할머니 장터를 운영 중인 곳이 바로 장흥군이다. 장흥의 명물인 ‘토요시장’이 자리를 잡는데 큰 도움을 줬다. 할머니들이 명패를 가슴에 차고 직접 수확한 농산물을 가지고 와 판매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여야 장이 흥겨워 진다는 지자체의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시끌벅적한 시장 골목길을 지나다보면 길 양족에 난전이 길게 늘어서 있는데, 여기엔 소쿠리와 보자기 등으로 싸 온 제철 나물이 가득하다. 또 그때그때 수확한 농산물도 주요 품목이다. 할머니들의 텃밭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양새다.

할머니 장터에는 평균 40~50명이 출근한다. 할머니들은 목에는 관산택, 안양댁, 회진댁 등 택호가 적혀있는 명찰이 있다. 이 명찰이 곧 할머니들의 간판이고, 명함이다.

장흥군에서 할머니 장터를 처음 계획한 것은 노인 일자리 창출과 관광객 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토요시장의 어엿한 명물이 됐다. 할머니 장터가 없으면 토요시장의 흥이 사라진다는 말이 돌 정도다.

지금이라도 이 곳 할머니 장터에 들르면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할머니들의 넉넉한 정까지 느낄 수 있다. 할머니 장터는 많은 물건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할머니들만의 정이 묻어 나는 공간이다.

장성∙장흥=안병한 기자 anbh@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