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 도-농을 잇다<4>언니네텃밭 봉강공동체

▲ 유기농 텃밭에서 학생들이 직접 가져갈 채소를 캐고 있다.

“꾸러미를 하면서 남편 통장이 아니라 내 통장에 돈이 들어오니까 기분 좋아요.”

“한 달에 얼마 버세요?”

“50~70만원 정도 버는데 시골에선 적은 돈이 아니예요.”

“가끔 꾸러미가 실망스러울 때도 있어요.”

“열심히 준비를 하는데 농사라는 게 잘 안될 때가 있어요. 일부러 나쁘게 담는 건 절대 아니니까 조금만 이해해주세요.”

지난 11일 경북 상주 외서면 봉강마을. 언니네텃밭 봉강공동체 작업장에 텃밭체험을 위해 방문한 꾸러미 소비자 20여명과, 4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마을 언니들이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마을을 돌며 탱자를 털어 주어 담고, 나무에 걸린 홍시를 맛보고, 텃밭에서 갖은 채소를 두 손 가득 캐온 뒤였다. 어색함도 잠시. 농산물 재배방법부터 언니들 수입까지 시시콜콜한 수다가 이어지고, 이내 웃음꽃이 핀다.


일년에 두번 생산자·소비자 만나
매주 모여 직접 재배 농산물 포장
편지로 안부묻고 레시피도 추천


소비자들과 만나고, 체험하고, 수다를 떠는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언니들은 ‘얼굴있는 생산자’가 되고, 소비자들은 이른바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된다. 이날 소비자들이 언니네텃밭을 두고 ‘기다림의 즐거움, 친정가족, 건강한 먹거리, 맛있는 랜덤박스, 최후의 보루···’ 등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언니네텃밭의 성공비결은 ‘만남과 소통’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9년 시작된 언니네텃밭은 현재 17개 공동체, 140여명의 여성농민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모든 공동체는 매년 2번 이상 의무적으로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다. 16명의 마을여성들로 이뤄진 상주 봉강공동체 역시 예외는 아니다. 봉강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김정열(48) 언니네텃밭 단장은 “봉강은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고 특별히 경치가 좋은 것도 아니지만, 이번 체험행사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굉장히 소중한 자리였다”며 “우리 여성농민들을 지원해주는 소비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서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경북 상주에서 유기농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마을답게 봉강공동체는 친환경 생태농업을 지향한다. 무농약이상 친환경농산물 재배를 고수하고, 직접 생산하지 않은 농산물은 절대 보내지 않는다. 김정열 단장은 “매주 화요일, 마을 언니들이 각자 친환경으로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들고 오면 공동으로 꾸러미를 싼다”며 “보내는 대로 믿고 먹어주는 소비자들을 위해 최대한 다양한 품목을 재배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봉강공동체는 두부, 계란, 콩나물은 물론 김치와 된장, 유기농곡물과자까지 연간 100가지 정도의 농산물(가공품 포함)을 모두 직접 재배 또는 가공하고 있다. 또한 꾸러미 속 편지를 통해 소비자들의 안부를 묻고, 각각의 농산물들이 어떤 언니의 손에서 키워졌으며, 어떻게 요리를 해서 먹으면 맛있다는 조언까지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특히 언니네텃밭은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여성농민들이 지역 공동체를 만들고 자립기반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식량주권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언니네텃밭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의 경제사업단이 아니라 식량주권사업단에 소속돼 있는 것도 그 이유다.

‘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이 대표적이다. 언니네텃밭 생산자는 3가지 이상의 토종씨앗을 반드시 심고 가꿔야 한다. 김 단장은 “농사의 시작인 씨앗을 90%이상 기업에 의존하면서, 농사자체가 기업의 손에 자지우지 되고 있다”며 “아직 토종씨앗으로 재배한 농산물을 꾸러미에 많이 넣지는 못하고 있지만, 토종오이의 경우 조금씩 꾸러미에 넣고 있는데 일반 시중에 유통되는 오이보다 맛이 좋아 반응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 텃밭체험 행사에 참가한 소비자들이 된장과 고추장 등 자신들이 받아보는 장류의 생산과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지역 먹을거리 체계 구축 등
식량주권 지키기 활동 앞장
농민장터 3년째…시민들 호응


언니네텃밭이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활동 중 하나가 지역먹을거리체계(로컬푸드)를 구축하는 것이다. 곡물메이저를 비롯한 초국적 농식품기업에 의해 장악된 세계 식량체계로부터 발생하는 △먹거리의 위험성 △환경의 파괴 △가족농(소농)의 해체 △지역공동체 붕괴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유력한 수단이 ‘로컬푸드’라는 것. 김 단장은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고 지역에서 소통하는 먹거리 체계를 만들기 위해 매주 목요일 상주 문화회관 앞에서 농민장터를 3년째 열고 있다”며 “상주에는 아직 농민직거래장터가 없는데 봉강농산물은 유기농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다 오전수확, 오후판매를 하다 보니 시민들의 호응이 좋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언니네텃밭이 소속된 전여농은 2012년 세계식량주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언니네텃밭은 모든 공동체에서 노숙자와 위안부 할머니, 해고 노동자 가족 등에 매주 ‘기부꾸러미’를 보내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지역아동센터나 소외계층에 ‘상생꾸러미’를 통해 후원하는 등 다 같이 잘사는 건강하고 따뜻한 사회를 꿈꾸고 있다.

김 단장은 “언니네텃밭은 먹거리를 나누고, 농사일의 힘겨움을 나누고, 농민의 어려움을 나누고, 소비자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곳”이라며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기노 기자 leekn@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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