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히 농사 지어놓고도 단 한 톨도 수확할 수 없다면 당신은 어떤 심정이겠는가? 태풍피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비료나 농약을 잘못해 약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최근 웰빙붐을 타고 흑미가 큰 인기다. 이에 발맞춰 농촌진흥청에서도 안토시아닌 등 흑미가 가지는 기능성분은 물론 수량성까지 높은 흑미 ‘선향’을 선발해 농가에 보급했다. 그런데 농가의 큰 기대와 달리 이 품종은 농가에게 재앙이 됐다. 수확을 하지 못할 정도로 냉해가 심각하다.

벼 출수기인 8월 중순까지 선향품종을 재배한 농민들은 풍년을 예감했다. 벼 생육상태가 다른 종자 못지않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9월이 지나고 10월이 되도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온통 쭉정이 뿐이다. 수정이 거의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농가는 1200평에 걸쳐 수확했는데 조곡 40kg포대로 5가마 수확했다고 한다. 인건비조차 나오지 않는 수준이다.

일부 지역이나 농가에서 발생한 문제라면 농가 탓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남도의 끝 진도에서부터 영광, 익산 등 전남북 지역에 걸쳐 피해가 광범위하다. 이 때문에 농가에선 ‘부실종자’ 때문이라고 토로한다. 같은 시기 심었던 다른 품종의 벼는 모두 멀쩡하기 때문이다.

현재 피해면적이 모두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지역에 대한 취재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200ha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농가에선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종자를 보급했던 농촌진흥청은 아직까지 속 시원한 대답이 없다. 그저 ‘저온피해’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다.

기온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벼 출수기(7월말~8월말) 최저온도가 언제든 20℃이하로 내려갈 수 있다. 벼 육종과정에서 예측가능한 부분이고, 추후 보급과정에서도 농가에 충분히 설명이 이뤄졌어야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농가에선 그 어떤 얘기도 듣지 못했다.

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상당수 농가는 올 일 년 수입을 한 번에 날렸다. 농가들의 통곡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농촌진흥청에선 이들 농가에 대한 보상대책을 먼저 세우는 것이 도리다.

안병한 기자 전남취재본부 anbh@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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