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괴산의 산과들은 노랗게 물들었다. 낙엽 지는 가을의 전주곡으로 뚱딴지들의 가을나들이가 한창 이쁘다. 있는 듯 없는 듯 강가에 서 있더니 하나둘 피어나서는 이제 노란 바다처럼 무리를 이뤄 피어난다.

코스모스가 피어나고 다음 타자로 나타난 뚱딴지를 지켜보는 마음은 젊은 여인이나 할머니나 똑같은 마음인가보다. 어제 만난 할머니도 오늘 만난 동네언니도 손 전화를 꺼내서 화면에 담아간다. 누군가에게 보내줄 것이고 그 향기는 멀리멀리 도시에 사는 딸네 집으로 아들네 집으로 퍼져갈 것이다. 씨를 뿌린 것도 아닐텐데 강변으로, 야산으로 언덕배기마다 푸짐하게 피어난 뚱딴지 덕분에 산책길 호사를 누린다. 이름도 참 얄궂게 지었다. 감자도 아니고 감자를 닮은 돼지감자면서 넝쿨로 자라는 것도 아니요. 모양새로 보면 코스모스처럼 키가 크고 늘씬하다. 감자를 캐보면 왜 돼지감자인지 웃음보가 터진다. 감자도 아니고 생강 짝퉁 모양으로 울퉁불퉁 못생겼다. 그나저나 요즘 당뇨환자에게도 인기가 있고 다이어트하는 예쁜 아줌마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공복감을 줄여주고 칼로리가 낮아서 다이어트에 좋다고 소문이 나서 장아찌로 담아서 반찬으로도 먹고 차로 덖어서 구수한 차로 마시기도 한다. 생긴 것과 다르게 쓸모가 여간 아니다.

어르신들이 백로 전에 열매를 맺어야 추위 전에 알곡이 익는다했는데 지금 막 달리는 호박은 어쩌란 말인가? 여름 내내 뒤적거려도 없던 애호박은 이제야 넘쳐난다. 제대로 된 늙은 호박은 안돼서 새우젓 넣고 달달 볶아서 먹고 남는 건 썰어 말린다. 애호박 하나를 말려도 할머니들은 다르다. 채반위에 모자라면 널빤지에 달력을 깔고 줄 세워 조르륵 널어놓는다. 가을햇살에 쫀득쫀득 말라갈 때 한 번씩 뒤집어주러 나오는데 허리가 기역자로 굽으셨다. 뽀얗게 말라가는 호박고쟁이는 할머니 마음처럼 하얗고 할머니 손등처럼 조글조글해졌다.

지난 주말에는 들깨, 참깨, 묵은 양념 다 꺼내서 씻어 말렸다. 페트병에 넣었더니 보관은 완벽하다. 어쩜 벌레가 근처에도 못 오고 탱글탱글 작년 가을 그대로다. 들깨는 물에 씻어 고운 채로 걸러 그대로 말렸다. 생 들깨를 갈아서 샐러드 소스로 넣어 먹고 밥 할 때마다 한줌씩 넣어먹어도 좋단다. 참깨는 깨끗하게 씻어 말려서 노릇하게 볶았다. 반은 통깨를 고명으로 쓸려고 밀폐용기에 넣어두고 반절은 깨소금으로 살짝 빻아서 양념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이제는 양념통도 항아리가 좋아졌고 묵직한 항아리뚜껑이 가끔씩 밥상위로 올라온다. 계란찜 하나도 정성들여 실고추까지 솔솔 얹어서 모양과 맛을 내셨던 친정어머니를 자꾸만 따라한다.

세상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건 우리 몸이 기억하고 있는 맛이고 생활습관이다. 어머니 손때 묻은 항아리가 좋고 싸리나무 채반이 정겹고 대소쿠리가 좋아 진다. 다음 장날에는 방물장수한테 집에 있는 다듬잇돌에 맞는 방망이를 구해봐야겠다. 뽀얀 옥양목 이불깃에 풀 먹여서 꽁꽁 밟고 다듬이질하면 정말 산뜻한 이불호청이 되었던 가을이 생각난다. 빨래 줄에 잠자리 날고 하얀 이불호청이 널려있던 시골집 마당이 그리워지는 건 내가 나이가 들어서일까 자꾸만 디지털시대에 생활방식은 아날로그를 선택하고 있다. 아놔~옛날로 돌아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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