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량 늘었지만 소비 심리 꽁꽁 ‘바닥세’…작업 못하고 속수무책
상황 이런데도 정부 ‘수급안정단계’ 운운…농가·산지 유통인 분통

“작업을 하자니 인건비도 못 건지고, 그냥 놔두자니 밭에서 썩어가고 한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강원도 태백에서 고랭지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 이 모 씨에게 올 한해는 최악의 해로 각인되고 있다. 이 씨 뿐만이 아니다. 추석을 앞두고 출하에 집중해야 할 배추와 무 재배농가들이 사면초가에 빠져있다. 수확을 하자니 인건비도 안 나오고, 내버려 두자니 배추 밭에서 썩어가는 과정을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에 산지에선 소위 폐기하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는 물량도 늘어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시세는 바닥이다. 이 주 들어 개학과 추석 수요로 조금씩 반등하고 있지만 배추와 무 모두 여전히 지난해 시세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생산은 늘고, 소비는 극도로 위축돼 있는 요인이 무엇보다 크다는 게 유통인들의 분석이다.

지역의 한 배추·무 산지 유통인은 “배추의 경우 8월 초·중순에 비가 이어지면서 배추가 조기 숙성이 돼 공급량이 확 늘었는데 반해 소비심리는 살아나지 않아 시세가 바닥을 치고 있고 무 역시 제주 월동무부터 계속 이월돼 현재 저장 무만으로도 충분히 수요를 맞출 수 있는 상황”이라며 “배추나 무 모두 중품이하는 출하하면 오히려 손해이기 때문에 농가들이 수확을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전했다.

일부 농가와 산지유통인들은 정부가 배추와 무 수급상황에 대해 ‘안정단계유지’에 들어갔다는 것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산지유통인은 “최근 정부에서 배추 수급전망을 안정단계유지라고 발표했는데 어떻게 농민 입장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그런 발표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태풍 등의 기상 변동이 없을 경우 앞으로의 전망 역시 밝지 못하다는 것이 농가와 유통인들의 공통된 시선이다. 가을의 경우 배추 생육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요인이 거의 없고, 이른 추석으로 인해 수요 위축은 예년보다 빠르지만 생산량은 추석 이후에도 꾸준히 나올 것으로 예고되고 있기 때문. 이에 김장시즌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오현석 가락시장 대아청과 경매사는 “과일이나 다른 농산물과 달리 배추나 무는 김치를 담는 특성상 추석 전주부터는 수요가 확 줄어들어 사실상 추석 대목은 이번 주와 다음주 2주 밖에 안 되는데 소비가 너무 안 따라와 주다보니 시세가 낮게 형성돼 있다”며 “선선해지는 가을엔 생육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가 적고 현재 상황에서 준고랭지 2기작 생육상황도 양호해 추석 이후 물량도 충분이 나올 것으로 보여 김장시즌까지 영향을 줄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김경욱 기자 kimkw@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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