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 급급해 ‘가치 추락’…인증제도 개혁 필요

결과 중심→과정·참여형 인증제도 전환, 가치 알리는 체계적 교육 시급
2016년 ‘저농약 인증제’ 폐지…농가 무농약·유기단계 유인책 마련해야


친환경농업계의 현재의 상황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위기’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업계 스스로가 지금의 상황을 두고 “주저앉느냐, 다시 일어서느냐의 시기”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친환경농업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치가 않다. 그러나 손을 놓고 있기 보다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고 부족했던 점은 반성하는 동시에 개선이 필요한 점은 적극 바꾸려는 노력이 불가피해 보인다.

▲시장 축소 우려에 대한 대안은=친환경농업계가 현재 가장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2016년부터 저농약 인증 폐지에 따른 시장 축소다. 저농약 인증 농산물의 출하량은 지난해 37만1100톤에 달하며 비중으로는 전체 친환경농산물 출하량의 31.4%에 이른다. 이 가운데 과실류는 전체 저농약 출하물량의 무려 78.9%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 저농약 인증 농가들의 무농약이나 유기 단계로 유인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당장 이들을 저농약 이상의 단계로 유인하기 위한 마땅한 메리트, 다시 말해 유인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가 무농약이나 유기로의 전환이 힘든 농가들은 GAP로 전환을 유도하고 있지만 GAP는 사실상 친환경농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친환경농업계의 반론이다. GAP 관리에서는 작물보호제 지침서의 기준에 따라 농약이 사용 가능하다. 이러한 GAP 농산물을 정부는 우수관리인증제도로 소비자들에게 알리고 있는데 이는 친환경농산물과의 혼돈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결국 친환경농업계는 GAP 제도는 친환경농업을 위한 기초 토대로의 한 규범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당하지 이를 정부가 인증하고 장려할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 친환경농업단체의 관계자는 “GAP가 저농약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닐뿐더러 정부가 나서서 인증을 해 주는 체계는 더욱 아니다”며 “단지 적정 생산관리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가 소비자 혼란을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저농약 인증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과수 농가들의 경우 유기 및 친환경으로 전환하려고 해도 아직까지 국내 기술이나 매뉴얼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과수농가의 경우 저농약 유지가 42%를 차지했고 GAP 전환이 32%로 나타났으며 무농약과 유기 전환은 각각 14%, 3%로 낮았다.

이에 따라 과수 농가들이 무농약이나 유기로 전환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과수 재배는 1년에 1번만 수확하는 특성상 기술개발이나 보급에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이에 농촌진흥청이 유기과수협의회를 구성해 선도농가의 유기과수 재배기술 사례와 생산매뉴얼 개발 보급에 나설 계획으로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이와 함께 정부도 친환경농업 육성 정책을 양적 성장에서 내실을 다지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단순히 생산량을 극대화하는 방향의 지원에서 지속적으로 친환경농업에 종사하면서 자연환경 및 생태계의 변화를 동반할 수 있는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현재 친환경농업직불제를 유기재배의 경우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지속직불금을 확대하는 동시에 품목별 재배 난이도와 생산비 차이 등을 감안해 품목별 차별화 된 직불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학균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직불금 수령이 끝난 후 관행농업으로 회귀하는 현상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친환경농업의 발전은 요원할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단가도 인상하고 지속직불금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정부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에 농가는 물론 친환경농업계 스스로가 내재된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농가들 스스로가 단순히 생산성에만 치중하다 보니 이른바 친환경농업도 ‘관행화’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정부의 직불금 등 보조금에만 기대고 자재의 효율성만을 따져 양적팽창에만 급급하면서 친환경농업이 갖는 가치가 점차 쇠퇴하는 현상이 급속화되는 과정에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최승교 강원대학교 교수는 “농가들이 생산성에만 급급하다 보니 비싼 자재를 사용하고 그 결과 생산비가 높아져 판매가격도 상승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며 “결국 소비자가 구매하고 싶어도 높은 가격이라는 벽에 부딪혀 구매를 망설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인증이 친환경농업의 최종 목표가 되면서 각종 비용의 상승을 유발하고 있는 점을 볼 때 향후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참여형 보증 시스템, 이른바 참여형태의 인증제도 도입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유럽이나 일본 등의 국가에서 여러 형태로 일어나고 있다. 이 제도는 인증에 소요되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참여해 스스로 관리하고 점검하는 형태이다.

또한 농가들이 친환경농업의 가치와 함께 자신들의 노하우를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농가 교육을 강화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에게도 친환경농업을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이 동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동근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현재 결과 중심, 실험실 중심의 인증체계를 과정 중심의 인증체계로 개편을 고민해 봐야 한다”며 “농촌현실을 고려해 농민들이 편하게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인증에 필요한 과정도 간소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완형 한살림 전무이사는 “지금부터라도 친환경농업 진영이 진지한 토론과 고민을 해 봐야 하는 시기”라며 “생산자도 조직화하고 농가들 스스로가 자주적인 관리도 가능할 수 있도록 이제라도 시작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영민 기자 kimym@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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