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며칠째 긴 가뭄 속에 게릴라성 소나기가 퍼붓고 지나간다. 여름 소나기는 소등을 가른다는 말처럼 우리 동네는 앞이 안보이도록 퍼붓고 지나가는 소나기를, 비는 본적도 없다고 하소연하는 옆 동네 언니는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말한다. 밭에서는 옥수수가 빌빌 돌아가고 있으니 농부의 마음도 그렇게 타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

고구마 밭에 풀 베고 부직포 깔던 아들이 생쥐 꼴이 되어서 튀어 들어왔다. “앗따 뭔노무 비가 맞으면 아퍼?”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고 하던 일을 마치고 들어오던 아들의 호들갑이 이쁘게만 보인다. 아버지는 예초기로 고구마보다 더 큰 풀을 베면 아들은 고랑에 부직포를 까는 작업을 둘이서 말없이 하고 있었다. 참 보기 좋다. 방학이라 아르바이트 하러간다던 아들이 마음을 내서 아버지 농사 급한 불을 꺼주고 가겠다고 일주일 눌러 앉았다.

지난주에는 작은놈이 와서 일주일 아버지 일을 돕고 갔다. 감자 다 캐고 그 많은 박스를 들어 나르고 모처럼 형제가 와서 아버지 일손을 돕는데 밥해주는 엄마가 더 신났다. 하루 세벌씩 벗어던지는 작업복빨래도 즐겁고 동네 아저씨들의 부러운 눈빛에 우리 집 양반 어깨가 들썩 신이 났다.

아이들 청주로 아르바이트가면 이번 주부터 우리 집 예약된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해마다 여름이면 오는 손님들이고 가끔씩 반가운 친구가 멤버 체인지 해주면 주인장도 신이 난다. 여름이불 햇빛에 널어 바삭하게 거풍하고 베갯잇 새로 갈아 끼워놓고 황토방에 걸어놓은 그림도 자리를 바꿔 걸어보고 커튼도 새로 마련해서 걸었다. 숯 염색 해놓은 커튼에 다홍색실로 듬성듬성 스티치로 멋을 내본다. 거기다 심심하지 않게 하얀 무명에 들꽃을 수놓아서 불규칙하게 몇 장 붙였더니 훨씬 폼 난다. 검은 대지위에 피어난 들꽃을 표현했는데 묵어가는 손님이 잘 느껴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내가 즐거우면 그만 아닌가?

여름날 대청마루에서 옥양목 풀 매겨 꽁꽁 밟아서 이불호청 손질하시던 내 어머니를 기억하며 빨래를 한다. 집안 어른들이며 사촌오빠들이 홀로 애들 키우며 사는 작은엄마를 위문방문차 우리 집은 맨날 북적거렸다. 농사일로 바쁘신 중에도 빳빳하게 손질해 입은 어머니 하얀 옥양목 앞치마는 참으로 예뻤다. 요즘 들판에 무수히 피어있는 개망초 꽃처럼 화사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로 기억한다. 깨꽃 필 때는 친정엄마도 반갑지 않다는데 여름손님 구찮은 것보다 하룻밤 묵어갈 손님맞이를 하는 나를 보면서 점점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는 나를 보며 혼자 웃는다. 여름밤이면 감자수제비해서 이웃들 부르고 솥뚜껑만한 칼국수 밀어서 애호박 썰어 넣은 칼국수를 양은솥이 폴폴 넘치도록 끓여대던 어머니가 그리운 건 나도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된 것일까? 우리식구 끼리만 저녁 좀 먹어보자고 우겼던 내 어린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마을 입구에 깨꽃이 하얗게 피었다. 연보랏빛 깨꽃을 보면 늘 어머니생각으로 아련해진다. 찾아올 친정엄마가 안 계셔서 아쉽지만 깨꽃 옆으로 피어난 노랑빨강 홍화꽃도 예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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