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주 목요일 밤마다 군민회관에 모여 장구도 치고 민요도 부르던 농부의 아내들이 모여 마당극을 무대에 올렸다. 일주일에 한번 잠시 일복을 벗어던지고, 한 박자 쉬어서 가자.

지금쯤이면 호박넝쿨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엄자리 위로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어야할 시기이지만 올해는 다르다. 봄부터 계속된 가뭄이 모든 생물의 성장을 멈추었다. 아니 좀 천천히 가라는 경고의 메시지처럼 한 번도 단비를 내려주시지 않았다.

야속하다싶을 정도로 타는 가뭄 속에 있지만 누구하나 기후제를 지낼 마음도 내지 못했다. 전 국민이 깊은 슬픔에 빠져있는 동안 농작물도 모두 가뭄을 견디어내느라 꽃도 못 피우고 잎은 진도 앞바다의 노란리본처럼 노랗게 시들어가고 있다.

단오가 지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됐다. 지금보다 훨씬 삶이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의 선조들은 단오에 좋은사람들에게 부채를 선물했다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있다. 곧 찾아올 더위를 생각해 예쁜 한지를 바르고 거기에 그림도 그리고 좋은 글귀도 담아서 선물한 부채는 받는 이로 하여금 얼마나 기분 좋은 선물이었을까 생각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내가 어릴 적에는 종이부채보다는 비료부대로 만든 재활용 부채가 집집마다 몇 개씩 있었다. 좀처럼 소비와는 멀었고 되도록 주변에서 남는 것들로 솜씨를 부려 옆집에도 몇 개씩 나누어 주는 훈훈한 여름밤의 추억이 새록새록 그리운 계절이다.

며칠 전 이곳 괴산에 살고 있는 농부의 아내들이 모여 마당극을 무대에 올렸다. 매주 목요일 밤마다 군민회관에서 모여 장구도 치고 민요도 부르던 여염집 아낙내들이 단오행사에 공연을 하려고 생전처음 마당극에 도전했다. 제목은 ‘머리에 입 달린 괴물이야기’다.

시골에 살고 있는 농부의 아들이 나이가 꽉 차도록 장가를 못갔다. 고민에 빠진 부모님이 생각에 생각을 한 끝에 밥을 아주 쬐끔만 먹는 며느리를 보면 가난한 형편에 도움이 될까하여 입이 작은 처자를 여기저기 선을 보다 아예 입이 없는 처자를 골라 아들과 결혼시킨다는 이야기다. 일도 잘하고 밥도 안 먹을 줄 알았던 처자는 입이 머리에 달린 괴물이라 쫓아내고 다시 입이 작은 처자를 찾았지만 결국 입이 함지박만한 처자와 결혼해 아들 딸 낳고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세월호 사건으로 슬픔에 동참하자는 의지로 단오행사는 접었지만 그동안 연습한 것이 아까워 동네 형님 축사 그늘에서 막을 올렸다. 모두다 처녀작이라 떨리고 가슴 설레었지만 분장을 하고 의상을 갖춰 입으니 연극배우 못지않은 실력과 우리 삶에서 녹아나는 따뜻하고 진솔한 이야기와 신명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신인 배우들의 무대가 더 값지게 다가왔다.

청중보다 배우가 더 많았던(?) 아쉬운 무대였지만 마당극을 무대에 올리고 마당에 자리 깔고 형님 아우님하며 따뜻한 점심을 나누어 먹었다. 잠시 일복을 벗어던지고 일주일에 한번은 노래 부르고 장구치고 연극하는 농부의 아내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잠시 한 박자 쉬어서 가자. 감자 싹이 다 시들었다고 울고만 있을게 아니라 조금 내려놓자. 어렵게 얻은 감자들이 소비자들에게는 더 감사하고 귀한 음식이 될 것이다. 어렵게 농사지은 농부들에게 위로의 편지한통 넣어주는 센스 있는 소비자들 한두 분 있으면 그것으로 행복하지 않을까? 장마 지나고 가을배추 잘 키워서 아이들 학비 주고 농사 빚 갚으면 되지 뭐 억지로 되는 일 있더냐?

유안나 씨는 2002년 귀농해 현재 충북 괴산에서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으며, 천연염색 천을 바느질 해 조각보로 만드는 것을 즐긴다. [시골에 사는 즐거움] 책의 저자이며, 2003~2006년까지 문화일보 ‘푸른광장’의 고정 필자로 활동했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