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주역을 공부하면서 위편삼절(韋編三絶, 책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짐)을 경험했다. 퇴계 이황은 20대에 주역을 공부하면서 밤낮을 잊고 공부하다 건강을 크게 해치는 경험을 하고는 조급하고 집요한 공부가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한다는 걸 알았다. 제자들을 가르칠 때 그 경험을 이야기하며 제자들에게 일상적인 삶과 이어지는 공부를 권하게 됐다.

주역과 관련해 동아시아 지식인들은 다양한 일화를 갖고 있다. 왜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주역에 이렇게 집중하고 마음을 쏟았을까?

주역은 상징을 통해 미세한 변화의 흐름을 이해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런 변화가 일어나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이 상징을 통해 드러나게 한다. 상징을 일어날 일로 보면 점이 되지만, 상징을 무의식이 드러난 것으로 이해하면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오랫동안 농민 운동을 하면서 이런 상징 연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알 수 없는 일들은 대부분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고, 그 상징을 잘 해석하면 그 일이 일어나는 깊은 의미를 알게 된다. 농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하루 이틀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어서 깊은 부분을 다가가지 못하면 해결이 쉽지 않았다.

이런 방식은 현대 심리학의 이론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현대 심리학도 인간의 꿈이나 무의식적인 행동의 의미를 읽어서 개인과 사회의 부조리를 풀어간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상징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나는 오래전부터 우리 시대의 상징은 고리 핵발전소라고 생각해 왔다. 고리 핵발전소는 사고를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전형적인 상징이다. 이미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은 300번이 넘는 경미한 고장이 일어났고, 신문에 보도될 정도의 사고만 해도 29번이 넘었다. 모든 전문가와 이론가들이 말하듯이 고리 핵발전소는 언제 재난 규모의 사고가 나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강하게 다가오는 상징은 4월 16일이다. 세월호 사고가 나던 4월 16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30년이 넘은 고리1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했다. 다른 날 그 결정을 해도 됐을 텐데 왜 4월 16일에 했을까? 이건  상징이다. 이 정도 상황에서도 상징을 읽을 수 없다면 우린 정말 미개하다는 말을 그냥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른다.

부산과 울산에 있는 친구들과 고리 핵발전소 문제를 오랫동안 토론했는데, 나는 늘 벽 앞에 서 있는 듯한 마음을 느껴야 했다. 생각이 주는 고통이 워낙 큰 주제여서 가능한 생각을 안 하려고 했다. 그런 부산과 울산 사람들이 4월 16일 세월호 사고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고리1호기 재가동 승인의 상징을 읽기 시작했다.

세월호는 고리 핵발전소의 상징이다. 아무도 우리를 구할 수 없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상징 앞에 우리는 서 있다. 전기, 에너지, 권력, 욕망 등 깊고 심층적인 주제와 이어지는 고리 핵발전소 상징은 우리 문명에 대한 시험이기도 하다. 지금은 상징 정도가 아니라 답이 다 주어진 상황이다. 이 답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만 남은 것 같다.

우리는 정말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다. / 김재형 선애학교 교장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