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를 받았다. 예기치 못한 급작스러운 소식이다. 다시 확인하고서야 형제들에게도 알리었다. 남편의 이종사촌 매제의 부고다.

장례식장을 찾아갔다. 이모님 내외분은 우려했던 대로 넋을 놓아버렸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빈소를 지키고 있는 이종사촌과 어린 상주들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남편만 분향소로 들여보냈다.

망인은 좋은 집안에다 명문대까지 나온 47세의 인재였다. 승승장구하며 대기업의 차장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던 부부였는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더니...”

말을 다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신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견디기 힘든 슬픔이며 말할 수 없는 고통일터. 그새 몰라보게 늙어버린 두 분이시다.

망인은 평소에 간이 안 좋기는 했어도 이런 사단이 날 정도로 심각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하였다. 그러니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생각할수록 말문이 막혀 온다.

문상객이 온종일 줄을 잇고 있다. 대부분이 정장 차림의 말쑥한 젊은이들로 직장동료와 상사들이다. 사람의 진정한 가치는 관 뚜껑을 닫고 나서야 올바르게 평가된다는 말도 있지만, 망인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참으로 열심히 산 모양이다.

사촌들의 안내로 식당에 들어서니 여기도 만원이다. 앉을 자리가 없어 위층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상 참 많이도 변해 버렸다. 장례식장 안에 커피숍이라니. 그동안 적조했던 외사촌들이 소식을 듣고 하나둘씩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각자의 삶에 충실하다 보니 경사 보다는 이 같은 애사 때라야만 볼 수 있으니 왠지 씁쓸하다.

다시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간신히 이모부님도 함께 하였다.

”밥심으로라도 버텨야 해요. 밥을 드셔야만 울 수도 있지요.”

여럿이서 식사를 권해보지만, 아무것도 드시지를 못한다. 죽음이 제아무리 슬퍼도 산 자들은 배가 고픔에 먹어야 한다. 그래야만 몸을 추수릴 수 있으므로. 죽음도 하나의 과정일진데.

미국서 한걸음에 달려온 망자의 형님이 아우를 부르며 목 놓아 울고 있다.

“여기 육개장 좀 더 주세요. 고기도 한 접시 더 주고요.”
 

두릉댁 이상분 씨는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여성농업인으로 현재 농어촌여성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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