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오면 물러날 줄 알았던 AI가 발생 두 달을 맞은 시점에도 그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한동안 진정 국면이던 AI는 3월 들어 간헐적 확산 양상을 띠고 있으며, 최근 경주에 이어 경기 과천에서 양성 반응이 나타나면서 사실상 강원도를 제외한 전국이 AI 사정권 내에 들어갔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정부의 방역 시스템도 허점을 노출하면서 2차 피해를 낳고 있는 가운데 피해액은 역대 최고치를 넘어섰다. 야생 철새가 완전히 북상하는 5월까지 두 달여 남은 상황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아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발생 두 달을 맞은 AI 상황을 정리해 본다.

AI 사태가 발생 두 달을 맞는 가운데 방역 당국의 방역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13일 충북지역 양계 농가 및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근 간헐적 발생 양상
사람·차량에 의한 전파 정황
내륙지역까지 확산 조짐
▲발생 현황 및 특징=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 2월 17일부터 3월 10일까지 AI 신고접수는 8건이다. 발생 초기 한 달간 신고 접수된 건수가 26건임을 감안할 때 3분의 1 수준으로 간헐적 발생 양상을 띠고 있다. 총 신고건수는 34건으로, 이 중 27건이 양성(H5N8형) 판정을 받았다. 야생철새 의뢰 검사 현황도 발생 한 달(1월 17일~2월 17일) 동안 271건이었으나, 2월 18일부터 최근 3월 11일까지는 101건으로 크게 줄었다.

선제적인 초동 조치가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방역 당국의 평가와 함께 야생철새의 북상이 이뤄지면서 AI 신고접수가 발생 초기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전국적인 확산을 막지는 못했다는 지적이다.

발생 초기와 다른 측면은 크게 두 가지로 지목된다. 발생 초기의 AI가 야생철새에 의한 수직 전파 가능성이 크게 점쳐진 반면 이후 발생 양상은 발병지의 바이러스가 사람이나 차량에 묻어 다른 지역으로 퍼지는 수평 전파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월 말 충북 음성지역에서는 AI 수평전파가 이뤄진 정황이 있어 방역 당국이 해당 지역의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발병농가 반경 10㎞ 이내에 있는 역학농가의 가금류까지 살처분 대상을 확대하는 등의 조치를 내렸다. 최근 경북 경주에서 발생한 AI는 경기 평택 농장으로부터 이동된 가금류에서 양성 반응이 나타난 것으로, 수평 전파에 의한 확산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두 번째 특징은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AI는 발생 초기 전남과 충청권 일부, 경기 일부 등 야생철새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에서 집중적으로 출몰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충청 및 경북 일대, 수도권 등 내륙 지역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상 강원도를 제외하고 전 지역이 AI 사정권 내에 놓이게 된 셈이다.

12일 경기 과천 인근의 기러기 폐사체에서 AI 양성 반응이 나오면서 서울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로의 확산이 이뤄질 경우 소비 부진 등의 피해가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도도 AI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 또다시 전국이 AI 확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와 함께 AI가 발생한 충남 천안의 한 농장에서 기르던 개에게서 AI 항체가 최근 발견돼 보건당국이 역학 조사에 나섰다. AI가 조류에서 포유류인 개로 이종간 감염되는 것을 보여준 첫 사례로 추정되고 있다.

진정 국면 보이고 있지만
야생철새·수평전파 가능성
5월까지 장기화 우려도


▲언제까지 계속되나=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판단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AI가 다시 확산 양상을 띠면서 각 지역별 의심신고와 징후들이 간헐적이지만,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야생철새가 물러갈 것으로 예상되는 5월까지 AI가 지속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AI 발생 현황을 보면 이런 가능성은 충분하다. 2000년대 들어 처음으로 AI가 발생한 2003년에는 12월부터 이듬해 3월 20일까지 102일간 발생했고, 2006년에는 11월부터 2007년 3월 6일까지 104일간 발생했다. 2008년에는 4월 1일부터 발생해 5월 12일까지 42일간 발생했다. 2010년에도 12월 말경 발생해 다음해 5월 1일까지 이어졌으며, 139일이라는 역대 최장 기간 동안 지속됐다.

이번 AI 역시 장기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수의학계의 한 인사는 “야생철새의 개체수가 줄어들면서 AI 신고접수가 줄어들어 진정 국면 양상으로 가고 있다”며 “하지만 야생철새에 의한 전파 가능성이 여전히 상재해 있고, 수평 전파도 나타나고 있어 빠른 시일 내에 AI가 종식되기에는 변수가 많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살처분 규모 ‘역대 최대’
살처분 보상금 1160억 달해
종식 때까지 피해액 눈덩이


▲피해액 눈덩이, 역대 최대 ‘불명예’=이번까지 5번째로 발생한 이번 AI는 역대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 1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412개 농가의 가금류 1015만8000마리를 살처분 했고, 앞으로 21개 농가의 70만1000마리를 추가 살처분할 예정이다. 2008년 1500농가의 1020만4000마리 살처분 숫자를 넘어서 최고치를 경신했다.

재산 피해도 2008년의 3070억원을 넘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정부는 살처분 가금류에 대해 1마리당 평균 1만500원~1만1000원 가량을 보상할 계획인데, 추가 발병이 없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살처분 보상금으로만 1160억원 가량이 쓰이게 된다. 살처분 보상금으로 잡혀 있는 예산은 지방비 포함 700억원 정도다.

이번 AI의 경우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의 역대 최대 규모의 살처분이 이뤄졌는데, 이는 AI 확산을 막기 위해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확대한 측면에다 농가들의 사육 규모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방역 당국의 설명이다. 또한 생계안정자금과 소득안정자금 등이 지원되고, 이동통제 조치로 인해 출하가 지연된 가금류에 대한 비축이 이뤄지고 있어 이 금액까지 포함하면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양상이다.

오리 산지 물량확보 비상
닭 수급안정화 ‘최대 과제’
소비는 예년 수준 밑돌아


▲수급 상황은=살처분과 이동제한 조치 등이 두 달 동안 지속되면서 산지 수급 상황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리의 경우 전체 사육수수 1000만마리 중 4분의 1인 250만마리 이상이 살처분되면서 수급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닭의 경우 700만마리 이상이 살처분됐다. AI로 인해 살처분, 출하 지연, 입식 지연 등의 피해가 속출하면서 농가 수익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복 시점도 3달여 앞두고 있어 수급 안정화가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로선 계열업체들이 비축 물량을 늘리고 있는 상황으로, AI 발생 이전에 비해 비축 물량이 2.5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할인 행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소비 부진 등으로 판매 물량이 예년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AI 발생으로 인해 가금류 반입을 금지하고 있는 제주도는 공급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수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 3월 관광철을 맞아 중국 관광객들이 대거 제주도를 찾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가금류 물량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야생철새 전파 못 막고
방역의식 소홀 ‘피해 확산’
현 방역체계 재검토 여론


▲방역대책 허점 노출, 재검토 목소리=방역 당국의 방역 시스템도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발생 초기 당시 야생철새에 의한 수직 전파 가능성에 무게 중심을 두고 예방적 살처분 방침이 강력하게 추진됐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야생철새에 의한 전파를 완벽하게 막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기에 천안 성환에 위치한 축산과학원이 AI에 뚫리면서 정부 방역 대책이 뭇매를 맞고 있는 실정. 국내 최고 수준의 방역 대응 매뉴얼을 갖고 있는 축산과학원도 AI를 막지 못한 마당에 AI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농가에 대해 보상금을 차액 지급한다는 ‘살처분 보상제 삼진아웃제’가 명분이 없기 때문에 철회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또한 사태 장기화에 따라 방역 의식이 소홀해지면서 수평 전파가 나타나면서 피해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지자체 방역 담당관의 업무 태만 등이 이런 상황을 더욱 부추기는 등의 허점이 노출되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 경북 경주와 경기 안성의 산란계 농장이 경기 평택의 종계 농장에서 AI에 감염된 병아리를 분양받은 것으로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지자체 담당자의 업무 태만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 또한 충북 음성 일대에선 일부 농가가 AI 감염 의심 신고를 하지 않아 발병 농가 반경 3㎞ 이내에 있는 가금농가들이 AI에 감염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현 방역 체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수의학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강력한 선제 조치를 통해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강화하고, 스탠드스틸 등을 발동하면서 AI의 조기 종식을 위해 노력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발생 두 달여를 맞고 있다”며 “축산과학원에서도 AI가 발생한 만큼 AI에 대한 정부의 방역 체계 및 매뉴얼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충북 지역의 양계 농가 등은 지난 13일 충북도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I와 관련해 방역, 살처분, 보상금 지급 등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방역 당국에 근본적인 개선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정부와 지자체는 지난 1월부터 엄청난 예산을 들여 살처분을 하고 있지만 AI는 오히려 확산되는 실정”이라며 “예방적 살처분의 범위를 현지 조건에 맞게 결정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축산 농가의 계열화와 ‘공장식 밀집사육’으로 인해 AI를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고 지적하면서, 축산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지자체의 입식제한명령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축전염예방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상금 중복 지급 불가
지원요건별 사각지대 허점
보상기준 현실화 목소리


▲보상 지원은 어떻게?=정부는 2월과 3월 ‘AI 발생지역 농가 등 지원지침’을 정하고, 살처분 및 이동제한 조치로 인한 추가사육비, 폐사율 증가, 출하 지연, 입식 지연 등 농가 손실을 보전해 주는 방안을 마련했다. 매몰가축 농가의 재생산을 위한 가축입식자금도 지원되며, 업체의 경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경영안정자금도 마련됐다. 토종닭 비축 유도 자금도 지원됐다.

살처분 농가의 경우 일부 지자체에서 보상금이 선지급되면서 이전보다는 신속한 보상 지원에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노력을 기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논란도 있다. 정부의 농가 피해 지원 대책이 실제로는 중복 지원이 불가하고, 지원 요건 등에 따라 농가들이 받을 수 있는 지원 금액이 줄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생계안정자금의 경우 육계 농가들은 살처분 4만수 이상 농가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전에 비해 사육규모가 늘어난 만큼 이 기준 역시 현실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 농가들의 목소리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육계의 경우 종계와 산란계와 달리 잔존가치가 없어 살처분 보상금 밖에 없는데, 시세가 떨어지면 보상금 역시 줄기 때문에 생계안정자금이 필요하다”며 “현재 4만수 이상은 제외되는데, 현실적으로 5만수 이상으로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성진kosj@agri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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