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다 큰 두 아들이 아빠와 함께 장작패기에 나섰다. 세 부자가 함께 하는 모습을 보니 시골에 처음 와 고생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지난 주말은 마음이 더 바빴다. 큰아들은 군대 제대하고 복학해서 3학년이고 작은 아들은 이번에 신입생이 됐다. 아이들 언제 크나, 농사지어 공부나 시킬 수 있을까 걱정했더니 벌써 훌쩍 떠나갔다.

2002년 남편이 무작정 사표를 던지고 귀농할 때 큰아이가 5학년 작은아이가 1학년 꼬맹이였다. 아득하던 시간이 꿈처럼 지나가 버렸다. 아이들 잘 키워보겠다고 내려온 시골살이가 쉽지만은 않아서 밤늦게 밭에서 돌아오면 아이들은 허기가 져서 여기저기 누워 잠이 들어있었다. 울고불고 이러려고 내려왔느냐고 많이도 울었다. 밭에는 멀어서 걸어올 수도 없었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고생이었다. 엄마 아빠가 돌아올 때까지 저희 둘이서 시간을 보내다가 지쳐있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미어져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차츰 가까운 곳에 밭도 얻었고 아이들은 언제든지 밭으로 뛰어와서 일손을 돕기도 하고 심부름도 하며 밥도 해놓고 우리를 기다렸다.

그 사이 아이들은 쑥쑥 자랐고 벌써 우리 곁을 떠나갔다. 떠나기 전날 형제가 1000평 옥수수 밭의 비닐을 싹 걷어주고 갔다. 얼마나 뿌듯하던지 눈물 나게 고맙다. 아빠 혼자서 걷어내려면 꼬박 이틀은 걸려야 할 일을 둘이서 뚝딱 해치우고는 맛난 점심을 먹었다. 특별히 삼겹살 사다가 소주도 한잔 나누면서 떠나는 두 아들에게 당부의 말을 건넨다. 돈 벌려고 애쓰지 말고 많은 경험을 할 것. 돈은 인생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그동안 하고 싶었던 사진도 마음껏 찍고 그림도 공부하고 전공하고는 좀 다른 삶을 살아보라고 귀띔해 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세 남자가 마당에 나가 장작패기를 시합한다. 날씨도 아이들 마음처럼 따뜻하다. 도시로 나가는 아이들이 지금이 아니면 언제 장작을 패 볼 수 있겠는가? 아빠가 먼저 방법을 가르쳐주니 아이들은 서로 잘 해보려고 경쟁하느라 마당이 떠들썩하다. 그림 참 좋다. 부엌 창 너머로 바라보다가 뛰어나가서 사진을 찍었다. 참 좋은 그림이다.

큰아이는 전북대 기숙사로 작은아이는 충북대 앞 원룸으로 이사를 나갔다. 겨울 내내 한방에 부대끼고 살아서 그런지 시원섭섭하다. 온돌방에 뜨시게 불 지피고 아이들과 마지막겨울을 났다. 익숙해진 큰아이는 택배로 보내줄 물건들을 싸놓고 간단히 가방만 싸들고 떠나갔고 작은아이는 이사를 한샘이다. 침대랑 살림살이를 챙겨서 실어다주고 왔다. 홀로 남겨두고 갈 아이가 신경이 쓰여 김치찌개 시원하게 끓여서 함께 점심을 먹고 왔다. 녀석이 옆에 와서 지켜본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밥도 해야 하고 찌개도 끓여야 한다. 혼자서 살게 된 방이 좋은가보다. 걸레를 들고 여기저기 닦고 다닌다. 3년 동안 기숙사에 잡혀 사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맘껏 자유를 누려라.

쿨한 엄마니까 다시 전화하고 당부하고 안했다. 처음 혼자서 사는 생활, 잠은 잘 잤는지 가스는 잘 잠그고 갔는지 밥은 잘 먹고 갔는지 열쇠는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한도 끝도 없지만 나는 쿨한 엄마다. 분명 잘했을 것이다. 아침에 전화했다. 어제 녀석이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엄마 약간 울렁거리는 거 같아.”

그렇게 한발 한발 우리 곁을 떠나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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