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살처분 피해 농가들은 계열업체와 계약된 위탁 사육농가들이 많더라구요. 이 농가들은 그나마 살처분 피해 보상이라도 받습니다. 하지만 개인 양계업자나 토종닭 농가들은 출하 지연과 판로 급감 등 2차 피해로 인해 말 그대로 말라 죽고 있습니다. 사각지대에 놓인 농가들에 대한 피해 보상은 누가 해줘야 하는 것입니까.”

지난달 16일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AI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가운데 닭·오리 살처분 처리 작업을 진행하던 충북 진천의 한 공무원이 뇌출혈로 쓰러진 지난 12일 오후였다. 자신을 충주에서 오골계를 키우는 개인 농가라고 밝힌 이 농가는 수화기에 갖다 댄 기자의 귀가 따갑도록 언성을 높였다.

“아니, 몇 번째 발생하는 AI 인데 방역 매뉴얼만 설명하고 역학조사위원회 회의만 하면 다인가요? 정부는 계열농가와 비계열농가에 대한 지원 방침도 명확하게 정해 놓은 것이 없습니다. 방역 대응은 점점 체계화된다고 하는데, 보상 대책은 10년 전 그대롭니다.”

‘오죽하면 이럴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이번 AI 사태 속에서 정부의 보상 대책이 살처분 피해 농가에만 쏠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번 AI 사태의 피해자는 비단 살처분 피해 농가만은 아니다. AI 발생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농가들도 소비 감소와 판로 축소에 따른 2차 피해 속에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 최근 전북 김제의 토종닭 농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이 일어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실망을 자아낸다. 토종닭 비축 유도를 위한 자금을 업체에 지원한다며 생색을 내는 것이 전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개격투’로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고 있는 농가들의 아우성은 정부 당국자의 안중에는 없는 듯하다. “농민의 목숨 값이 이것 밖에 안 되냐”는 안타까운 목소리가 사무치다 못해 이유 모를 깊은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기자의 개인적인 생각인 것일까 되묻게 된다.

AI 재발 방지와 신속한 초동 대응을 위한 방역 매뉴얼 구축을 위해 국가 차원의 노력이 집중되고 있지만, 피해 농가와는 별도로 2차 피해로 고통 받고 있는 농가들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다. “차라리 살처분 피해 농가가 부러울 따름”이라는 한 농가의 얘기는 정부의 AI 피해 보상 방침이 전반적인 상황이 아닌 부분적인 피해 보상에만 머물고 있다는 측면에서 경종을 울리고 있다. AI 사태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는 농가에 대한 정부의 보상 대책 매뉴얼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또 다른 비극을 낳기 전에 말이다.

고성진 기자 kosj@agrinet.co.kr

저작권자 © 한국농어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