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본주의 대체할 ‘상생인본주의’

지금 살고 있는 죽곡에 온지 만 10년이 넘었다. 나는 10년 전에 10년 후의 내 모습에 대해 어느 정도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자급하는 농부이고 마을에서 아이들과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마을 교사이고 마을에서 함께 하는 삶을 잘 기록해서 책으로 엮어내는 저자였다.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자리 잡길 바랐는데, 어느 순간 교사 역할이 내가 가진 시간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큰 규모로 다가왔다. 생태 공동체 마을인 선애마을에서 만든 대안학교인 선애학교의 교장 역할이 맡겨졌는데, 3년 정도 선애학교 교사 역할을 더 많이 하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농사, 공부, 죽곡농민도서관장을 중심에 둔 사회적 역할,이 세 가지 시간을 잘 나눠 쓰고 있던 삶에서 농사를 빼고 그 자리에 선애학교 교장을 넣었다. 농사는 텃밭 정도만 간신히 관리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문제는 선애학교 교장 역할이 죽곡농민도서관장의 역할까지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까지 왔다. 무엇보다 나는 그동안 꿈꾸고 있었던 농부와 교사, 작가 세 가지가 조화로운 삶을 이미 이뤘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건 그냥 그 동안 얻은 지위를 즐기는 것에 불과했다.

20년 전 1993년 UR 협상이 타결되고 쌀 수입 개방이 10년 유예된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10년 후에 새로워질 농촌을 그렸다. 이 기획은 누가 봐도 실패가 예상됐다. 그러나 지금 10년 후 새로운 농촌을 그리면 될 가능성이 높다. 1993년의 농촌과 한국 사회는 새로운 사회를 기획하기에는 기술력과 의식 수준, 사회 상황에서 한계가 있었다. 지금부터 10년은 1993년과는 차원이 다르다. 1993년의 기획은 국가가 주도했지만 앞으로 10년 안에 국가는 소멸되거나 보완적 역할 정도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결정적인 부분인 것 같다. 자기 손안에 컴퓨터가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뇌 하나를 더 갖고 있는 정도의 혁신이다. 생각을 현실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극히 짧아졌다. ‘안녕들 하십니까’의 확산은 일주일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SNS에서는 도시와 농촌 사이에서 벌어지는 공간이 갖는 차이도 거의 없다.

나는 농촌에 있으면서도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 어디에 있는 사람과도 그룹 대화가 가능하다. 실제로 선애학교의 회의는 국내에서는 보은, 고흥, 영암 세 곳과 중국, 일본, 제주도 등지에 있는 사람과 동시에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다. 회의 공간에서 제약을 받지 않았기에 나는 밭에서 일하다 잠시 쉬면서 회의를 하기도 했다. 이 정도 속도와 공간 통합 능력이 있어야 새로운 농촌을 국가 개입 없이 기획할 수 있는데 1993년에 이런 건 생각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경쟁 의식을 넘어서고 있다. 경쟁력을 갖춘 사람보다 팀 조화 능력인 ‘상생력’을 가진 사람들의 성과가 탁월해 지고 있다. 주목받는 기업이나 개인은 대부분 상생력을 갖고 있고, 상생력을 조직화하는 체제인 ‘협동조합’은 오래지 않아 ‘주식회사’를 대체할 것이다. 왜냐면 상생력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에서 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20년 전 UR을 넘어설 새로운 농촌 사회 기획은 실패했지만, 앞으로 10년간 경쟁자본주의를 대체할 상생인본주의 기획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10년 후 나는 생태 공동체 마을에서 글 쓰고 가르치고 농사지으며 살 것 같다. 똑 같아 보이지만 같지 않다.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농촌이다. /김재형 선애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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