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배추 값이 싸 장사꾼들도 오지 않는다. 정성들여 키워낸 배추를 들판에 두는 농부의 겨울은 더욱 춥고 시리다.

괴산 장에 가서 털신하나 사고 털 장화를 세 켤레 샀다. 털신은 해마다 사게 되는데 털신이 낡아 떨어져서가 아니라 보온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겨우내 신고 봄판에 일할 때 신고 여름에나 털신을 벗기 때문에 원가를 따져도 곱절은 더 신는다. 오죽하면 신발가게 이름이 만년신발일까?

고무신 신던 시절부터 있었을 괴산장의 만년신발 가게는 없는 게 없다. 할머니들의 꼬까신·털신부터 꽃무늬 장화, 아이들의 보숭보숭 털실내화까지. 너무 재미나서 신발가게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한참을 구경하는 날도 있다.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털신을 사서 자랑했더니 할머니라고 약 올리는 사람도 있고 명품이라고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사람도 있다. 털신은 그냥 신발이 아니다. 우리 할머니들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털신은 정겨움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겨울의 추억이다. 올해는 털 장화를 세 켤레 사가지고 오는데 괜히 우쭐하다. 큰아들은 제대해서 복학을 앞두고 있으니 아버지 일을 돕겠다하고 작은아이는 고3이라 시험 끝났으니 절임배추 작업을 돕는다고 나섰다. 든든한 지원군 두 녀석의 신발을 사들고 돌아오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조막만하던 발이 어느새 커서 함께 일할 아버지 신발보다 아이들 신발이 훨씬 크다.

괴산은 절임배추를 하느라 하우스마다 불이 하얗게 밝혀져 있다. 밤늦도록 작업이 이어지니 그 추위와 싸우는 어르신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올해처럼 배추 값이 싸면 장사꾼들도 오지 않는다. 어떤 밭 배추는 꿈쩍도 안하고 추위와 싸우고 있다.

추위와 싸우고 견디는 배추보다 안방에 앉아있는 농부는 더 춥고 시리다. 여름부터 모종 길러서 온갖 벌레들과 고라니, 장맛비를 피해 겨우 키워놓은 배추를 그냥 저 추운 들판에 두려니 오금이 저려오는 일이다. 그나마 절임배추를 주문하는 도시소비자가 있는 농부들은 다행이다. 70세나 되신 노부부는 밤늦도록 배추를 절이고 뒤집느라 칠흑 같은 밤에도 하우스에서 덜그럭거리고 일을 하신다. 밤공기가 너무 추워 배추를 싸는 비닐을 한 장 옷으로 만들어 입으셨다. 누가 도와드리고 봉사할 여력이 없다. 집집마다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배추로 파는 것보다 세배는 수익이 높으니 허리가 끊어져도 그 무게를 감당하고 20키로 박스를 버쩍버쩍 들어낸다. 그리고는 하얀 눈이 펑펑 내리는 위험한 길을 병원에 다니시느라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은 농촌의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다. 농부의 아내는 많은 일꾼들 간식 해주고 밥 해대느라 정신이 없다. 돌아서면 때가 되고 돌아서면 배고프다고 아우성이다. 몸을 쓰는 일이니 쉽게 배가 고파지는 건 당연지사인데 배추밭에 가서 배추를 따와야 하는 작업은 정말 춥다. 털 장화를 신고 양말을 겹쳐 신어도 발이 시리고 손이 떨어져 나갈듯 한 추위와 싸워야한다. 배추 맛을 좋게 하기위해 최대한 수확시기를 늦춰서 배추에 보온덮개를 덮어 준다. 하얀 보온덮개를 뒤집어쓰고 있는 배추를 볼 때마다 언제나 저 배추가 집으로 들어갈까 생각한다. 그래야 아랫목에 앉아서 겨울다운 겨울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군불 때서 아랫목 따뜻해지면 다 큰 아이들도 한 이불 속으로 모여든다. 고구마 구워먹고 가끔 편 갈라 민화투도 쳐서 치킨도 시켜먹고 아이들 독립해 나가기 전에 추억 만들기에 겨울은 너무 짧다. 가끔은 처마에 고드름 따서 형제가 장난감 칼처럼 휘두른다. 어릴 적 도시에서 봤던 만화영화를 흉내 내고 놀면 나도 그때처럼 젊은 엄마가 된다. 올겨울 온돌방에 모여서 살 비비고 정 나누며 따뜻하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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