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마당에서 감물 농부와 도시 소비자분들이 함께 하는 추수감사제를 치렀다.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서로의 얘기를 풀어놓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번 주 내내 닷새 동안 메주를 쒔다. 귀농한 형님네가 가마솥과 메주를 찧는 기계를 들여와서 함께 작업을 한다. 늘 친동생처럼 챙겨주시고 바쁜 일도 틈틈이 거들어 주시고 된장기술까지 전수해주시느라 안팎으로 고생이 말이 아니다. 우리는 얌체처럼 콩만 달랑 들고 가서 씻고 불려서 가마솥에 삶아 기계로 메주를 만든다.

한사람은 콩을 나르고 한사람은 작은 절구로 콩을 밀어 넣고 한사람은 길이에 맞게 자르고 무게를 달아 놓으면 마지막으로 메주를 예쁘게 만들어서 옮겨놓는다. 4인 1조로 쿵짝이 짝짝 맞는다. 콩을 씻고 조리질은 섬세한 여자들이 퍼 나르고 옮기는 일은 남자들이 하는 걸로 일이 분담됐다. 누가 그러자고 한 것도 아닌데 척척 알아서 자기 일을 찾는다. 더구나 형님네는 뒤안이 따뜻하고 물 사정도 좋아서 작업조건이 최상이다.

“어이 마누라, 당신처럼 이쁘게 만들어야 해.”

“이쁘다는거야· 메주같다는거야·

“우리 마누라 이뻐서 하는 소리지....”

그냥 넘어가는 걸로 한바탕 웃고 말았다. 올봄에 갑자기 괴산 귀농지원센터 상담일을 맡으면서 남편과 엄청 싸우고 긴 전쟁을 치뤘다. 같이 농사짓기로 해놓고 배신한 건 나였지만 주말을 마치 나흘처럼 열심히 일하며 내 임무를 책임지고 해냈다. 말이 쉽지 고단한 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한 시간도 여유가 없이 감자를 캤고 옥수수를 따고 고추를 땄다. 고춧가루 보내고 고구마를 보내고 나니 바로 메주 쑤는 일이 다가왔다. 밭에 콩은 아직 덜 여물었고 절임배추 하기 전에 메주를 쒀야 얼지 않고 잘 마르기 때문이다. 틈새를 잘 이용하는 게 농사의 고수들이 부르 짓는 1등 농사꾼이다.

할 일은 끝도 없이 많다. 메주를 창고 시렁에 달아 메고 말리는 사이에 알타리 김치를 해서 소비자의 식탁에 올려야 한다. 바쁜 소비자들을 위해 인심써서 해주는 김치라서 더욱 신경이 쓰인다. 모든 재료는 유기농으로 밭에서 길러서 맛난 젓갈과 효소를 넣어 만들어 보낸다. 작년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므로 올해도 자신 있다. 알타리 김치만은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한 가지씩 소비자의 식탁을 유기농으로 바꿔가는 일은 농부의 소명이라 생각한다.

국화향기 가득한 가을 끝자락에 느티나무 아래서 추수감사제를 했다. 그동안 우리가 농사 잘 짓고 소비자와 함께 어깨동무해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신 많은 지인들과 귀한 소비자들을 모시고 따뜻한 밥 한끼를 나눴다. 밭에서 배추 뽑아다 김치 담고 노란 배춧 속은 된장에 쌈으로 내고 고구마 삶고 감자 삶아서 풍성한 식탁을 차리려 노력했다. 농사일 바쁜 틈에 조각조각 만들어놓은 조각보도 전시를 해서 오는 사람들 눈도 즐겁게 하고, 밭에서 어린 아이들 커가는 사진들도 모두 꺼내놓는다. 농사일하면서 즐거웠던 일, 슬펐던 일, 소비자와 함께 나누었던 체험들, 꽃 속에서 행복했던 일 등등 모두 사진첩으로 만들었다.

12년의 고단하고 행복했던 역사를 보여주고 다시 힘내서 천천히 걸어가려한다. 무너질 때마다 힘내라고 다독여주신 많은 분들과 그렇게 다시 일어나 밭으로 나갈 수 있도록 따뜻한 문자와 전화 주신 소중한분들 모두 가슴 속에 기억 속에 담아 두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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