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력’이 우선인 사회를 꿈꾸며

10년 전 곡성에 살기 시작했을 때 우리 면소재지에는 면사무소와 농협, 우체국 정도만 인터넷 연결이 됐다. 지금은 인터넷을 손에 들고 다닌다. 10년의 변화는 이제 상상하는 사람들이 결정한다. 기술적인 변화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회 변화도 가능하다. 상생인본주의에 대한 시를 써본다.

상생 인본주의 - 과거를 회상하며
김재형

예전에 사람들은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펙이라는 걸 갖추지 못하면 일한 기회 조차도 없었다.
대학은 기본이고
대학원, 유학, 석사, 박사를 거치며
인생을 허비하거나
온갖 고시와 공무원이 되는 것이
젊은이들의 꿈이었다.
욕망과 주위의 시선을 따라
되돌아오지 못할 길을 끝끝내 간 청춘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일쑤였다.
이런 세상이 변할 거라는 걸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어느 날, 미국이 망했다.
달러를 기축 통화로 유지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는데도
미국은 전쟁의 욕망을 멈추질 못했다.
핵발전소가 전쟁의 중요한 타킷이 되자
위기를 느낀 세계의 지도자들은 전쟁을 멈추기 위해
전쟁을 위한 달러를 찍어내는 달러 기반 경제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돈의 기준이 없어졌다.
다시 금본위 화폐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신중하게 ‘땅’을 가치의 기준으로 제안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어렵고 어려운 토론과 합의를 거쳐 지구 규모의 땅을 기준으로 하는
화폐가 만들어졌다.
기준 지가를 넘어서는 땅의 가치 상승분은 전액 세금으로 환수되는
토지 공개념에 기초한 토지 기반 화폐와 토지 단일세 사회가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토지가 개발되어 세금으로 징수되는 걸 오히려 두려워했고,
가능한 자신들이 현재 살고 있는 상태를 잘 유지하고 보존 관리하고자 했다.

그런 상태가 되자.
경쟁력은 의미가 없어졌다.
‘상생력’이라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기 시작했다.
개발을 부추켜 정치적 능력을 가지던 사람들은 발붙일 곳이 없었다.

젊은 이들은 너도 나도 ‘상생력’을 키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회의를 잘 진행하는 능력,
몸과 마음을 돌보는 능력.
고기를 먹거나 마약에 의존하는 잘못된 습관을 고쳐주는 능력.
문화와 예술을 창조하는 능력.
글을 쓰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능력.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연대하는 능력을
스스로 키우고 확대해 가기 시작했다.

나누는 능력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핵심 능력으로 평가되어
나누는 능력이 없으면 지도자가 될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 임기를 마치면 가장 가난한 사람이 되기 일쑤였다.

화폐 가치의 기준이 땅이어서
땅에 발붙이고 사는 누구나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
토지단일세를 기반으로 한 기본 소득이 지급됐다.
사람들은 지나치게 일하지 않고도 꼭 필요한 것만 생산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모자라는 것은 서로 양보하고 참는 상생력이 생겨나
큰 갈등 없이 문제가 해결되곤 했다.

토지세 부담이 높은 도시보다는 시골에 사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도시에는 젊은 인재들이 창의적 활동을 일구기 시작했다.
지금은 2025년이다.

/김재형 죽곡농민열린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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