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철을 맞아 황금빛 들녘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소소한 먹을거리를 얻는 게 가을농사의 진정한 매력이리라.

오랜만에 호젓하게 맞는 주말이다. 남편은 동네 형님들과 여행을 떠나고 제대한 큰아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익산으로, 작은아이는 기숙사에 들어가 있다.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텃밭으로 나갔다. 한 달 전에 심은 알타리 무는 벌써 한 뼘도 더 자랐고 청갓은 손가락만 해졌다. 10월 말에는 김치를 해서 소비자회원들에게 보내야하므로 웃거름을 주었다. 알타리 무는 너무 크면 맛이 없고 너무 작으면 다듬느라 손이 모자란다. 적당한 크기라야 김치가 맛이 있고 일손도 덜 수 있으니 그 적당함이란 정말 어렵다.

고구마 줄기는 생육이 너무 좋아서 호박밭으로 토마토 밭으로 사정없이 영토 확장을 해나간다. 고구마 줄기도 좋은 반찬이다. 뽀얗게 볶아도 맛있지만 고등어 조릴 때 밑에 깔아서 조리면 쫄깃하니 고등어보다 더 맛있다. 호박고구마도 제법 실하다. 두포기를 뽑았더니 한 바구니가 나온다. 모래밭에 고구마 수확이 대박이다. 귀농한 첫 해에 고구마를 캐는데 세 남자가 동시에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뒤에서 보고 달려갔더니 두더지 가족들에게 습격을 당한 것이다. 아니, 세 남자가 두더지 가족들의 집을 예고도 없이 습격을 한 것일지도. 어쨌거나 새까맣고 눈만 반짝거리는 두더지들은 낮 밝은 세상에 노출됐으니 쫄아서 가만있고 난생처음 두더지를 본 세 남자도 쫄아 있었다. 해마다 고구마 캘 때면 나오는 두더지에 대한 일화는 세 남자의 무용담처럼 됐다.

며칠 전 청주를 나가는 길에 뒷좌석에 앉은 어르신들의 말씀이 너무 재미있다.

“어이 저것 좀 봐. 피하고 어우리 진 거.”

버스 뒷좌석에 앉은 노부부의 말씀이 또렷하게 들려온다. 우리 집 논이나 지금 차 창 너머로 보이는 논의 상황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해마다 우렁이에게 맡겨놓고는 논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이 벼는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올해는 1000평이나 더 늘어난 논에 풀을 잡기가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해마다 추석연휴에 풀씨를 베어내고 바로 타작을 했었는데 올해는 논에 가보지도 못하고 고추에 매달렸다. 곧 추수를 해야 할 텐데 풀씨를 둔 채로 수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한 이틀 시간을 내야 할 텐데 걱정이다. 버스 몇 정거장을 같이 가는 사이 동네논을 한 바퀴 다 돌았다. 누구네 논은 이렇고 또 누구네 논은 저렇고 풀이 많은 것도 거름이 너무 쌔서 벼가 쓰러진 것도 다 꿰고 계신다. 마을회관에 그냥 오고가시는 게 아니다. 어르신들의 눈으로 꼼꼼하게 점검을 하시고 걱정을 하고 계신다.

요사이 날씨가 변덕스럽다. 옆자리 어르신이 말씀하시기를 그것도 다 이유가 있단다.

“그래야 혀. 콩이 아직도 새파랗잖여.”

오늘 아침 날씨가 겨울처럼 추웠다고 엄살을 부리는 젊은이에게 한마디 하신다. 날씨도 마냥 따뜻하면 가을이 온 줄도 모르니 한 번씩 겁을 줘야 곡식이 익어간다는 얘기다. 어른들 말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가을농사는 뭐니 뭐니 해도 수확의 기쁨이다. 소쿠리 하나 들고 나서면 애호박이며 가지며 늦게 달린 토마토며 금방 소쿠리가 가득 찬다. 소소한 먹을거리를 얻는 즐거움이 가을농사의 매력이다. 어디 그뿐인가. 가을 들녘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하늘은 끝없이 높고 푸르고 하얀 뭉게구름은 선물처럼 솜사탕처럼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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