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50여년전 동양 삼국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혼돈과 변혁의 시대에 들어선다. 동양의 지존 중국은 서양 산업화의 막강한 힘 앞에 무너졌다. 당시 청나라는 영국이 20척의 증기함과 4000명의 군대로 중국에 선전포고한 것에 코웃음을 쳤지만 결과는 무참했다.봉건의 상징 청나라 80만 대군이 4000명의 영국군에게 유린당했다.

2009년부터 향도보다 향촌 많아

그 결과 중국 최초의 불평등 조약인 남경조약(1842)이 맺어졌다. 홍콩을 영국에게 이양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했으며 다섯 개 항구를 열었다. 아편전쟁은 슬픈 근대사의 서막일 뿐이다. 이후 서구는 1856년 애로호 사건을 빌미로 천진과 북경을 점령했으며, 천진조약(1858)과 북경조약(1860)을 맺어 본격적인 침략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러한 변화를 가까이에서 목격한 조선은 어땠는가. 붕당정치를 무너트리고 19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안동 김 씨, 풍양 조 씨의 세도정치는 아편전쟁의 교훈을 배울 수 없었고 부정부패는 계속됐다.

철종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흥선 대원군은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는 것만을 대안으로 봤다. 그는 가장 먼저 나라를 엉망으로 만든 세도 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서세동진(西勢東進)인 세계사의 흐름과 우리 식의 대안을 읽지 못했다.

흥선대원군은 프랑스·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판단했다. 두 전쟁을 끝낸 후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왔는데, 싸우지 않으면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화친해야 하며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넘기는 것’이라 적혀 있는 척화비(斥和碑)를 전국에 세웠다.

존왕양이(尊王洋夷) 정책은 전통적인 통치체제를 재정비해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외세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전통 체제 안의 개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조선의 개방은 실패했다. 그 결과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 문호를 개방했으며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에 의해 굴욕적인 식민지로 이어졌다.

반면 일본은 두 나라와 다른 길을 걸었다. 1854년 페리제독의 개항 이후 구미(歐美) 열강과 일본은 화친조약을 맺었다. 하급 무사에 의한 막부 타도 운동이 격화해 결국 260여년에 걸친 에도 막부 시대는 쓰러지고 메이지 유신을 맞게 됐다. 1868년 왕정복고를 표방한 메이지 천황은 혁신을 마련하고자 중앙집권제를 강화했다.

근대화를 위한 부국강병책으로 식산흥업정책(殖産興業政策)을 추진하고 국회·군대·경찰을 비롯, 전신·철도·각종 공장 등 국가인프라를 정비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구미열강과 어깨를 견주는 아시아 최강자로 자리 잡았다.

귀농·귀촌 기본계획 적극 수립을

150년이 지난 2013년, 새로운 변화가 대한민국에 나타나고 있다. 과거의 흐름이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국외 식민지를 확대하는 것이라 한다면, 최근의 동향은 내적 식민지로의 재편이다. 정보화와 산업화로 무장한 은퇴자들이 지식기반과 세계화를 무기로 농산어촌으로 귀농·귀촌하고 있다. 이미 2009년부터 도시로 향하는 향도인구보다 시골로 내려가는 향촌인구가 많아졌다.

귀농·귀촌인들이 늘어나자 농촌에 정주하는 이주민을 바라보는 지자체의 인식이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적극적으로 귀농·귀촌을 지원하고 주민들을 설득하며 공생을 유도하는 약 40여개의 지자체가 있다. 둘째, 말로만 환영하고 실질적으로 지원예산과 정책이 없는 약 30여개의 지자체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귀농·귀촌 자체를 반가워하지 않으며 개인의 이주 문제라고 판단하는 30여개의 지자체가 있다.

대한민국은 디지털 유목민의 세상이다. 디지털 마인드, 수출경제와 세계화, 고학력 전문지식, 지식기반 창조경제의 4대 정체성으로 무장한 유목민이 농산어촌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고 있다. 2010년부터는 매년 귀농·귀촌인구가 2배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5년경에는 5만~7만 가구, 약 10만~14만명이 귀농귀촌 할 전망이다.

이러한 추세라면 2022년이 되면 농산어촌에 살고 있는 원주민 인구보다 도시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비슷하거나 많아질 전망이다. 2022년 지방선거는 한국정치에 새로운 역사를 쓸 가능성이 높다. 지자체장과 기초의원, 광역의원이 원주민이 아닌 귀농·귀촌인이 당선되는 경우이다.

현재 일부 지역에서 원주민과 귀농·귀촌인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텃세와 지역지키기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와 베이비부머의 일자리창출, 마을공동체를 살리면서 자조적 복지를 만들고 국가부담을 줄이는 일이 핵심이다.

원주민-귀농귀촌인 더불어 공생

역사는 민중이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현명한 지자체장이라면 150년전 동양 3국의 교훈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일본은 왜 승자가 됐고 조선과 중국은 왜 식민지가 됐는지 기억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귀농·귀촌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원주민과 귀농·귀촌인이 더불어 공생하는 창조경제를 만들자는 말이다. 그 길만이 지자체가 누려온 역사와 전통, 지역의 가치를 살리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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