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거나 냉정한 사람을 일러 앉은 자리에 풀도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얼마나 독하거나 비정하면 그 자리에 풀도 자라지 않는다고 할까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풀도 그 사람의 쌀쌀맞고 지독함에 한 풀 꺾일 수밖에 없다는 뜻일까요. 많은 속담이 그렇듯 농사와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그 의미를 보다 정확히 읽어낼 수가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 농부들은 어디를 가나 항상 지게를 지고 다녔습니다. 지게에는 반드시 호미와 낫이 들어있습니다.

일을 끝내고 밭두둑에 쉴 때도 손이 가만히 놀고 있는 때가 없습니다. 앉으면 풀을 베고 있으니 주변에 풀이 남아나지 않는 겁니다. 빈 지게로 집으로 들어오는 농부는 없었습니다. 지게에는 어김없이 풀 더미가 가득하거나 나뭇가지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부지런을 넘어 독하다고 할 수 있으니 생겨난 속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때 태평농법이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농법도 있지 않느냐고 관심을 갖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농약도 비료도 필요 없는데다 땅을 갈지 않아도 되는 농사법이라고 소개되면서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이라는 책제목도 아주 감각적입니다.

말 그대로 아무 일없이 태평하게 농사지으면서 생태적이고 건강한 작물을 생산한다니까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에 비해 귀농해 이렇게 농사를 짓고 계신 분들은 제가 아는 한 아주 드뭅니다. 알려져 있는 사실과 달리 모든 환경에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상당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거나 말과는 달리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과정보다는 만들어진 결과에 사로잡히기 마련이지만 아무 노력도 없고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 그냥 되는 예는 없습니다.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라고 자연농법으로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자연농법의 아버지라 불리는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대표적인 저서로 자연농법의 이론과 방법을 논하고 있습니다. 4무(無)농법으로 무경운·무비료·무농약·무제초의 원칙으로 무위의 농사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발상이 핵심입니다. 너무나 많은 비료와 농약이 자연은 물론 인간의 생명력을 해치고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초보자가 간과하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먼저 이해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책 속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즐거운 농법’이라고 돼 있지만 앞에는 괄호를 친 ‘누구도 하지 않지만’이 생략돼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편하게 농사를 지으려고 하기에 기계를 쓰고 약을 치고 비료를 줍니다.

하지 않는 것은 불편한 농사입니다. 그걸 감수할 수 있어야 하므로 힘든 농사가 자연농사입니다. 물론 많은 노력과 시간이 지나가면 그제야 자연농법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즐거우면서 쉬운 농사라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기적의 사과’라고 들어보신 분이 있을 겁니다. 자연농법을 읽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법을 실천한 기무라 아끼노리 씨의 사과나무 얘기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누구도 하지 않는 도전의 대가는 혹독합니다. 9년 만에 사과가 겨우 3개 열리기까지 누렇게 말라가는 사과나무를 돌보며 가난과 싸우는 삶은 그를 자살의 문턱까지 끌고 가기도 했습니다. 상온에서도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가 되기까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까요. 제가 보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할 것을 뺀 모든 것을 했다고 봅니다.

예술자연농법이라고 불리는 이 농법은 흔히 무투입 농법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엄청나게 투입한 농법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투입했는지가 중요합니다.

기무라 씨 흙의 유기물함량은 13 %가 넘습니다. 우리나라 평균 유기물함량은 겨우 2% 밖에 되지가 않습니다. 5% 정도가 되면 아주 이상적인 유기물함량으로 봅니다. 10%가 넘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본 적이 없으니 상상만 해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것도 투입하지 않으면서 유기물 함량 13% 초과가 가능했을까요. 그건 기무라 씨가 독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앉은 자리에 풀도 나지 않을 정도로 부지런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무라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풀을 베거나 잎을 긁어모아 사과밭에 다시 돌려주거나 덮어줘 계속 흙을 살려내는 일 밖에는 없었습니다.

쇠한 흙을 미생물이 그물처럼 엮인 건강한 흙으로 다시 살려내려면 보통 7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것도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낫이 닳아빠질 때까지 손을 놀리지 않아야 가능합니다. 공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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