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홍 시인은 경남 합천군 황매산 기슭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시인은 어떻게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고 싶은 지 제게 물어왔습니다. 죽음을 항상 생각하지 않고서는 죽는 순간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니까 시인은 웃으며 자신의 답을 들려줬습니다.

“저는 호미를 쥔 채 밭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농사가 삶과 분리되지 않으면서 삶의 마무리도 농사와 함께 자연스레 보내고자 한다는 뜻일 겁니다. 농사가 얼마나 좋으면 죽는 그 순간에도 농사를 짓다 가고 싶을까요. 포천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김준권 농부님에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내 직업은 농부이고 취미는 농사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일과 삶이 나뉘지 않고 인생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삶의 깊이에서 울려 나오는 말씀에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따라 귀농을 결정하는데 있어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한다는 부담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 힘든 농사일을 보거나 겪은 분들은 더합니다. 고되기만 하지 별 소득도 되지 않는데 이 지긋지긋한 일을 왜 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애써 정을 붙이려고 해도 농사일이 몸에 잘 붙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억지로 농사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남편의 귀농결정에 이혼을 불사하고서라도 반대하시던 분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마지막 심정으로 귀농학교를 다녀보고서도 반대한다면 단념하겠다고 배수진을 쳤습니다. 얼마 후 여성귀농학교를 다녀온 뒤 아내분이 바로 귀농하자고 선언했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남편이 물었습니다. 그런데 답은 너무나 단순했습니다. 귀농한 여성들의 힘든 귀농생활을 듣는 자리에서 용기를 내 “농사일이 정말 싫은데 시골에 가야할까요”라고 질문을 던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대뜸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더랍니다. “꼭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돼요, 다른 일을 한번 찾아보세요”라고 말이죠. 농사일을 안 해도 된다는 말 한마디에 그만 마음이 풀어졌답니다. 지금은 귀농해서 잘 살고 계십니다. 물론 그 분은 농사일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효소를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산다고 합니다. 다행인 것은 그러다 보니 텃밭 정도는 힘들지 않게 자신이 지을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농촌문제는 모두가 농사만 짓는데서 원인이 있기도 합니다. 농촌에서도 도시와 마찬가지로 교육과 의료, 문화생활이 필요한데 다들 떠나고 전부 농사짓는 사람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더욱 젊은 사람들이 살아가기가 힘든 환경이 됩니다. 오리농으로 유명한 홍동면에서는 마을에 호프집이 생겼습니다. 치킨 한 마리에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고 싶은데 시내로 나갈 수도 없고 해서 젊은 귀농자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 마을까페를 만든 겁니다. 돌아가면서 당번을 정해 운영합니다.

이처럼 시골에서 농사 말고도 할 일은 많습니다. 농사만으로 살기는 어렵습니다. 농사일이 정년이 없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최고의 직업이기는 하지만 사람마다 다를 수가 있습니다. 만일 농사라면 치를 떠는 배우자가 있다면 농사일을 내려놓고 귀농을 생각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귀농자들이 농사만 짓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나무를 다루는 일이 좋아 집을 짓는 목수가 되신 분들도 많고 천연염색을 직업으로 삼게 되신 분들도 있습니다. 약초가 좋아 산과 들로 다니다 약초꾼이 되신 분들도 있지요. 자신의 타고난 성향을 잘 찾는다면 시골에서 더 많은 일을 얻게 될 겁니다.

지금 에너지문제가 심각합니다. 농촌에서는 더 힘들지요. 난방에 들어가는 기름 값을 감당해내기 어렵습니다. 저는 마을에 필요한 난방과 관련한 기술을 배우고 보급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열효율이 좋은 난로, 개량화한 구들, 벽체 단열을 위한 여러 기술들을 보급하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농사가 정말 귀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모두가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만 조금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근본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귀농의 가치만 잊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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