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만 살아오신 분들은 시골에 연고가 없습니다. 연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모세대까지라고 봐야지 본인과는 무관한 경우가 많습니다. 타지보다는 친숙한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면 득이 많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어쩌다가 다시 낙향하게 됐는지 고향사람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합니다. 필시 다른 이유도 있었겠지만 얼마 전 자식이 귀농해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기사를 보며 참 안타까웠습니다. 고향으로 귀농했다고 바로 마을사람으로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삶을 함께하지 않은 세월만큼이나 고스란히 이방인 취급을 받습니다. 실제로 고향에 친인척이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로 귀농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땅과 집, 영농기반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고향조차 없는 우리, 돌아간다는 의미가 무색한 우리는 그럼 어디로 가야할까요? 제가 잘 아는 형님은 20여년 전에 경북 봉화로 귀농했습니다. 지역을 택한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땅값이 가장 싼 곳, 다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태백과 붙어있어 흡사 강원도 오지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마저도 이제는 우리가 쉽게 넘겨다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귀농자도 몰리고 땅값도 많게는 스무 배가 넘게 올랐습니다. 귀농자들이 여기저기 땅을 구하러 다니는 과정에서 땅값이 많이 오릅니다.

예전에는 귀농과 관련한 정보는 말할 것도 없고 교육과 지원도 전무했지만 서울만 벗어나면 땅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정반대가 됐습니다. 원한다면 쉽게 교육을 들을 수 있고 지자체의 적극적인 안내가 당연한 세상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갈만한 곳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급격한 도시화로 농지가 잠식되고 있어 도시를 벗어나려면 몇 시간을 운전해야 시골다운 경치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귀농희망자들은 서울을 기준으로 3시간 이내면 좋겠다고 합니다. 반평생을 살아온 서울과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겁니다. 너무 멀리 나가면 두려운 게지요.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것은 아닌데도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홍성의 이환의 선배는 그런 귀농을 도시락귀농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도시의 즐거움(樂)을 버리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돌아올 생각에 소풍가듯 도시락 싸들고 가는 귀농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초기 귀농자들은 양평과 같은 수도권 인근으로 많이 귀농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지금도 거기서 계속 농사지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습니다. 서울과 가까운 곳은 농사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은퇴하고 노후를 준비하는 귀촌생활에 맞습니다. 어느 정도 금전적인 여유가 있어야겠지요. 그렇지 않고는 멀리 떠나가야 합니다. 귀농의 오지라고 할 만한 곳으로 가야 아직 농지로서 가치를 지닌 땅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즉 서울을 기준으로 차로 5시간 이상 가야한다면 귀농의 오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땅끝마을이라 불리는 해남과 강진·장흥·고흥과 같은 남도가 그런 곳이고요, 청송과 그 너머로 영양·울진지역은 농지로 오래 보존될 가능성을 갖고 있는 곳입니다. 물론 이런 곳은 귀농선배들도 많지가 않습니다. 귀농자에게는 외로운 환경입니다. 그러나 마을은 깨끗합니다. 외지인이 많지 않을수록 마을이 깔끔히 정돈돼 있습니다.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거나 지저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것은 지역에 뿌리박은 토박이가 많기 때문입니다. 뜨내기가 아니고서야 제가 살고 죽을 곳을 형편없이 망쳐놓지는 않는 법입니다. 이런 곳에는 아직 농촌의 정답고 포근한 정서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귀농본부에서도 소개하고 있는 지역들입니다. 그 결과 정착하는 분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땅값도 조금씩 오르고 있지만 다른 지역처럼 이상하리만치 뛰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강진과 장흥입니다.

가까운 편은 아니지만 결코 멀지도 않는데 오지 같은 곳이 있습니다. 순창이 그렇습니다. 주위에 있는 남원·장수·완주·정읍·장성에는 귀농자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순창에는 드뭅니다. 일제시대 시작된 철도계획은 해방 이후 무산돼 교각만 남아있고 주변지역에 끼여 그냥 지나치는 애매한 위치가 돼버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개발의 광풍을 피해 여태 오롯이 자연을 품으며 아름다운 고장으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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