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찮으신 어르신댁에 나무보일러 연료가 바닥났다는 걸 안 동네 청년들이 모여 장작을 패고 있다. 청년들의 고운 마음 씀씀이 앞에선 한겨울 매서운 추위도 무섭지 않다.

쌓인 눈이 녹기도 전에 또 눈이 내린다. 정말 눈 천지다. 뒷집 할아버지는 제일 먼저 아침 일찍부터 눈을 쓸고 계신다. 두 번째 나온 신랑이 부끄러워 꾸벅 인사를 드리고는 잽싸게 눈을 밀어낸다. 사이좋게 눈을 쓸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이곳 박달산 밑에 둥지를 튼 지도 벌써 일곱 번째 겨울을 맞는다. 큰아이는 군인아저씨가 됐고 초등학생이던 작은아이가 마마보다 더 무섭다는 고3이다. 꿈처럼 생각만 했던 농사를 지어서 자립을 꿈꾸게 됐고 우리가 꿈처럼 생각하던 일들을 하나씩 삶의 보자기 앞에 펼쳐놓고 살고 있다.

시골살이의 어려움은 무엇보다 추위와의 싸움에 있다. 추위를 이겨내려는 각오는 단단하다. 석유에너지를 좀 덜 쓰고 물을 아껴 쓰고 여름내 쟁여뒀던 건나물과 냉동실에 조물조물 뭉쳐놨던 묵나물들을 하나씩 꺼내서 살고 있다. 구들방이라 오로지 나무가 연료인데 부뚜막을 만들고 솥을 걸었더니 한방에 두 가지가 해결된다. 방이 따뜻해서 좋고 물도 항상 따뜻하니 양동이로 들어다 씻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데 좋다. 물론 나무꾼과 물장수를 자청해 준 신랑이 고생한 덕분이다.

기름값이 올라 대부분 나무보일러로 바꿨는데 나이 드신 어르신들은 나무를 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며칠 전 마을에 편찮으신 어르신 댁에 나무와 연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 청년들이 하루 모여서 나무를 해드렸다. 포클레인을 하는 현규 씨가 쓰러진 나무를 끌어내리고 기계톱을 가진 사람들이 나무를 자른다. 옛날이었으면 마님들이 참 좋아할 우리 마을 청년들, 그러나 환갑이 내일모레인 청년(?)들이다. 세 트랙터 한가득 실어다 집안에 쌓아드리니 어르신도 청년들도 마음이 부자가 된 듯 하다. 부녀회장님이 그새 따뜻한 떡국을 끓여 내와 다들 맛있게 나눠 먹는다. 어려움이 있는 집에 서로 자발적으로 달려들어서 나무를 해 드리는 따뜻한 마을에서 같이 사는 즐거움도 얼마나 행운인가. 

눈이 좀 녹았나? 가게가 있는 면소재지까지는 걸어서 30분 걸린다. 운동 삼아 배낭을 하나 메고 가볍게 걷는다. 잠깐 걷는 길에 동네사람들을 다 만난다. 이웃집 어르신은 마을회관에 다녀오는 길이라 했고 오랜만에 떠들썩한 소리가 정겹게만 들리는 언니들의 산책길이 더 반가웠다. 농협에 들러 볼일을 보고 영농일지와 가계부를 선물로 받아 넣고 마트에 들러 저녁 찬거리로 두부와 달걀을 샀다. 콩나물 김칫국을 시원하게 끓이고 두부를 따뜻하게 데쳐서 김치와 함께 내고 김치전을 하나 부쳤다. 포도주를 한잔 나눈다. 막걸리 안주에 안 맞는 포도주라 폼은 안 났지만 오랜만에 키 큰 와인 잔을 꺼내고 둘이서 나누는 저녁만찬에 행복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각자 책을 한권씩 들고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힘든 일을 안 하니 겨울 동안은 두 끼만 먹기로 했다.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볍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던가. 게으른 농부의 겨울은 또 이렇게 지나간다. 겨울에는 쉬고 놀면서 한해 농사계획을 세운다. 동네 형님으로부터 700평 땅을 새로 얻어 다시 시작이다. 고추농사를 늘려볼 생각이다. 올 한해도 가뭄과 장마·태풍으로부터 비껴가기를. 소비자들과 약속한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해 건강한 몸과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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