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에는 결혼을 하면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몇 년을 살아야 했습니다. 신부 집에서 살다가 다시 시댁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여자가 혼인을 하면 시집을 간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돌아갈 귀(歸)자가 바로 그런 풍습에서 만들어진 글자라고 합니다. 쫓을 추(追)자와 아내 부(婦)자로 이뤄진 모양이 그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이지요. 반대로 남편의 입장에서는 본집으로 돌아오는 셈입니다.

농(農)으로 돌아가는 귀(歸)자도 그런 뜻과 딱 들어맞습니다. 다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세상이 특별히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돌아가야 할 삶의 자리는 이전보다 본질의 특성이 달라져야 합니다. 결혼이 이제껏 부모의 그늘에서 보호받고 살다가 스스로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듯, 귀농도 도시적 삶의 양식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농해서 성공한 사례로 소개되는 것들이 온통 소득을 얼마나 올렸느냐에 관심이 몰려있습니다. 상담하러 오는 분들도 대부분 무슨 농사를 지어야 생활이 가능한지 묻습니다. 물론 농사로 먹고는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먹고 사는데 그만한 소득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소득이 행복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만한 소득을 올리기도 어렵습니다. 성공은 소득이 아니라 삶의 전환에 있습니다.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행복이란 소비를 욕망으로 나눈 값이라고 했습니다. 욕망에 따라 행복을 느끼려면 소비를 한없이 늘려야 합니다. 소비가 엄청나게 늘어난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최하위권입니다. OECD국가 34개국 중에 32위를 했지요. 소비나 물질보다 욕망을 조절하는 게 관건입니다. 자원도 무한한 게 아니기에 언제나 소비를 늘릴 수도 없습니다. 어느 하나에 매이지 않는 삶이라면 욕망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거 더 하면 돈이 좀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만둘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하나에 집중함으로써 다른 소중한 것들을 희생해야 합니다. 그럴 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볼 수 있다면 도움이 됩니다.

생태귀농학교에서는 입학원서를 받을 때 반드시 ‘내가 귀농해야할 10가지 이유’를 쓰게 합니다. 다들 10가지를 채우기 어렵다고 투덜댑니다. 귀농의 이유가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화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겁니다. 자신이 무엇 때문에 귀농하려는지 잘 모르면서 막연한 기대만 갖고 무모한 결단을 내리지 마십시오. 귀농을 하지 않는 것도 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먼저 텃밭을 경작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씨를 뿌리고 풀을 매면서 농사 일이 나에게 잘 맞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귀농학교 수료를 하는 날 마지막 순서에 기원문을 낭독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참가자 모두 기원문을 함께 읽습니다. 문경으로 귀농한 임덕배 선배가 남긴 글입니다. 읽을 때마다 울림이 전해지는 아름다운 문장이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생명의 어버이이신 하늘과 땅, 서 있는 형제들인 나무와 꽃, 날거나 달리거나 헤엄치는 모든 신의 자식에게 저희의 바람과 뜻을 삼가 아룁니다. 우리는 누구나 신의 갈망에 따라 사람의 몸으로 태어났으나, 오직 사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며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땅을 딛고 서 있으나 흙으로부터 멀어지고 꿈을 꾸나 하늘을 닮지 못했습니다.

더 높은 지위와 더 많은 물질을 구하기 위해, 이 땅은 병들고 사람은 서로 더불어 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생태귀농학교를 통해,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사람과 사람이 서로 더불어 사는 유기순환의 공생적 농업만이 이 땅을 다시 살려내고 지속 가능한 삶을 담보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농촌으로 귀농하거나 혹은 마음 속으로 귀농할지라도 건강한 노동을 통해 건강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올바른 먹거리만을 짓고 먹을 것이며 한 뼘의 땅에도 존경하는 마음을 품을 것입니다.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푸른 씨앗하나를 싹 틔우기 시작한 까닭입니다. 명석한 머리로 판단하며 풍부한 가슴으로 느끼고 부지런한 손으로 일구는, 머리와 가슴과 손이 조화를 이루는 전인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지향하겠습니다. 말이나 글을 통해서보다 일상생활을 통해 생태적 가치를 실천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을 이웃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두 달이라는 짧은 기간을 통해 생태귀농학교 수강생들은 모두 형님, 누나, 동생, 친구가 되는 참으로 놀랍고도 즐거운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 저희 모두는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원하나이다. 서로를 향해 열렸던 그 마음이 또 다시 서로의 삶에도 활짝 열려, 귀농의 자립적 정착의 어려움을 하루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서로 돕고 늘 격려하게 하소서. 저희들의 생각과 실천으로 이 땅이 더욱 푸르고 아름답게 하소서. 그 아름다운 땅이 신의 뜻에 따라 영원히 지속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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