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귀농하려니 자신이 없습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봅니다. 함께 하기는 둘째 치고 귀농이라는 말을 꺼내기도 어렵습니다. 귀농학교를 같이 다녔던 동기들이라면 서로 큰 힘이 될지 모릅니다. 교육기간 동안 서로 마음을 터놓고 호형호제하며 술잔을 기울인 적도 참 많았습니다. 귀농이란 같은 꿈을 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합니다. 함께 귀농하기란 생각할수록 장점이 많습니다. 집을 같이 지으면 비용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농기계도 공동으로 구입해 사용하면 이득이지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해서 마을을 만든다면 기반조성에 들어가는 큰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받을 수도 있습니다. 암만 생각해도 단점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정작 성공하지 못합니다. 자리 잡았다는 귀농공동체도 손으로 꼽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물질로만 보면 그렇습니다. 이득이지요. 비용을 많이 줄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비용을 아낀 만큼 함께 준비한 재원은 차후에 나누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유가 없는 아주 원칙적인 공동체라면 몰라도 경직되기 마련입니다.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큽니다. 이상을 너무 높게 설정하니 감당하기가 힘듭니다. 자신은 중학교의 수준인데 대학 수준의 원칙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농사일은 아침에 하고 낮에는 쉬었다가 해가 지면 다시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생활해 온 사람들이 곧바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힘든 노동일을 하기는 무리입니다. 맞는 말이지만 형편에 맞게 해야 하는데 대개 공동체는 원칙과 이상에 치우치기 마련이라서 이런 일을 쉽게 결정해버립니다. 평소 7시에 일어나지도 못한 사람들이 원칙을 지키려고 힘겹게 5시에 일어나지만 쉽지 않습니다. 작은 일상에서부터 공동체가 어려운 게 됩니다. 누구는 일어나고 누구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됩니다. 마음이 각박해 집니다. 십시일반으로 장애가 있는 동료의 밭을 돕기로 했지만 이제는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내가 할 것보다 남이 어떻게 하는지에만 정신을 온통 뺏기고 맙니다. 사소한 갈등으로 등을 돌리거나 떠난다고 하지 원칙이 문제라고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높은 이상과 잘못된 원칙이 사람을 갈라 놓습니다. 만일 초등학교의 수준으로 낮은 원칙을 정했다면 쉽고 편한 여유가 있었을 겁니다. 곡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내 몸이 힘들지 않으니 주변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까지 말하니 공동체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느낌만 주는 듯합니다. 공동체가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아닙니다.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용을 아끼는 것만으로 공동체를 꾸리려는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의 소통입니다. 종교 공동체가 잘 정착하는 것도 종교라는 소통구조에 있습니다. 사람간의 소통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실패하는 원인에는 꼭 성급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빨리 자란 풀이 빨리 삭습니다. 자연멀칭도 풀로만 부족합니다. 퇴비도 쉽게 분해가 되지 않는 목질퇴비가 오래 갑니다. 공동체의 가장 작은 단위가 부부입니다. 부부도 귀농해서 농사일로 서로 마음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이랑이 좁네, 넓네. 파종 간격이 너무 배네. 사사건건 논쟁거리입니다. 부부끼리 설득이 가장 어렵습니다. 서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이기에 더 그렇습니다. 매일 벌어지는 시비에 지친 나머지 서로 역할을 나눕니다. 당신은 농사, 나는 판로를 맡고 서로 간섭하지 말자.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농사를 같이 짓는 부부가 드뭅니다. 지어도 따로 짓습니다. 영역이 다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함께 귀농을 하는 것은 봉사가 봉사를 이끄는 것과 같습니다. 서로 앞을 볼 수 없으니 누구 말이 옳은지 결론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농사일이나 삶의 지혜가 많은 분이 있는 곳의 공동체가 오래오래 유지됩니다.

공동체도 좋지만 먼저 마을로 들어가서 살아보는 게 어떨까요? 그 땅의 역사와 마을의 문화를 가장 잘 알고 이끌어 줄 분들이 이미 살고 있습니다. 귀농공동체에서 살고 있는 어떤 분에게 공동체를 하면서 좋았던 점과 힘들었던 점을 물으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함께여서 좋았고 또 함께여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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